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3년 차를 맞았다. 수도권 외 지역에 기부금이 집중되면서, 제도가 본래 취지인 ‘지역 균형 발전’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영남 지역을 강타한 초대형 산불을 계기로, 고향사랑기부제가 재난 복구 지원의 창구로도 유용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연재난 상황에서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한 모금이 불가능해, 현장에서 법적 혼선과 실무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핵심 부처 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기부자도, 지자체도 이득…재난 대응까지 확장
고향사랑기부제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제외한 타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는 제도로, 연간 10만 원까지는 전액, 그 이상은 16.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기부금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도 제공된다. 예를 들어 10만 원을 기부하면 실질적으로 13만 원 상당의 혜택을 돌려받는 셈이다.
지방 인구 감소와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고향사랑기부제가 귀중한 재원 확보 수단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외 지역에 모인 기부금은 수도권의 3배에 달했고, 특히 인구 감소 지역 89곳은 그 외 지자체보다 1.7배 많은 기부금을 모았다.
이 제도는 재난이 발생한 지역에 기부금을 직접 보내는 ‘지정기부’ 기능을 통해 재난 대응 자금 마련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은 8개 지자체는 ‘고향사랑e음’ 플랫폼을 통해 복구 기부 캠페인을 벌였고, 경북 안동을 제외한 7개 지자체에만 43억 원이 모였다. 민간 플랫폼과 안동시까지 포함하면 실제 모금액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기부금을 운용할 수 있고, 기부자에게는 세제 혜택과 답례품이라는 인센티브가 있는 만큼, 재난 기부 활성화 가능성도 높다는 평가다.

#재난 유형 따라 기부 허용 여부 달라져
하지만 재난 기부를 둘러싼 법률 간 충돌이 현장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 안성시다. 지난해 12월, 안성시는 폭설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한 모금을 추진했지만, 곧바로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행정안전부 재난구호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재해구호법’ 제18조 1항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의연금품을 직접 모집하는 행위는 금지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조항은 국가나 지자체가 의연금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불균형하게 배분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을 담당하는 행안부 균형발전진흥과는 안성시의 모금이 문제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법률 간 충돌’이 인정돼 모금은 가능해졌지만, 유사 사례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산불 피해 기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불이 ‘자연재난’으로 분류되면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한 모금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당시 산불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면서 기부가 가능했다. 이처럼 재난 분류에 따라 기부 가능 여부가 달라지는 상황은 기부자와 지자체 모두에게 불합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자연재난·사회재난, 구분이 꼭 필요해?
행안부 재난구호과는 재해구호법의 취지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의 기부 모집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사회재난에 한해서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한 모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고향사랑기부제를 담당하는 행안부 균형발전진흥과는 재난구호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자체가 기부를 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국회 일부에서는 자연재난 상황에서도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기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재난구호과는 법 취지 훼손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구분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의 발생 원인에 따라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눌 수 있으나, 막대한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재난 모두 기부금의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 지정 기부를 진행했던 경북 영덕군 관계자는 “현재의 운영 방식은 현장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법 적용은 지자체 공무원의 업무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경북 안동시 관계자는 “산불 피해 지정기부를 시작하기 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의 차이를 일일이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송창석 자치분권연구소 이사장은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자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자연재난 상황에서도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서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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