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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작은 고추가 맵다' 우주 암흑시대 끝낸 주인공은?

제임스 웹 관측 결과, '왜소은하'가 우주 '재이온화' 이끈 원인으로 추정

2024.04.02(Tue) 17:45:26

[비즈한국] “와요메르 엘로힘 예히 오르 와이히 오르(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אור).” ​‘하느님이 “빛이 생겨라”고 말하자 빛이 생겼다’는 ​뜻의 이 문장은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창세기 원문에 등장한다. 여기서 ‘예히 오르’는 라틴어 ‘Fiat Lux’로도 잘 알려진 그 유명한 “빛이 있으라!”라는 외침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주의 첫 순간을 눈부신 섬광과 함께 시작되는 이미지로 그리곤 한다. 하지만 실제 우주의 시작은 전혀 달랐다. 태초의 우주는 아주 깜깜했다. 이 암흑은 빅뱅 이후 약 6억~8억 년이 지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이때까지 우주의 어둠을 비추는 그 어떤 별도, 은하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빛을 내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했을 이 우주 초기의 역사를 암흑 시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주의 암흑 시대는 돌연 막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수많은 별과 은하가 빛나는 세계로 바뀌었다. 어떻게 기나긴 태초의 암흑 시대가 끝나고 찬란한 별빛으로 가득 찬 우주가 되었는지는 여전히 큰 미스터리 중 하나다. 빅뱅 직후의 먼 우주를 실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관측 천문학과 초고해상도 시뮬레이션으로 빅뱅 직후의 순간을 재현하려고 하는 시뮬레이션 천문학, 두 분야 모두 도전한 가장 뜨거운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태초의 암흑 시대는 어떻게 막을 내렸을까? 태초의 어둠을 밝게 비춘 주인공은 누구일까? 천문학자들은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내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은 활동성 은하, 퀘이사, 또는 태양 질량의 1000배 가까운 육중한 질량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1세대 Pop III 별과 초신성을 품고 있었을 원시 은하들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우주 초기의 암흑이 끝난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우주의 긴 암흑을 끝내려면 아주 강렬한 빛을 내뿜는 눈부신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있었을지 모른다. 퀘이사도, 초신성도, Pop III 별도 아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아주 작고 흐릿한 초기 우주의 왜소은하(UDG, Ultra-faint dwarf galaxy)가 태초의 우주를 밝게 비춘 장본인일 가능성이 최근 거론된다. 관측과 시뮬레이션, 그 무엇으로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우주 역사의 어두운 공백, 암흑 시대를 끝낸 진짜 원인을 찾는 천문학자들의 추적은 계속되고 있다.

 

빅뱅 직후 우주는 아주 높은 온도와 밀도로 들끓는 불안정한 세계였다. 초기 우주의 지나치게 뜨거운 열기로 인해 모든 아원자 입자들은 안정적으로 뭉쳐 있을 수 없었다. 양성자와 전자는 모두 잘게 쪼개져 따로 놀고 있었다. 이온화된 입자들로만 채워진 채 뜨겁게 들끓고 있는 ‘이온 스프’와 같은 상태였다. 

 

우주가 탄생한 지 약 38만 년이 지날 무렵, 계속된 우주 팽창으로 우주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따로 놀던 양성자와 전자가 하나둘 수소 원자로 결합하면서 입자들 사이에 빈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초의 빛은 그 틈을 비집고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첫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천문학적으로 봤을 때 바로 이때가 우주 역사상 ‘태초의 빛’이 퍼져나간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빛의 흔적은 138억 년에 걸친 기나긴 우주 팽창으로 인해 아주 낮은 온도의 노이즈로 퍼져 있는 우주 배경 복사의 형태로 관측할 수 있다. 플랑크 위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우주 전역의 미미한 배경 잡음의 모습은 바로 우주가 “빛이 있으라”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쳤던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태초의 빛만으로 우주를 밝게 채울 수는 없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빠르게 절대영도에 가까운 온도로 식어갔다. 아직 그 어떤 별도 반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 시기의 우주에는 스스로 밝게 빛을 내는 어떤 존재도 없었다. 그저 우주 공간을 떠도는 차가운 중성 수소 가스 구름만 있을 뿐이었다. 

 

초기 우주의 진화 과정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그림. 초기의 활동성 은하, 1세대 별들이 폭발하면서 우주 전역을 이온화하는 재이온화 시기를 겪었다. 사진=NASA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은 중력에 의해 높은 밀도로 반죽되었고, 그 속에서 태초의 별, 태초의 은하가 탄생했다. 이들이 내뿜는 밝은 빛은 주변을 에워싸는 수소 구름을 비추었다. 우주 전역의 수소 구름은 일제히 다시 양성자와 전자로 쪼개지며 이온화되었다. 빅뱅 직후 원래 이온화된 입자로 가득했던 우주의 상태가 잠깐의 안정된 암흑 시대를 거친 후 다시 이온화된 입자로 가득한 두 번째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암흑 시대가 끝난 직후를 ‘우주의 재이온화 시기’라고 정의한다. 빅뱅 직후 맨 처음에 이어 두 번째로 우주가 통째로 이온화된 시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주를 통째로 이온화만큼 강렬한 자외선 빛을 내뿜으며 우주 속 수소 구름을 비춘 존재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먼저 아주 먼 초기 우주에서만 발견되는 격렬한 활동성 은하, 퀘이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중심에 아주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원시 은하일 것으로 추정되는 존재다. 하지만 퀘이사만으로는 우주 전체의 재이온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주의 암흑 시대가 끝나갈 무렵의 극 초반의 우주로 갈수록 오히려 퀘이사의 빈도는 다시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초기 우주에만 존재했다고 추정되는 Pop III 별이다. 빅뱅 직후의 우주에는 아직 무거운 중원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상 순수한 수소와 헬륨만으로 별이 반죽되었다. 그런데 중원소 없이 별이 반죽되면 내부의 온도는 지나치게 뜨거워진다. 중심의 뜨거운 온도를 이겨내고 안정적인 별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굉장히 무거웠어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Pop III 별들이 거의 태양 질량의 1000배가 넘는 아주 무거운 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정도로 거대한 별이라면 아주 강렬한 자외선 빛을 사방으로 충분히 방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Pop III 별만으로 우주의 재이온화를 모두 설명하기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질량이 너무 지나치게 무거운 나머지 수명이 겨우 수백만~수천만 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수억 년 동안 지속적으로 우주 전역을 이온화하기에는 수명이 너무 짧다. 

 

우주의 재이온화 시기를 이끈 주인공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결국 재이온화 시기 그 순간의 우주를 직접 봐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먼 과거, 너무나 멀리 있는 우주다. 기존의 망원경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거리다. 그러나 제임스 웹은 거대 은하단의 중력이 만들어낸 마법, 중력 렌즈를 활용해 이 시기의 우주를 들여다볼 수 있다. 중력 렌즈 현상을 잘 활용하면 멀리서 날아오는 빛의 경로를 볼록렌즈가 한 초점에 모아 더 밝게 증폭시키듯, 먼 배경 은하의 흐릿한 빛을 더 밝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의 NIRspec과 NIRcam 장비를 활용해, 근적외선 영역에서 먼 은하들의 스펙트럼과 이미지를 관측하는 UNCOVER(Ultradeep NIRSpec and NIRCam ObserVations before the Epoch of Reionization) 관측을 진행했다. 이번 관측에서는 판도라의 은하단으로도 잘 알려진 Abell 2744 은하단 영역을 관측했다. 거대한 은하단이 자신의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을 왜곡하면서 더 먼 배경 우주의 빛이 왜곡되어 도달한다. 

 

제임스 웹으로 관측한 판도라의 은하단. 사진=NASA/JWST

 

천문학자들은 Abell 2744 은하단 주변에서 중력 렌즈 현상을 거치면서 모습을 드러낸 먼 왜소은하 여덟 개의 허상을 확인했다. 이들은 중력 렌즈 현상을 통해 각각 원래 밝기보다 2~27배까지 더 밝게 증폭해 관측되었다. 제임스 웹은 흐릿한 얼룩에 불과한 왜소은하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이 은하들이 재이온화 시기에 근접한 아주 먼 과거의 은하라는 사실을 검증했다. 모두 우리 은하보다 질량이 100배나 더 가벼운 아주 작고 왜소한 은하들이다. 

 

그런데 이 왜소은하들은 작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유독 자외선 영역에서 아주 많은 에너지를 내뿜었다! 여덟 개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왜소은하에 기대되는 수준에 비해 4배 가까이 더 강렬한 자외선 빛이 방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왜소은하들이 주변의 수소 원자를 얼마나 이온화할 수 있는지를 추산해보면, 우주의 재이온화를 위해 필요한 한계치를 월등히 뛰어넘는 놀라운 수준이다. 

 

가볍고 작은 왜소은하부터 거대한 은하까지 은하들의 질량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면, 질량이 작아질수록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즉 초기 우주의 왜소은하가 이번 발견처럼 생각보다 훨씬 밝은 자외선을 내뿜었다면, 그 수가 많았던 만큼 우주 전역을 충분히 재이온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빅뱅 직후의 우주라면 이제 막 반죽된 왜소은하들이 은하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덩치 큰 은하로 반죽되기 한참 이전이기 때문이다. 

 

이번 발견은 어둡고 흐릿한 겉모습 때문에 무시해왔던 왜소은하들이 사실 우주의 재이온화를 이끈 진짜 주역이었을지 모른다는 놀라운 반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 된 것이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043-6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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