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래서 사람은 좋은 데 살아야 해. 별 잡종들이 다 꼬이네.”
굉장히 거칠고 천박한 표현이지만, 이런 뉘앙스의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대놓고 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좋은 데’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곳이다. 가급적 서울, 가급적 비싼 동네 중에서도 강남, 가급적 신축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선 이런 ‘좋은 데’에 대한 ‘간증글’이 넘쳐난다. ‘좋은 동네엔 애들도 예의 바르고, 사람들이 모두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가졌더라’’는 이주 주민의 후기, 상가 자영업자의 후기들을 당신도 읽어본 적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의 주인공 노우성(강하늘)도 그런 ‘간증글’에 나오는 미래를 꿈꿨다. 10분 만에 1000만 원이 오르는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 우성은 ‘국평(국민평형)’이라 불리는 34평, 84제곱미터의 아파트를 11억 원에 샀다. 온갖 돈을 탈탈 끌어 모으고 각종 대출에, 퇴직금 중간 정산에, 고향 어머니의 마늘밭까지 판 끝에 가질 수 있게 된 아파트다. 계약한 날이 2021년 4월. 알다시피 2021년은 전국적인 부동산 ‘불장’의 시기였다. 아파트값 급등세에 놀란 30대(36.4%)가 서울 아파트의 상당수를 매수했던 해이기도 하다. 마치 우성처럼.
2024년 8월, 우성의 현실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영끌’한 아파트 가격은 8억 원 후반대까지 가격이 하락해 있고,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출 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과는 파혼한 지라 외벌이로 그 무지막지한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회사에서 온갖 전기 기기를 ‘도둑 충전’하고 탕비실의 비품을 털어오는 것은 물론, 퇴근 후 아르바이트는 기본이다. 집에서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산다. 삼복더위에도 에어컨 따윈 틀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층간소음까지 우성을 괴롭힌다. 더 끔찍한 건 자신도 층간소음에 시달리는데, 아랫집의 섬뜩한 포스트잇 테러가 이어지며 어느 순간 아파트 전체에 우성이 층간소음 유발자로 소문이 난 것이다.

1301호 세입자가 1401호 우성에게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포스트잇 테러를 날리고, 이에 우성은 층간소음 유발자를 찾아 자신의 윗집 1501호 진호(서현우)에 이어 계속해서 위를 향한다. 왜? 층간소음은 단순히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향하는 게 아닐 수 있으니까. 아랫집에서 윗집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벽을 마주보고 있는 가구들 간에 생기는 벽간소음도 있다. 그렇게 위로, 위로 향하던 우성은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입주자대표 은화(염혜란)를 만나게 된다. 은화는 봉투를 건네며 우성의 입을 막는다. GTX 개통 때까지 아파트 가격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며 “등기 친 사람끼리” 이해 좀 하자고 한다.

그러나 층간소음은 그치지 않고, 아파트 전체는 흉흉한 분위기로 뒤덮인다. 우성은 윗집 진호와 함께 층간소음 근원지를 찾으려는 동시에 코인으로 대박 난 회사 동료의 고급 정보를 받아 ‘한 큐’에 빚을 청산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과연 층간소음 유발자는 누구일까. 우성은 코인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파트는 무사히 GTX가 개통되며 가격이 상승될 것인가. ‘84제곱미터’는 지금 이 시대 한국인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이글이글한 욕망을 다루며 강렬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관객 126만 명(7월 16일 기준)을 모은 영화 ‘노이즈’ 또한 층간소음을 소재로 내세워 흥행 중인 것을 봐도 아파트와 층간소음 문제가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물론 ‘84제곱미터’에서 결국 드러나는 층간소음 유발자의 정체와 그 동기는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이다.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나가도 너무 나가긴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눈에서 뗄 수 없는 건, 극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지키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이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은화가 내뱉은 “이래서 사람은 좋은 데 살아야 해”라는 말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그 부를 향한 차별적 욕망에서 우리 대부분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우성이 대출금을 갚기 위해 하는 벼랑 끝의 선택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차마 비난하지 못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 있을 테니까.

몇 년 전부터 신춘문예 투고작 태반이 전세사기를 포함한 부동산과 코인 소재 이야기라고 한다. 돈으로 짓밟히면서도 돈에 갈급이 난 세상이 되었다는 방증 아닐까.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복 있는 자들’은 임대주택에서 최대한 오래 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가난을 추구하는 주인공을 내세우는 도발적인 작품인데, 그 주인공은 일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오히려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그를 한심하다고 비난하기엔 멈칫하게 된다. 아파트를 발판 삼아 코인으로 돈을 벌려는 우성은 그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 있는 듯 하지만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84제곱미터’는 데뷔작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현실밀착형 공포를 잘 보여준 김태준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감독은 “집이 투자처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청년 세대들이 갖고 있는 힘듦과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런 것들이 조금 변해야 하지 않을까, 집만큼은 편안한 보금자리 같은 공간으로 남아야 되지 않겠느냔 생각이 든다”고 말했지만, 자본주의 계급 갈등이 극대화된 세상에서 서울의 아파트를 편안한 보금자리로 인식하게 될 날은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비현실적인 공포를 동원해서라도 작금의 세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인식이 ‘노이즈’나 ‘84제곱미터’ 같은 작품이 나오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84제곱미터’는 7월 18일 공개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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