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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근무시간② '재량'이라는 달콤한 함정

같은 조직도 업무 및 근무 환경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취지 좋아도 현장에선 '글쎄'

2023.02.24(Fri) 11:50:09

[비즈한국] 주 52시간 제도가 근로자 5인 이상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된 지 불과 1년 반 만에 다시 근로 시간 개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1주가 아닌 월이나 분기, 연 단위로 유연하게 확대하고 노사 간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 제도개편의 주된 취지라고 한다.

 

이렇게 개편할 경우 연장근로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하지 않아도 되니 특정 시기에 몰아서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의 연속 휴식시간인 11시간과 법정 휴게시간, 주휴일 등을 제외하고 나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특정 기간에 몰아서 일한 만큼 다른 시기에는 일을 적게 하니 평균 근무 시간은 비례하여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빡빡하게 ‘주당 12시간 초과근무 안됨’이 아니라 회사에 따라 바쁜 시기에 몰아서 일하고, 그만큼 비수기에는 누적해서 쉴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관리하자는 이야기다.

 

주당 근무시간에 제한을 두는 건 인간의 자율의지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계에서는 ‘주당 69시간’을 강조하면서 초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개악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경영자 측에서는 개편 취지는 공감하지만 11시간 연속휴식제로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했다고도 한다.

 

솔직히 출근하자마자 퇴근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카운트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인 급여생활자로서는 왜 52시간, 69시간 같은 연장 근로시간만 이슈가 되는지가 제일 큰 불만이다. 평생을 가도 사용자, 경영자, 혹은 그냥 사장님이라도 될 리는 만무하다 보니 그저 법정 근로시간을 프랑스처럼 주 35시간, 혹은 스웨덴처럼 하루 6시간으로 깎아주거나 벨기에처럼 주4일제를 법제화하는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참 좋을 텐데 하는 1차원적인 생각뿐이다. 아, 물론 급여는 깎지 않고 말이다.

 

지금 회사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부서장 재량으로 조정해서 운영하는 시차출퇴근제와 주당 40시간 범위 내에서 집중근무일을 지정해서 몰아서 근무하는 근무 시간 선택제 등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부바부, 사바사, 일바일(부서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일마다 다르다)이다.

 

‘재량’이라는 말 자체가 허용된 규칙이나 제도 안에서 개인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진행하든 말든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미이다 보니 업무 특성상 유연근무를 할 수 없는 부서도 많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부서라 할지라도 관리자 성향에 따라 자신이 출근해서 일하는 동안 눈 앞에 직접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승인을 안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유연근무제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직원들은 많지만, 실제 사용 인원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혹은, 저 부서는 되고 우리 부서는 안 되는 현실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직원도 꽤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유연근무제를 취지와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직원에 대해 조사해 달라며 내부에서 익명으로 투서가 들어왔다. 시스템에 입력된 근태와 실제 근무 시간을 대조하여 확인한 결과, 소정 근로시간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거나 부정으로 사원증을 태그한 사례가 여럿 밝혀졌다. 해당 직원들은 징계 조치하고 소속 직원의 근태관리를 소홀히 한 부서장들 또한 주의 조치했다. 그렇게 한차례 칼바람이 불고 나니 유연근무제 사용률이 뚝 떨어졌다. 유연근무를 사용하고 있는 직원에 대한 근태 확인은 어느 회사에서나 단골 감사 대상이고 관리·감독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실제로 사용하라고 만든 제도가 맞냐는 볼멘소리도 많이 나온다.

 

‘자율’ ‘재량’ ‘유연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이 극히 선량하고 합리적인 세상이라면 근로자는 관리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정해진 근로 시간 동안 주인의식을 갖고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고용주 또한 자신의 이익보다는 근로자의 건강권과 사회적 책임을 우선할 테니 가급적 초과근무는 시키지 않을 것이다. 행여 연장근로를 하게 되더라도 가산율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수당을 지급하고 일요일이나 공휴일 근무 시에는 근로자가 말하지 않아도 1.5배의 보상휴가를 꼭꼭 챙겨 주는 그런 세상이라면, 사실 근로시간제가 어떻게 개편되더라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근로자 개인의 자율에 맡겨도, 관리자들이 재량껏 단위부서를 운영하더라도, 노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더라도 언제나 최고의 효율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일과 가정은 양립될 것이고 우리는 모두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근로자든 사용자든 놀고먹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법과 제도를 준수하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이론적으로 모두 가능한 이야기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섬은 실제로 하루 6시간 근무제다. 모두가 공평하게 오전 3시간 일하고, 점심에 2시간 휴식한 다음 오후 3시간 일한다. 모든 일은 반드시 저녁 식사 전에 마친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여가시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어진 여가시간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거나, 빈둥거리고 놀면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탐구하고 연구하며 독서를 한다. 6시간 근로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하는 세상이라니. 그래서 유토피아는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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