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국가 기관이 주로 집행한다. 집행 근거는 법령 및 정부의 정책이므로, 정권의 방침이나 의중에 따라 집행 수위와 방향이 좌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정거래법의 집행 동향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연초에 게시하는 공정위 업무보고나 이슈별로 나오는 관계 부처 합동 발표 자료 등을 챙겨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 대선후보가 언급한 공약사항 역시 매우 중요한 자료다. 이를 통해 향후 5년의 임기 동안 어떠한 주제를 강조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공약사항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급변하는 대외환경, 저출생,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분배보다는 성장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 정부 10대 공약은 대부분 경제, 산업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6대 성장엔진’으로 △AI △바이오 △콘텐츠 △방위산업 △에너지 △제조업 등을 꼽았는데, 이들 산업 모두 대기업의 역할과 비중이 큰 영역이다.
새 정부 10대 공약 중 하나로 ‘가계·소상공인 활력 증진, 공정 경제 실현’이 있다. 여기서 ‘공정 경제’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과거에는 공정 경제 실현이란 갑을 관계로 인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노력을 의미한다고 봤다. 그러한 배경에서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하도급법 등을 대대적으로 개정하고 강화했다.
그러나 이번 공약집을 보면, 공정 경제라는 문구를 갑을관계 해소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주식시장 개편, 주주환원 강화, 외국인 투자자 유입 확대 등과 관련한 개념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 공약 중 공정거래 분야는 대체로 과거부터 논의한 사항을 보완하는 정도로 보이는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➀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및 이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온라인 플랫폼 시장 구축
➁ 단체협상권 도입 등을 통한 가맹점주, 대리점주, 온라인플랫폼 입점사업자 등 경제적 약자의 협상력 강화
➂ 납품 대금 연동제 실효성 강화, 공공공사 표준 하도급 계약서 사용 의무화, 건설공사 하도급 적정성 심사 기준 개선 등을 통한 중소기업 협상력 제고 및 권익 향상
➃ 손해배상 소송 시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권 신설, 피해 구제기금 조성, 불공정거래 피해 구제 지원 강화 등을 통한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
공약 중 가장 중요하게 보이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및 규제’다. 새 정부는 공약집에서 “플랫폼 중개수수료율 차별 금지 및 수수료 상한제 도입으로 공정한 배달 문화 구축” 등 세부 사항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과거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법의 내용을 보면 이용자 수, 시장 점유율 등을 기준으로 적용 대상이 되는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추정하고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 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한다. 위반 시 시정명령, 과징금, 임시중지명령 등의 제재를 내린다.
위 내용에서 보듯 온라인 플랫폼법의 주된 적용(규제) 대상은 일부 IT 공룡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법 이슈에선 이례적으로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이 미국 정부나 의회의 반발을 야기해 한미 통상 갈등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진지하게 나오기도 했다.
국내 IT 업계 역시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불명확하고 과도한 규제인 데다 규제의 실효성이 불분명하며, 중복 규제·IT 생태계 위축·소비자 후생 저해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고 반발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이 국내 시장에서 외국 플랫폼의 독주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고, 기업 규모로 비교하면 여전히 외국 기업과 격차가 있으므로 규제보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이유에서 온라인 플랫폼법을 새로 제정하기보다는 공정거래법과 관련 고시를 개정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는데, 새 정부가 공약집에서 온라인 플랫폼법을 언급하면서 법 제정 여부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공정거래법은 사실상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담으로 집행한다. 정부 기관의 특성 상 일단 법을 제정해야 관련 예산을 책정하고, 부서를 조직해 본격적인 집행이 이뤄진다. 과거 고시로도 존재했으나 같은 내용으로 대규모 유통업법, 대리점법을 제정함으로써 집행이 활성화된 사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기존 법령, 고시 개정만으로는 집행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여부는 너무나 민감한 주제이며, 양쪽 주장이 모두 탄탄한 논거가 있다. 그러다 보니 공약집의 방향과 달리 △독과점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사전에 규제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외국과의 통상 분쟁을 야기할 수 있으니 법 제정은 보류하고 △기존의 정책을 보완해 플랫폼 사업자, 입점업체 간의 갑을 관계 해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추구할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외국과의 통상 문제나 성장이 시급한 최근의 시장을 보면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각종 거래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배달앱 수수료, 티메프 사태 등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이슈를 고려하면 법안이 생길 때까지 제정 논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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