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정치권과 이익단체들이 관세 협상을 빌미로 한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이 미국 플랫폼을 부당하게 규제할 경우 미 정부가 개입하도록 한 법안이 최근 연방 하원에 다시 발의된 가운데, 미국의 주요 기술 정책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 철회를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동시에 국내 업계와 학자들도 글로벌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적정 규제와 국내 플랫폼 진흥책의 필요성을 띄우고 있다. 국내 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과 통상 압박이 맞물린 조건 속 새 정부는 기술 주권과 통상 리스크 사이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플랫폼법’ 미 의회 발의, 플랫폼 규제 두고 불확실성 확대
18일(현지시간) ITIF는 소기업의 ‘트럼프-중국 시대의 한국 정책: 수출 주도 성장이 아닌 광범위한 기술 혁신’ 보고서를 내고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 제고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법 철회를 거론했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규제가 오히려 대기업을 과도하게 옥죄면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중국에는 반사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ITIF는 지난해 말 ‘한국이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법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에 이어 지난달에는 한국의 무역 장벽 철폐 필요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본격 추진된 플랫폼법은 논의 초기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신속하게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는 ‘사전 지정’ 방식이 핵심으로 다뤄졌지만 추진 과정에서 위법 발생 후 시장 지배력을 평가해 제재하는 ‘사후 추정’ 방식으로 전환됐다.
이 법은 기업의 시장점유율과 이용자 수 등 규모에 따라 일부를 지배적 사업자로 사후 추정하고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자사우대 등 부당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할 계획이었다. 확정된 기준은 아니지만 미국의 구글과 메타뿐 아니라 국내 플랫폼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될 것으로 보여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ITIF 보고서는 플랫폼법 및 사후 규제와 관련해 “디지털 시장에서 기관의 권한을 확대하고 특히 소규모 시장 참여자 보호에 중점을 두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성장력을 회복하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 중 하나로는 “플랫폼법을 새로운 사전 규제 체제로 채택하기 전에 공정위가 기존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장 실패인지 엄격히 평가한 후, (수단이 없다면) 광범위한 구조적 규제는 보류하고 현행 공정거래법 시행 및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략산업화가 ‘해답’일까…산업 보호·핀셋 규제 병행해야
플랫폼 규제 정책은 복잡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 등 디지털 산업계는 역차별 문제를 꾸준히 제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들은 국내 실체가 약해 실질적인 제재가 어렵다. 매출 자료 공개부터 세금 부담과 각종 규제를 교묘히 피해가는데 정작 한국 기업들만 이중 부담을 지게 된다”고 토로했다. 빅테크만 겨냥한 ‘핀셋 규제’도 녹록지 않다. 미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해왔다.
이봉의 플랫폼법정책학회 회장은 “콘텐츠 플랫폼은 창작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계 공간을 넘어 데이터나 알고리즘, 수익 배분 등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조를 통해서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국가 경제에서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이미 주요국은 자국 플랫폼 산업 강화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해 공공·민간 협력 기반 플랫폼 정책을 수립 중”이라고 짚었다.

미국이 플랫폼 규제를 통상 및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을 드러내면서 국내 산업 보호와 플랫폼 산업의 전략적 운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다. 국내 사업자가 받을 영향을 최소화한 전략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튜브 같은 콘텐츠 플랫폼들은 전통적인 사업과는 다르다.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이 소비하고 국내 기업이 광고주가 되는데 수수료를 얻는 구글의 매출은 싱가포르에서 잡히기 때문에 우리 과세 당국에서 전혀 과세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난다”며 “플랫폼은 지정학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국내 매출을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싱가포르 법인)에 귀속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축소하고 있다. 한국재무관리학회는 구글의 실제 국내 매출이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른 적정 법인세는 5180억 원 수준이다. 반면 구글코리아와 구글클라우드코리아, 구글페이먼트코리아 등 세 법인이 실제로 낸 법인세는 총 240억 원 규모다.
전 교수는 “한국은 국내 기업까지 동일하게 규제하고 산업 육성보다 규제 강화 논의가 앞서는 현실”이라며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인정하고 창작자 보호, 자율성, 기술 혁신의 균형을 이루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관련 공약에 있어 6·3 대선 후보의 접근법은 다르다. 민주당은 정권을 잡으면 네카오와 쿠팡, 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에 대한 사전 지정 규제 방식을 포함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거래법안’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배달 중개 수수료 논란 등 소상공인과 노동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법안으로 정부·국민의힘 안에 비해 강도 높은 규제가 특징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10대 공약에는 K콘텐츠 제작 전 과정에 대한 국가 지원과 OTT 등 K컬처 플랫폼 육성, 문화 수출 50조 원 달성 등 K콘텐츠 육성이 담겼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경우 플랫폼 산업 관련 직접적인 정책 공약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창출’을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제시했고,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서는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한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에 이어 플랫폼 규제 자체가 관세 협상의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미 연방의회 입법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캐럴 밀러 하원의원이 4일 제출한 한국 대상 미국 플랫폼 기업 차별 제지 관련 법안은 심의를 위해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안 원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회기 계류 끝에 자동 폐기된 ‘반(反)플랫폼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플랫폼 규제를 따와 추진 중인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서 교수는 “유럽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측면에서 해외 플랫폼 사업을 규제하고 있으나 한국은 법률안에 자국 플랫폼 보호를 고려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영향 평가를 거의 안 한 것”이라며 “이중, 삼중으로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 규제 마련 절차에서 법적 정당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준영 경상공립대 법학부 교수는 “공정거래법, 약관규제법, 전자상거래법 등 기존 경제 법률이 나름 잘 대응하고 있다”며 “EU법과 별개로 자체 법을 개정해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해 운영하는 독일 사례처럼 기존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 경쟁 정책을 수립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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