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감사원이 KDB산업은행의 정책자금 운용을 겨냥한 감사에 돌입한 가운데, 과거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해 내놓은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감사원은 2021년 당시 산은의 대우건설 지분 매각행위의 위법성을 가려달라는 공익감사청구를 기각했다. 지분 거래 계약의 당사자인 산은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아 국가계약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이례적인 입찰가 조정으로 2000억 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는 ‘헐값 매각’ 의혹에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상 대우건설 매각 건 자체가 감사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인데, 2년 만에 다시 산은의 구조조정을 겨눈 배경에 눈길이 쏠린다.
#중흥그룹에 2000억 원 ‘할인’…‘적정성’ 다시 도마 위에
감사원은 10월 23일부터 산업은행의 정책자금 운용에 대해 실지감사(서면감사가 불충분할 경우 실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감사는 올해 하반기 계획에 포함된 것으로, 산업은행 부실 여신과 정책자금 운영의 적정성 등을 살펴보는 차원이다.
대규모 정책자금을 동원해 진행한 구조조정 사례들이 주요 감사 대상에 올랐는데, 문재인 정부 때 추진한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매각 등을 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보유하던 지분이 다시 민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감사원은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에 관여한 관련자들도 조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우건설 매각은 산업은행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장기간 공적자금을 투입한 대우건설의 매각 프로세스가 지난해 2월 종지부를 찍으면서 산업은행은 묵은 과제를 털어냈다. 대우건설이 2011년 산업은행 품에 안긴 지 10년여 만이다. 중흥그룹은 지분 50.75%를 2조 671억 원에 사들이며 대우건설의 새 주인이 됐다.
하지만 M&A 자문사 선정부터 잔금 납부를 마무리하는 8개월의 매각 과정에 의구심이 제기됐다. 공개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특정 기업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했다는 이른바 ‘졸속 매각’ 논란이 떠오르면서다. 입찰가격과 계약 방식이 문제로 거론됐다.
매각 당사자로 나선 건 대우건설 매각 임무를 부여 받고 2019년 설립된 사모펀드운용사 KDB인베스트먼트(KDBI)다. 산업은행이 7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자회사로, 산은의 구조조정 회사 지분을 넘겨 받아 가치를 제고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매각에 참여한 중흥그룹은 당초 인수자금으로 2조 3000억 원을 제시했으나 입찰 경쟁자가 그보다 5000억 원 낮은 인수자금을 제안한 것을 알고 조정을 요청했다. 이에 KDBI는 수의계약을 통해 인수대금을 2조 1000억 원으로 깎고 중흥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000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계약을 맺은 셈인데, 산은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자산 매각 시 공개경쟁입찰을 거쳐야 하기에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산은과 똑같은 해석 내놨던 감사원, 2년 만에 잣대 바뀌었나
과거 감사원은 공익감사 청구를 받고도 법 위반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감사를 자체 종결했다. 산은의 자금 운영에 대해 전격 감사에 나서며 칼날을 세운 지금 모습과 대비된다. 당시 감사 청구 기각 사유를 보면, 해당 사안을 감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봤기에 2년 만에 자체 결론을 번복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매각 작업이 한창이던 때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산업은행이 중흥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과정에 위법이 있다면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청구서에는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주식매각 시 입찰의 형식을 빌렸으나 입찰 공고 없이 사전 접촉한 매수 희망자들의 매수가격을 감액하는 등 수의계약에 의해 대우건설 주식 매각을 시도했다”며 산업은행과 그 자회사를 이용한 지분 매각의 위법행위를 들여다봐달라는 요청이 담겼다. 참여연대는 “KDBI는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을 통해 취득한 주식의 효율적 관리와 처분을 위해 존재하는 단순 업무위임기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감사실시 여부를 검토한 감사원은 3개월 후 ‘계약 당사자인 KDBI는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아니다’는 취지로 결과를 통보했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검토결과 문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계약 당사자들은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대우건설 지분 양수도 과정에서 국가계약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약 당사자는 산업은행이 아닌 자회사 KDBI이며 KDBI는 국가계약법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 △매각 완료 전까지 국고 손실과 배임 여부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감사 청구 기각의 근거가 됐다.
이는 산업은행이 매각 특혜 문제에 대해 내놓은 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은행과 KDBI는 참여연대의 질의에 “산업은행은 KDBI에 대해 주주로서 상법상의 경영관리책임을 부담할 뿐 대우건설 매각 건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상 업무관여가 금지된다”며 “KDBI가 사적 주체로서 실시하는 거래이므로 국가계약법,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으며 민법상 사적자치 및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답변했다.
이번 감사가 사실상 정략적 감사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감사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우건설 매각 당시 업계 안팎에서 “자회사를 면피용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는데도 감사 대상으로도 보지 않다가 2년 만에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우건설 노조와 시민단체에서는 불공정 매각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공익감사 청구를 기각 처리한 후 같은 사안을 다시 감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공익감사 청구를 기각으로 판단한 근거와 취지 등에 대해 감사원 내부도 감사를 해야 한다”며 “잣대가 바뀐 것이라면 감사원 역시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동화 참여연대 간사는 “당시 산업은행의 공적자산 처분이 불투명한 절차로 이뤄진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며 “헌법 기관인 감사원은 독립적으로 감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정권에 따라 매번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자의적인 판단을 내놓는다면 집행 기능에 대해 신뢰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감사는 12월 8일까지로 예정됐으나 진행 상황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관련 질의에 “감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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