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엄광용 작가의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이 총 10권으로 완간되었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태왕의 꿈’은 광개토태왕 담덕의 일생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이 소설 전체의 핵심적 의미를 요약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담덕을 중심으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에 이르는 역사적 격동기를 재현하고 있다.
작품은 담덕의 출생과 성장, 즉위와 정복 활동, 그리고 사후 능비 건립까지 약 40여 년에 걸친 일대기를 따라간다. 재위 기간 22년 동안 그는 거대한 영토 확장과 대외 전쟁을 주도했으며, 당시 동북아 질서를 재편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태왕의 꿈’은 이 마지막 여정을 다룬 권으로, ‘추모 위령제’에서 시작해 동부여 원정까지 주요 국면을 구성하고 있다.

작가의 문체는 비교적 평이하면서도 탄탄한 서사 구성 위에 세밀한 묘사와 역사적 상상력을 조화롭게 얹고 있다. 특히 자연 풍경과 전장의 긴박함, 궁중의 심리전, 외교적 갈등 등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일정 수준의 문학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시적 표현이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인물의 대사와 서술의 균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문학적으로 이 작품은 한국 대하소설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다. 작가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그 이면에 깔린 권력 구조, 민족의식, 리더십, 생존 전략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당시 고구려의 정치체제와 국제 정세, 문화적 특징에 대한 간접적 통찰을 얻게 된다. 픽션의 영역이지만 역사적 맥락과 상상력이 충돌하거나 부조화를 일으키는 지점 없이, 비교적 조화롭게 서사가 이어진다.
시리즈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馬)’과 ‘길’의 이미지는 담덕의 확장 정책과 연결되며, 이 상징은 마지막 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작품은 이러한 모티프를 활용해 단일 인물 중심의 전기적 구성에서 벗어나, 국가와 공동체, 시대의 흐름까지 포괄하는 시야를 확보한다. 마지막 장인 ‘태왕의 꿈’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정점에 이르며, 담덕이라는 인물의 리더십과 비전이 총체적으로 드러난다.
역사소설로서의 미덕도 분명하다. 작가는 주요 전투, 외교 사건,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등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지나친 교훈성이나 이념적 해석을 피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품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비교적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하며,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서사적 흥미를 유지한다.
‘광개토태왕 담덕’은 한국 고대사 속 영웅 서사를 소재로 하면서도, 오늘날의 리더십, 공동체 정신, 정체성에 대한 반추를 가능케 하는 장치를 내포한다. 이는 이 시리즈가 단지 과거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환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한 대하소설로서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성과 서사적 밀도를 갖추고 있으며, ‘태왕의 꿈’은 그 마무리로서 설득력 있는 완결성을 보여준다. 고대사의 서사화를 통해 문학적, 역사적 두 영역에서 모두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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