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남은행 횡령사고의 규모가 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금융권 횡령사고 중 가장 큰 금액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BNK금융지주와 경남은행 모두 금융사고 정황을 4월께 인지했으나 자체조사 등을 이유로 금융당국 보고는 미뤄졌다. 현행법상 금융기관은 사고 인지 시 이를 지체 없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보고에 앞서 이뤄지는 자체조사의 기한·절차 등을 다루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지연보고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법은 보고 대상 및 시기만 규정
금융권의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BNK경남은행에서 3000억 원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 검사에 따르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업무를 담당해 온 이 아무개 씨는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본인이 관리하던 17개 PF 사업장에서 총 2988억 원을 빼돌렸다. 앞서 8월에는 대구은행 직원 수십 명이 고객 몰래 예금 증권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일 목적으로 증권계좌 1개를 개설한 고객의 정보를 이용해 다른 증권계좌를 추가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금융사고는 모두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자체조사 등을 이유로 보고가 지연돼 금융당국이 사고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남은행은 4월 초 금융사고 정황을 인지했으나 자체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BNK금융지주는 사고 파악 후 3개월이 지나서야 감사에 착수하며 초기대응을 늦추기까지 했다. 대구은행은 감사를 통해 직원들의 금융실명법 위반 행위를 인지하고도 이를 한 달 가까이 금감원에 알리지 않았다. 대구은행 측은 “위반 사실이 명확해진 뒤 보고하려고 했다”며 의도적인 보고 지연을 부인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은 위법·부당행위로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 손실을 초래하거나 금융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이를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고발생일·사고발견일·사고자 및 관련 임직원 등이 대상이다. 사고내용(사고구분·금액)·발견경위·사고조치·재발방지대책도 포함된다. 금액의 경우 사고금액, 손실예상금액, 실제회수금액 등을 상세히 제출해야 한다.
보고는 사고를 인지 또는 발견한 날의 다음 영업일까지는 즉시보고를 하고, 조치 완료 시까지 6개월마다 중간보고, 사고자에 대한 인사조치 및 피해금액에 대한 보전조치가 완료된 때에는 종결보고도 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 자체조사를 실시한 후 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지하자마자 보고를 할 정도로 파악이 되는 사고는 바로 보고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가적으로 확인한 후 보고를 하는 등 사고별로 다르게 진행된다”고 전했다.
#시중은행들 “자체조사, 정해진 기한 없어”
이처럼 금융기관이 자체조사를 이유로 금융당국에 보고를 늦게 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현행법에서는 사고 인지 시 지체 없이 보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자체조사를 언제까지 마쳐야 하는지 등을 포함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사고발생 시 금융기관마다 자체조사를 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제각각인 데다, 지연보고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사실 확인을 위한 자체조사를 하느라 보고가 늦어졌다”는 금융기관의 해명이 반복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자체조사 절차나 내용에 대해 외부에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의심스러운 거래가 발견되는 경우 해당 지점이 속한 본부에 대한 상호감사 등이 다음날 이뤄진다. 자체조사 기간 등에 대해 시중은행 측에 문의한 결과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간을 따로 정해 두지 않는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한다는 개념”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안에 따라, 혹은 감사 유형에 따라 단기 혹은 장기로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 조항이 미흡한 점도 문제다. 현행법은 금융사고 보고 대상 및 시기에 대한 내용만 담고 있을 뿐 이를 어길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의 늑장 보고가 반복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의도적으로 보고를 지연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내기 어려운 점도 금융기관이 경각심을 갖기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의도적 보고지연으로 처벌을 받은 금융기관의 사례는 드물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안이 명확하면 감독 당국이 빠르게 개입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내부적으로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안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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