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3년 동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빠르게 달라진 분야 중 하나는 방산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벤처캐피털이 방산 스타트업 투자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의 드론, 전장 AI, 위성, 사이버 보안에 이어 최근에는 ‘미사일 스타트업’이 새로운 투자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의 스타트업 전문 매체 시프티드(Sifted)는 “최근 유럽 VC들에게 미사일과 관련한 스타트업들이 피칭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일부 스타트업은 미국산 장거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Tomahawk)보다 저렴한 대안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독일 베를린 기반 VC인 프로젝트 A(Project A)의 파트너 잭 왕(Jack Wang)도 최근 3개월 사이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스타트업을 여러 곳 봤다며 “사람들이 드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명확한 안보 공백이 있다. 2026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 주둔 미군 5000명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확대됐던 유럽 내 미군 주둔 규모를 다시 2022년 이전 수준에 가깝게 되돌리는 조치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독일을 포함한 NATO 회원국들이 자국 방위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이번 조치는 유럽 안보가 더 이상 미국의 정치적 결정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럽은 “미국이 항상 유럽을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2024년 미국과 독일은 2026년부터 독일에 장거리 화력 체계를 순환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계획에는 SM-6, 토마호크,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2026년 들어 미군 감축 발표와 함께 장거리 미사일 배치 계획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다. 독일 국방부는 이 계획이 “최종 취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동시에 미국산 토마호크와 타이폰(Typhon) 지상 발사체 구매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유럽이 미국의 배치 결정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의 정치 상황 변화에 따라 안보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 단기간에 미국산 무기에만 의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럽은 이미 자체 장거리 타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ELSA(European Long-Range Strike Approach)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웨덴, 영국은 장거리 타격 역량 개발 협력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무기 조달이 아니라 유럽 방산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싸고 대량생산 가능한 미사일
유럽 미사일 스타트업의 핵심 키워드는 고성능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단어는 ‘저비용’과 ‘대량생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의 비용 구조를 바꿔놓았다. 저렴한 드론을 막기 위해 훨씬 비싼 요격체를 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유럽 스타트업들은 비싼 무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보다 충분히 성능이 좋고,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는 체계를 내세운다.
대표 사례가 에스토니아 방산 스타트업 프랑켄버그 테크놀로지스(Frankenburg Technologies)다. 이 회사는 2024년 설립된 대드론·미사일 방어 스타트업으로, 저렴하고 대량생산 가능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개발한다고 설명한다. 2026년 2월에는 3000만 유로(약 51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프랑켄버그는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PGZ와 협력해 대드론 방어용 미사일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연간 최대 1만 발의 MARK I 미사일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영국·독일 기반의 극초음속 방산 스타트업 하이퍼소니카(Hypersonica)다. 이 회사는 유럽 최초의 독자적 극초음속 타격 역량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2026년 2월 2330만 유로(약 396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에는 독일 VC 프로젝트 A(Project A), 독일 정부 혁신기관 슈프린트(SPRIND), 미국 VC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 등이 참여했다.
스위스·프랑스 기반의 방산·극초음속 항공 스타트업 데스티누스(Destinus)는 기존 방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결합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6년 4월 독일의 대표 방산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과 데스티누스는 ‘라인메탈 데스티누스 스트라이크 시스템즈(Rheinmetall Destinus Strike Systems)’라는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 합작사는 순항미사일과 탄도 로켓 포병 시스템의 제조·판매를 목표로 하며, 라인메탈이 51%, 데스티누스가 49% 지분을 갖는 구조다.
#미사일 스타트업, 가능한가
미사일은 전통적으로 대형 방산기업의 영역이었다. 유럽의 대표 미사일 제조사 MBDA, 독일의 방산 대기업 라인메탈, 프랑스의 방산·전자기업 탈레스(Thales), 프랑스·유럽 우주항공 합작기업 아리안그룹(ArianeGroup) 같은 기업들이 국가 조달과 장기 연구개발을 기반으로 시장을 지배해왔다.
실제로 프랑스 탈레스와 아리안그룹은 2026년 5월 프랑스의 장거리 로켓 발사체 FLP-t 150의 첫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럽 내 장거리 타격 역량 확보 흐름의 일부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이유는 전장의 속도 때문이다. 기존 방산 조달은 느리고, 국가별 요구사항은 복잡하며, 생산능력은 제한적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저비용 하드웨어, 빠른 생산 전환이 실제 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영국 매체 가디언(The Guardian)은 유럽이 저비용·고기술 무기 생산을 서두르고 있으며, 드론과 소모성 장비 중심의 전쟁 방식이 방산 스타트업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프티드에 따르면 유럽 방산 스타트업은 2025년에 23억 유로(약 3조 9100억 원)를 유치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6~2027년 EDIP(European Defence Industry Programme)에 15억 유로(약 2조 5500억 원) 규모의 워크프로그램을 채택해 방산 생산능력과 기술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 방산 VC들은 단순 드론이 아니라 장거리 타격 체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럽이 단순히 방어만이 아니라 독자적 억지력(deterrence)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그러나 미사일 스타트업이 정말 벤처 투자에 적합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미사일은 드론보다 규제, 수출통제, 인증, 정부 조달 의존도가 훨씬 더 강하다. 고객은 대부분 국가이고, 판매 주기는 길며, 실전 배치까지는 정치적 승인과 군사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VC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시장의 긴급성이다. 유럽은 러시아 위협, 미국 안보 보장의 불확실성, 방산 생산능력 부족이라는 세 가지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더 싸고, 더 빠르게, 유럽 안에서 만들 수 있는 무기 체계’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사일 스타트업의 투자가 각광받는 이유는 유럽 각국 정부의 방산 예산이 구조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 장거리 타격 및 대드론 방어는 명확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기존 프라임 방산기업들이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타트업과의 협력 또는 인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근거가 된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기존 방산 기업과의 협업과 인수 합병 등의 기회가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 방산 열풍, 남 얘기가 아니다
한국 입장에서 이 흐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미사일, 방공, 전자전, 드론, 군용 통신, 위성, AI 기반 감시정찰 분야에서 강한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 다만 유럽 시장에서는 단순 완제품 수출보다 현지 파트너십, 공동개발, NATO 표준 대응, 수출통제 관리가 중요하다.
유럽 방산 스타트업의 부상은 한국 기업에게 두 가지 기회를 만든다. 하나는 유럽 스타트업과의 기술·부품 협력이다. 추진체, 센서, 항법, 소재, 배터리, 통신 모듈, 제조 자동화 등은 스타트업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 내 생산 및 공동 조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EDIP, ELSA, 각국 국방부 조달 프로그램은 앞으로 더 많은 민간 기술기업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분야는 일반적인 스타트업 해외진출과 다르다. 기술력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규제 준수, 안보 동맹 구조에 대한 이해다. 유럽 방산 시장에 접근하려는 한국 기업은 “우리가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보다 “유럽 안보 생태계의 어느 공백을, 어떤 파트너와, 어떤 규제 체계 안에서 채울 수 있는가”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전쟁을 외면하지 않는다. 기후테크와 핀테크, SaaS 중심이던 투자 언어는 방산, 회복탄력성, 기술주권이라는 단어로 확장되고 있다. 그 중 미사일 스타트업은 가장 논쟁적이지만, 동시에 유럽의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다.
드론이 현대전의 비용 구조를 바꿨다면, 미사일 스타트업은 유럽 안보의 산업 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무기 개발 경쟁이 아니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스스로 억지력을 생산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산업적 실험이다. 그리고 그 실험의 최전선에, 이제 스타트업들이 서기 시작했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 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유럽스타트업열전] 유럽 VC의 지갑이 열리는 곳…헬싱, 미스트랄 다음은?
·
[유럽스타트업열전] 전환기 맞은 독일 자동차산업 생존법, BMW 'AI 펀드'
·
[유럽스타트업열전] "SaaS 버리고 AI로" 10년 일군 브랜드 스스로 없앤 이 남자
·
[유럽스타트업열전] 한국-독일 잇는 '진짜' 투자자 네트워크 첫발
·
[유럽스타트업열전] 이재용 옆 33세 스타트업 창업자…프랑스가 그리는 '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