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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 유니콘 '잘란도'에서 한국인으로 일한다는 것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가, PM으로 근무하는 3인이 말하는 해외 취업과 스타트업 문화

2021.09.27(Mon) 17:06:25

[비즈한국] ‘잘란도(Zalando)’는 패션 이커머스 기업으로 베를린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중 대표적인 성공 기업으로 꼽힌다. 베를린이 아직 유럽의 스타트업의 허브로 이름을 날리기 전인 2008년, 잘란도는 베를린 시내의 토어거리 218번지 한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창업자 로베르트 겐츠(Robert Gentz)와 다비드 슈나이더(David Schneider)는 대학 친구사이로 미국의 온라인 신발 판매 회사인 자포스(Zappos)를 모델 삼아 독일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한다고? 절대 안 될 거야!”라고 고개를 저었다. 

 

2008년 잘란도가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작았던 팀. 사진=잘란도 홈페이지

 

하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이던 전 제품 ‘무료배송’과 ‘최대 100일까지 무조건 반품 가능’ 정책으로 금세 입소문이 났다. 아파트 한편에는 사무실, 다른 한편에는 창고를 두고, 창업자의 개인 휴대폰 번호가 고객의 핫라인이던 시절이다. 물류 시스템도 없어서 직원들이 직접 창고에서 신발을 상자에 포장해 동네 우체국에서 발송을 하는 등 맨땅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은 컴퍼니 빌더인 베를린의 로켓 인터넷(Rocket Internet)의 투자와 지원을 받아 그야말로 로켓과 같은 속도로 성장해서 유럽의 패션 이커머스계에서는 아마존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2009년에 오스트리아와 시장 진출과 동시에 패션 및 의류 분야로 확대, 2010년 첫 비독일어권 시장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진출, 2011년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전 유럽으로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프랑크프루트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IPO를 통해 6억 500만 유로를 조달했다. 2021년 현재 잘란도는 약 140개국에서 온 1만 6000여 명의 직원을 둔 큰 회사다. 더 이상 스타트업이 아닌 ‘그로운업(Grown-up)’ 회사가 된 잘란도의 성공 스토리는 유럽의 많은 스타트업들을 꿈꾸게 해준다. 

 

이 스토리 안에서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 한국인도 십여 명 있다. 그 중 각기 다른 포지션에서 일고 있는 3인을 만났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이상현, 데이터 분석가 최영인, 프로덕트 매니저(PM) 윤유진 씨가 그 주인공이다. 

 

2019년 잘란도 신규 사옥이 완성되었고, 2020년 4월에 잘란도 캠퍼스가 준공되어 총 10만 제곱미터 면적의 사무실, 창의공간이 건설될 예정이다. 잘란도 캠퍼스는 100% 신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 사진=잘란도 홈페이지

 

-잘란도가 큰 회사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한국인 직원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상현(이): 2016년부터 잘란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아웃핏 팀에서 백엔드 서비스 개발과 데이터 처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베를린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된 스타트업 타파스미디어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최영인(최): 현재 잘란도의 자회사 잘란도 마케팅 서비스(Zalando Marketing Service)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통계를 전공했고 독일에서 계량경제학으로 석사를 마쳤는데, 그 이후 바로 잘란도에 인턴으로 입사해 2018년부터 일했다. 인턴 이후에 정직원 오퍼를 받아 주니어 비즈니스 애널리스트가 되었고 올초에 승진한 뒤 팀을 옮겨 프로덕트 애널리스트로 일한다. 

 

윤유진(윤): 셋 가운데 제일 늦게 입사했다. 지난 7월부터 잘란도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해외 취업 목표로 준비해서 베를린으로 오게 됐다. 그 전 한국에서는 미국의 여행 검색엔진 K사의 서울 지사, 스타트업, 에이전시 등 여러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다. 

 

베를린의 유니콘 잘란도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영인 데이터 분석가, 이상현 개발자, 윤유진 프로덕트 매니저(왼쪽부터). 사진=윤유진 제공

 

-베를린에 정착하게 된 경로가 다 달라 흥미롭다. 원래 베를린의 스타트업을 목표로 하고 왔나.

 

이: 유럽을 목표로 했다. 더 큰 목표는 한국 떠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조금 이상해보일 수 있겠지만 미세먼지 때문이다. 아내가 기관지가 약해서 한국에서 건강이 안 좋았다. 그래서 유럽 쪽으로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베를린뿐만 아니라 스웨덴 등 다양한 나라의 회사에서 인터뷰를 봤다. 이력서 쓰고 잘란도에 입사하기 전까지 약 2년 동안 20~30군데에 지원했다. 처음으로 최종 오퍼를 준 곳이 잘란도였고, 그래서 베를린에 오게 됐다. 2년 동안 일을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다보니 쉬엄쉬엄 했던 것 같다. 처음엔 영어 실력도 별로 안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회사를 경험하면서 늘었다. 면접 본 회사 중에 잘란도보다 안 좋은 회사도 있었는데, 준비 기간에서 많이 배운 덕분에 잘란도에 오게 된 것 같다.

 

최: 나는 석사과정을 독일 북부 덴마크 국경과 가까운 킬(Kiel)이라는 곳에서 했다. 졸업 즈음에 잘란도에 인턴십 자리가 있어서 그 인연으로 베를린에 오게 됐다. 

 

윤: 10년 정도 한국에서 프로덕트 매니저 일을 하다보니까 한계가 느껴졌다.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미국 회사의 지사에서 일하니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채용 프로세스는 어땠나. 한국에서 준비해서 취업을 확정하고 베를린으로 왔다는 점이 놀랍다. IT 등 이공계 분야가 아니라는 점도 좀 특이하다. 

 

윤: 잘란도의 경우는 1단계에서 인사담당자와 화상인터뷰를 약 30분 진행했다. 주로 나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와 이전 회사의 경험, 프로덕트 매니저로서의 경험 등을 답하고, 내가 회사에 궁금한 점도 물어봤다. 2단계는 실무면접이었다. 팀내 시니어나 디렉터급 담당자와 프로덕트 매니저 직무의 다양한 스킬에 관해서 1시간가량 얘기했다. 3단계는 실무 심화 면접으로 직무 관련 담당 프로덕트 매니저 4명과 1시간씩 심화 과제를 진행했다. 나는 협력 과제, 데이터 분석, PM 스킬, 팀 리딩과 관련한 과제를 받았다. 어떤 지표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지, 내가 풀어가는 과정을 보고 계속 집중 질문을 던진다. 추가 질문도 많았다. 다행히 다른 회사에서 많이 경험한 것들이라 아주 의외의 질문은 없었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이 조금 어려웠다. 이 분야에는 경험이 많지 않아 긴장이 많이 되었다. 화상으로 하는 면접인데, 내가 과제 푸는 것을 다 지켜본다. 하지만 최대한 분위기를 편하게 해주려고 하더라. 한국처럼 압박 면접은 아니었다. 

 

이: 여기에서는 인터뷰 전에 누구와 면접을 보게 될지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면 보통 면접자들은 링크드인을 통해서 면접관에 대해서 검색하고 들어온다. 면접관 입장에서도 검색해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채용면접관들도 평가를 하는 입장이지만, 매우 공손하고 상하 위계적인 느낌이 없다. 윤: 리액션도 잘해준다. 놀란 점은 영어에 대해서 겸손하다는 점이다. 화상면접이라 인터넷이 조금 끊겨서 “sorry?”라고 하면,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고 사과하며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풀어줬다. 이런 점이 나에게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내가 잘란도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일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일에 있는 회사지만 공용어가 영어이고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이 모여 일한다는 것이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나에겐 큰 장점으로 와닿는다.

 

이: 실제 회사 분위기가 그런 부분에서 좋은 점이 많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보니까 다들 겸손하다.  

 

-인턴 채용 과정은 어떠했나.

 

베를린의 유니콘 잘란도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최영인 데이터 분석가. 인턴으로 시작해 현재는 잘란도 자회사인 잘란도 마케팅 서비스에서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최영인 제공

 

최: 3년 전이라 지금과는 과정이 다를 수 있지만, 인턴 채용과정은 굉장히 단순했다. 1차 면접은 팀 실무자와의 30분 전화 인터뷰였고, 2차로 같이 일하게 될 팀장과 1시간 동안 화상면접을 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이: 인턴은 시간이 정해진 계약직이라 채용 과정은 간단하다. 같이 일을 해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일하는 기간이 모두 채용의 과정이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인턴으로 일하다가 모두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 팀장과의 인터뷰는 가벼운 케이스 스터디와 인성 면접 정도로 이루어졌다. 그때 팀장의 마지막 질문이 “인턴이 끝나고 나서 어떻게 기억이 되고 싶니?”였는데, 나는 “단순히 일 잘하는 동료를 넘어 좋은 친구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이 답이 팀장에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아주 좋아했다. 

 

윤: 이런 부분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면접관들은 내가 잘 봤나 못 봤나를 잘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반응이 없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인터뷰를 볼 때 좋고 싫은 것을 바로바로 표현한다.  

 

이: 나도 인터뷰 볼 때 같은 점을 느꼈다. 내 경우 코딩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그때 인터뷰 담당자가 “만점 받은 사람은 처음 본다. 넌 그냥 될 거야” 하고 인터뷰 자리에서 바로 말해줬다. 말을 돌려서 하지 않고 그냥 확실하게 해 준다. 당시 독일을 잘 몰라서 베를린이 아니라 에어푸르트라는 도시의 잘란도에 지원을 했는데, 채용과정에서 인사 담당자가 내가 외국인이니 베를린이 더 나을 거라며 친절하게도 근무지를 변경해줬다. 이렇게 모든 과정이 편안하고 투명했다. 

 

윤: 잘란도는 확실히 실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최대한 그 사람의 역량을 끄집어내준다는 느낌이 채용과정에서 느껴진다. 난 처음에 잘란도가 너무 큰 회사라 지원을 안 했다. 그런데 잘란도 인사 담당자가 링크드인을 통해서 지원해보라고 연락했다. 포지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어떤 포지션이 나에게 어울릴지에도 설명해줬다. 만약 잘 안 되더라도 나에게 맞는 포지션이 생기면 또 연락을 주겠다며 안심시켜주더라. 이런 채용과정을 거쳐 들어오게 되니 많은 부분에서 회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팀원들도 다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어떻게 쉽게 말하지’ 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소통이 오히려 되는 것 같다. 

 

-굉장히 이상적인 분위기다. 채용과정에서 좋았던 그 느낌이 실제 업무 환경에도 이어지나. 요즘 코로나라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여기서는 감시나 통제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도 자유로운 편이다.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은 아쉽다. 요새는 사무실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가끔 사무실 출근할 때 “오늘 나오는 사람 있어?” 하고 미리 메시지로 물어보고 같이 점심 먹는 정도로 만난다. 

 

최: 요즘은 약속해서 만나야 한다. 매일 같은 사람이 사무실에 나오는 게 아니라서. 코로나 전에는 금요일에 5시쯤 되면 “맥주 먹자!” 해서 모여서 간단하게 파티도 하고 그런 분위기였다.  

 

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에 잘란도에서 일을 시작해서 낯선 이야기다. 입사 초기라 더 많이 소통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최: 많이 삭막해졌다. 요즘은 동료들도 거의 미팅에서만 만난다.

 

윤: 사무실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출근할 때마다 자리를 예약하고 가는 시스템이다. 공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 모든 책상을 다 열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책상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도 꼭 필요할 때만 사무실로 출근한다. 앞으로는 계속 이런 방침으로 간다고 들었다. 

 

최: 재택근무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집에서 일하면 출퇴근 시간 아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아이디어 공유 등은 만나서 하는 게 좋다. 집에 있으면 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휴식과 일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실에서 2일 일하고, 집에서 3일 일하는 정도로 구성되는 게 가장 좋다. 출근해서 팀 미팅을 통해 빠르게 해결할 일들과 직접 얼굴 보고 할 일을 진행하고, 집에서는 혼자 집중해서 일할 것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베를린의 유니콘 잘란도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현 개발자. 5년 전 잘란도에 입사할 당시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사진=이상현 제공

 

-한국과 그런 면에서 일 문화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최: 코로나 전에도 한 달에 네 번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팀 분위기에 따라서 그걸 자유롭게 하는 팀도 있었고 덜 하는 팀도 있었는데,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가 일반적이다. 한국에서처럼 ‘다른 사람 눈 앞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일 문화와 환경에서 한국과 독일의 가장 큰 차이는 투명성, 그리고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거의 문화 충격 수준이었다. 회사가 크고 사람이 많아도 그 투명성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유지가 된다. 예를 들어, CEO가 1년을 마무리하고 직원을 격려하는 글을 회사 포털에 올렸는데, 직원이 답글로 “코로나로 모두 힘들어하고 있는데, 잘란도 매출 올렸다고 자축하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올렸다. 속으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그리고 “코로나로 집에서 일한 시간이 많은데 회사에서 전기료 등을 보조 안해주는지” 등 요구도 댓글로 당당히 한다. 다 실명이 보이는 회사 인트라넷인데, 그것에 대해 누구도 눈치 보지 않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수평적으로 토론하고, 강압적으로 시키는 것도 없다.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도 놀라운 점이다. 아이가 아픈 상황은 물론이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일을 제쳐두고 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는데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한국에선 회사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이곳에선 가족을 위한 회사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 CEO 중 한 명인 루빈 리터(Rubin Ritter)가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사임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비슷한 점을 많이 느낀다. 나는 직접 피드백 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회사 프로세스에 대한 개선점을 이야기했더니 “처음인데 뭘 안다고?” 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서도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피드백을 줬는데 “좋은 의견이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그 의견을 받아서 진전시켜 나갔다. 기대는 했지만 이런 개방성을 보게 되어 놀랐다. 

 

이: 회사마다 문화는 매니지먼트에 의해서 바뀌는 것 같다. 잘란도는 경쟁보다는 협업을 중시한다. 아는 개발자가 독일 아마존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곳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들었다. 미국 문화에 가까워서 경쟁적이고 힘들다고 한다. 

 

최: 확실히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다는 면에서는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사실 독일의 다른 회사는 안 다녀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잘란도는 CEO가 두세 달에 한 번 직원들에게 지난 분기의 성과에 대해서 얘기하고 질문 받는 시간을 가진다. 그때 직원들이 서슴없이 질문한다. 예를 들어, 잘란도 물류센터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지, 강제 노동을 하는 중국 신장에서 목화를 수입했다고 하는데, 그런 재료를 쓰는 회사를 퇴출시킬 생각은 없는지 등등 직원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니, 경영진도 사회적으로 기업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 특히 잘란도 이사회 구성의 성별 불균형은 늘 지적되는 문제다. 원래는 남자만 5명이었는데, 루빈 리터(Rubin Ritter)가 사임한 뒤 여성 1명을 영입했음에도 여전히 불균형이라는 이야기가 나와 개선점을 찾고 있다. 감독위원회는 총 9명 중 5명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균형을 맞춰 나가려고 하고 있다.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이: 매년 2회 하는데, 평가 시스템이 워낙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매년 조금씩 다른 것들을 시도하거나 개선되는 것이 보인다. 주로 동료 평가 방식을 사용한다. 

 

최: 같이 일한 동료 3~5명에게 피드백 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내가 피드백을 받는 사람을 선정하고, 또 팀장이 한 번 조절을 하기 때문에 꽤 적정한 평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적 방식이기는 한데, 전통 독일 방식처럼 상사 1명이 평가하는 방식보다는 나은 것 같다.

 

윤: 동의한다. 상사가 평가하는 방식은 상사에게 잘못 보이면 끝이라 그다지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가가 연봉 협상과 승진에 반영되는 시스템인가.

 

최: 평가는 승진 여부와 퍼포먼스 등급에 반영되지만 등급마다 샐러리 밴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연봉 협상 과정은 없다.

 

이: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 잘하는 사람이 연봉을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매년 연봉이 인상되는 폭에 크게 반발이 없다면 별도의 협상 테이블은 없다. 다만 연차와 경력에 따라 일정 정도 연봉의 등급이 있다.

 

-성과에 대해서 보상이 확실한 문화인가. 

 

이: 특별히 정해진 보너스는 없고 고성과자에게 보상을 확실히 해준다. 프로젝트 론칭을 성공리에 마치고 한 번 받은 경험이 있다. 이 부분도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다. 한국에서는 프로젝트 열심히 하고 론칭하면 축하하고 끝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보통 프로젝트를 열심히 해도 일정을 못 맞추면, 프로젝트 마감일을 바꾸거나 조정을 한다. 노동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치 못하게 일정을 못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 내 경우는 구글 출시 날짜에 맞춰 개발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타 회사와 협업하는 거라 일정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야근하고 주말까지 출근을 해서 론칭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에 대해 상응하는 보너스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법적으로 보호되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보상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것을 더 선호한다.

 

-잘란도가 로켓처럼 성장해서 회사를 크게 키웠음에도 투명성과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회사에서 앞으로 개인의 비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최: 올해로 3년 차인데, 최근에 팀을 옮겨 새로 적응 중이다. 이 팀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는다고 생각한다. 이 커리어를 잘 쌓아서 나중에는 더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고 싶다. 잘란도가 큰 회사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가 너무 복잡해졌다. 그리고 내가 다루는 일이 데이터인데, 유럽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강력하기도 하고, 잘란도는 늘 감독기관의 주시를 받다보니까 관련한 서류 작업 등을 불필요하게 많이 해야 되는 것이 있다. 언젠간 작은 스타트업에서 좀 더 도전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다. 

 

이: 그 부분은 공감한다. 회사가 크니 어떤 것 하나를 진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른 팀하고 같이 조정해야 하고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다. 규모가 크니 당연하다. 그래서 나도 개발보다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경우가 있다. 문서 작성하고, 시스템 확인하고, 미팅하고 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쓴다. 

 

윤: 확실히 팀이 크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짧다. 하루에 2~3시간 확보 못 하면 하루가 그냥 간다. 

 

이: 나 같은 경우는 연차도 있고 경력이 있기 때문에 채용 인터뷰도 일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나는 매니징은 하지 않고 현역 개발자로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보통은 매니징 쪽이 승진이 빠르기 때문에 개발자라도 매니저로 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람 다루는 것보다 기술 다루는 게 좋고 실력을 쌓고 싶다. 그렇게 해서 장기적인 목표는 독립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다. 잘란도에서 쌓은 내 역량과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온라인 서비스, 컨텐츠  제작 등에 도전하고 싶다. 

 

최: 상현님 같은 경우 지금 회사에서 운영하는 테크 아카데미에서 사람들을 가르친다. 그 아카데미에서 나도 약간의 코딩을 배우고 있다. 회사에서 이렇게 업무시간 내에 직원이 성장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굉장히 든든하다. 다만 나는 일이 많아서 업무시간 외에 공부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이: 잘란도에서는 개인의 성장을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처음 왔을 때 팀장이 내 장기적 목표를 물어봤다. 그때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팀장의 의도는 회사의 장기적 비전과 내 성장을 같이 이끌어가주려는 것이었다. 몇 년 후 팀장과 편해지고 회사 문화에도 적응했을 때 솔직하게 ‘독립’이 목표라고 말했더니, 팀장이 회사를 나의 트레이닝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라고 얘기해줬다. 회사의 모든 일이 회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굉장히 감명깊었다. 

 

윤: 한국에서 10년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느꼈던 아쉬움을 베를린에 와서 충족하고 있다. 환경을 바꾸면서 내가 원래 있던 곳을 바라보니 한국이 프로덕트 매니저 분야에서 전 세계 트렌드와 비교했을 때 방법론, 문화적으로는 생각보다 뒤처져 있음을 알게 됐다. 한국은 개발, 디자인 스킬에서는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획, 프로덕트 매니지먼트가 아직 성숙한 단계는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 천 명이 넘는 프로덕트 매니저들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업무적으로도 글로벌 경험을 쌓아 추후에 한국의 프로덕트 매니징 분야에도 일조하고 싶다. 해외 취업을 위해 인터뷰하면서 가장 괴리감이 컸던 부분은 실력을 떠나 사용하는 용어나 방법론 자체가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든 게 많았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다 찾아가면서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참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기능을 만드는 것, 론칭하는 것에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이 집중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입사하자마자 ‘네가 풀 수 있는 문제를 찾아봐’라고 시작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다르게 문제의 발견과 정의에 몇 달이나 시간을 준다는 것이 엄청나게 다른 점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과 독일 양국을 잇는 사람으로 그 괴리를 점차 좁혀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 한국에서 개발자들이 해외 취업을 쉽게 하는 것처럼 프로덕트 매니저도 많이 올 수 있도록 내가 역할을 하고 싶다. 한국에서 그런 PM들이 개발자들처럼 많이 왔으면 좋겠다. 

 

베를린의 유니콘 잘란도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윤유진 프로덕트 매니저. 올해 7월부터 잘란도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진=윤유진 제공

 

이: 개발자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점이 큰 장애물일 것 같다. 

 

윤: 나도 영어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나와서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적으로 영어를 잘한다. 화려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명료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으면 된다.

 

최: 잘란도에서는 실무경험과 실력을 학력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우리 팀에는 독일 대학 졸업을 위한 최종 독어 시험을 안 봐서 학부 졸업을 안 한 친구도 있다. 그런데 인턴 입사해서 4~5년 만에 시니어가 되었다. 실력이 우선이다.

 

윤: 어차피 한국 대학은 아무도 모른다. 포항공대, 카이스트, 이런 게 의미가 없다. 

 

이: 이게 해외 취업의 좋은 부분이다. 해외에 나오면 학력, 학벌로부터 그냥 제로 베이스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개발 분야는 이미 출제 범위가 다 공개되어 있다. 출신 대학이 어디든,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무엇이든 그 문제를 잘 해결해내면 되는 거다. 물론 커뮤니케이션 능력, 협업력도 중요하게 보지만 직원 선발에서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베를린 스타트업계의 레전드가 된 잘란도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유럽 스타트업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인으로 각기 다른 경로로 베를린에 정착해 잘란도에서도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세 명의 경험을 통해서 유럽 스타트업 세계는 결코 우리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희망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럽 스타트업의 유니콘 잘란도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이상현 개발자의 '이상현 in 베를린' 블로그, 윤유진 프로덕트 매니저의 브런치도 방문해 보시길.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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