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5년 5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중심으로 국지적인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언뜻 보면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듯한 흐름이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실체가 다르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시장은 여전히 거래절벽과 가격 조정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며, 전세 시장 또한 신축 중심의 반사 이익을 제외하면 극심한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점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추가지정’,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 규제 일변도의 정책 도입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서울시,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련 부처가 총출동한 ‘제16차 부동산 시장 및 공급상황 점검 TF’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지금이 어느 시점인가? 2025년은 단순한 해가 아니다. 정권 교체를 앞둔 대선 국면이다. 2017년 들어선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무너졌다. ‘30번이 넘는 대책’, ‘시장을 잡겠다며 쏟아낸 규제 폭탄’, ‘청년들의 내집 마련 꿈을 가로막은 대출 규제’는 모두 과거 정권의 실패한 유산이었다.
#실수요와 투자심리의 혼동-강남의 상승은 전체 시장이 아니다
정부가 규제 강화를 꺼낸 직접적인 이유는 강남·서초·송파·용산 등에서 나타난 가격 상승이다. 서초구의 아파트값은 최근 0.72% 상승하며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이 수치만 보면 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있어 보일 수 있다.
본질은 다르다. 강남권 아파트는 이미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3중 규제가 적용된 상태다. 규제를 강화하려 해도 더 이상 규제할 카드가 없다. 반면 이 지역의 상승은 단기 수급 불균형, 고급주택 수요의 견고함, 정비사업 기대감이 복합된 결과이며, 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특히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한 실거래 상승은 전통적인 중산층 이하 수요자들과는 관계가 없다.
정부가 강남의 움직임만을 보고 전국 시장 전체에 규제 신호를 발신하는 것은 정책의 범위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지방과 수도권 외곽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절반 이상은 침체 혹은 조정 국면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5대 광역시 중 대구는 -0.11%, 부산은 -0.09%, 광주는 -0.06% 하락 중이다. 대전·울산 역시 보합 또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경기도의 아파트 매매 변동률은 –0.01%로 하락 전환했고, 인천은 –0.03%로 하락폭이 커졌다.
심지어 거래량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보다도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지역도 있다. 이러한 시장을 두고 규제 확대로 과열을 막겠다는 것은, 감기에 걸린 환자에게 해열제를 또다시 먹이겠다는 격이다.
지방의 미분양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방 광역시와 중소도시는 대규모 신축 입주와 이탈하는 수요 속에서 전세가도 동반 하락하고 있으며, 매수심리 자체가 바닥에 붙어 있다. 규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숨 쉴 틈이 필요한 시장이다.
#지금 필요한 건 해제와 공급이다
오히려 지금 정부가 검토해야 할 정책 방향은 정반대다.
첫째, 규제의 정교한 해제다.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벗어나야 할 지역이 많다. 인천 연수·남동·서구, 경기도 동두천·이천·안성, 대전 유성·중구 등은 전형적인 규제 해제 대상이다. 실거래가 하락, 거래절벽, 미분양 누적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 이 지역에 남아있는 규제는 시장을 묶는 족쇄일 뿐이다.
둘째, 공급 확대와 민간의 참여 활성화다. 서울 도심의 정비사업은 행정 절차와 정치적 변수에 얽혀 10년이 넘게 정체되어 있다. 정부는 모아타운, 신통기획 등 구호는 외치고 있으나, 실제 조합 설립이나 착공 단계로 진입한 곳은 소수다. 시장은 ‘공급한다는 말’이 아니라 ‘착공된 현장’을 원한다. 민간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행정적 신속화, 그리고 인허가 예측 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실수요자도 움직인다.
셋째, 이사할 수 있는 시장의 정상화다. 대출규제는 특히 2030세대와 무주택자에게 칼날이 된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7월부터 수도권에 적용되면, 주택 구입은커녕 전세 이사도 어렵게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규제가 아니라 대출의 정교한 완화와 자금 흐름의 복원이 핵심이다.
#정치의 실패를 정책으로 반복하지 말라
2022년 정권 교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결정적이었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민심 이반이 먼저 나타난 곳이 집값이었다. 정비사업을 틀어막고, 세금을 때리고, 대출을 조이고, 거래를 끊었던 그 5년이 어떻게 끝났는지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대선을 몇 달 앞둔 지금,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규제지역 재지정?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시장은 다시 얼어붙는다. 그리고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영원히 ‘기회의 땅’이 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
지금은 시장을 다시 신뢰시켜야 할 때다. 규제로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공급계획과 공정한 제도 운용으로 민심을 돌려야 한다. 정책은 권력이 아니라 신뢰로 작동해야 한다.
#줄서기 정치 아닌, 시장 신뢰로 대선 치러야
지금 정부가 규제 강화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정책 줄서기’로 보일 수 있다. 차기 정부에 잘 보이려는 의도든, 국면 관리용이든, 결과는 같다. 시장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시그널을 받게 되고, 실수요자는 관망하고 투자자는 떠난다.
그 누구도 더 이상 규제에 속지 않는다. 대신, 시장은 ‘공급이 나오는지’, ‘정책이 일관적인지’, ‘대출이 열려 있는지’를 본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민심은 또다시 움직인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의 안정을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규제가 아니라 해제, 통제보다 신뢰, 겁주기보다 예측 가능성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을, 그리고 대한민국의 주거 시장을 안정시키는 해법이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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