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영미권조차 케이팝을 학부모들이 긍정적으로 본 이유는 바로 건전함 때문이다. 우리는 건전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과거의 검열시대에 쓰던 건전가요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영미권 팝송의 한계를 극복하는 의미에서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 건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미권 팝송은 성적인 일탈을 당연시하거나 약물에 탐닉하고 다른 이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가사가 수두룩했다.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청춘의 특권인 듯 굴었다.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인기 팝송을 듣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내용은 반교육적인 면이 허다했다. 이건 기성세대의 관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팝송의 전체적인 기조도 비관적, 염세적이며 우울하고 비하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이와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 케이팝의 가치관 내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이 영국과 미국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더구나 걸그룹 보컬 콘셉트의 노래로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그동안 케이팝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게 여섯 번인데, 그룹 네 번, 솔로 두 번 모두 방탄소년단 작품이었다. 로제의 ‘아파트’는 3위에 그쳤다. ‘골든’은 케이팝의 젠더 편중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케이팝이 스토리를 매개로 할 때 얼마든지 좋은 반응과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이 노래가 케이팝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주요 차트에 대거 오른 다른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감독과 가수는 한국 국적이 아니고, 투자는 넷플릭스가 하고 제작은 일본계 기업인 소니 픽처스가 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노래를 보면 영어 가사인 데다가 창법도 전형적인 영미권 창법이다. 영어 발음도 연음 발음에 충실하기 때문에 한국식 영어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리듬감이나 박자를 확인하기 힘들 수 있다. 그야말로 팝송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고음으로 올리는 두성음에 충실하며 미성음을 지향하는 경향도 그렇다.
그럼에도 ‘골든’을 비롯해 ‘유어 아이돌’, ‘소다팝’, ‘테이크다운’ 등 케데헌의 OST는 케이팝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팝의 음악 정체성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일단 세계관이다. 개개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고, 밝고 긍정적인 존재감을 갖게 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에너지와 힘을 준다. ‘골든’의 가사 내용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유령이었고, 외톨이였어/ 우리는 간절하게 꿈을 꿨고, 무척 멀리까지 왔어. 이제 난 믿어/우리는 함께할 때 찬란히 빛나/숨는 건 끝이야, 난 이제 빛나고 있어, 내가 태어날 적부터 그랬듯이/ 왜냐면 우린 강인한 목소리를 지닌 헌터니까, 이제 믿을 수 있음을 알아/우린 분명히 황금빛으로 물들 거야/우리는 분명히 날 때부터 반짝이네/밝게 빛나는 우리/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시간이야, 두려움도 거짓도 없어/그게 우리가 태어난 이유야.”
‘골든’의 가사 내용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토리와 완벽하게 부합해 더욱 몰입과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OST가 장면이나 설정과 상관없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케이팝은 좋은 노래와 메시지, 선한 영향력을 기본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고 이를 통해 팬덤을 열어왔다. 방탄소년단, 세븐틴, 스트레이키즈는 물론이고 블랙핑크도 마찬가지다.
케데몬에서는 좋은 노래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젊은 세대를 보호하고 돌보는 개념으로 혼문을 제시한다. ‘골든’은 이 혼문의 최고 수준을 의미한다. 그들은 황금 혼문으로 악령을 막으려는 근본 목표를 갖고 있다. ‘혼문’은 헌트릭스(HUNTR/X)가 음악과 감정으로 생성하는 영적 보호막을 뜻한다. 보호막 덕분에 인간 세계는 악령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황금 혼문은 영미권의 쾌락과 일탈을 강조하는 음악에 대항하는 케이팝의 본질을 말한다. 혼문은 ‘혼(영혼)’과 ‘문(문, 통로)’을 합친 말쯤으로, 많은 사람들의 진실한 감정이 모아질 때 이루어진다. 요컨대 헌트릭스는 황금 혼문을 최종 완성하려 하는데 그것이 ‘골든’이라는 곡에 잘 담겨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때 그러한 마음이 모여 악령의 침입에서 자신과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케이팝은 젊은 세대가 모여 함께 노래 부르고 퍼포먼스를 나누는 방식이 기본이다. 나에게 바탕을 두고 우리를 강조하는 것은 서양의 개인주의에 아시아적 가치인 공동체 정신이 결합된 것이다. 특히 청춘기의 고민과 방황, 혼란과 갈등을 딛고 성장해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케데헌의 노래들은 이에 부합한다. 어려운 상황을 경쾌 발랄한 노래와 군무를 통해 초극하려 한다. 반복적인 후렴구를 사용하는 것은 중독성의 효과도 있지만 자기 확신과 충만함을 채우려는 주문과 암시와도 같다. 그것이 집단적 문화 주술로 나타나는 것이 팬덤이며, 긍정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케데헌의 음악 자체에서도 케이팝이 가진 쾌활함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음악장르를 융・복합한다. 무엇보다 케이팝은 청춘이 중심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다루며 함께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일한 케이팝 장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티스트의 성장, 성공이 팬들의 성장, 성공과 동일시되는 이유다. 오히려 국내 기획사들이 이런 특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케데헌 가창자들이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루미 파트를 맡은 이재는 10년 넘게 아이돌 연습생 활동을 했고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거듭나 에스파, 레드벨벳, 트와이스 등의 곡을 만들었다. 케데헌 OST에 프로듀서와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그는 케이팝의 본질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미라의 보컬을 담당한 래퍼 오드리 누나, 조이의 보컬 레이 아미도 한국계 케이팝 자산이다. 국적을 떠나 케이팝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창작과 퍼포먼스를 진화시키는 것으로 자격은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케데헌 노래들이 케이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케데헌 현상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이나 함의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것인가다. 그쪽으로 나설 마음과 자세가 되어있는지 물어야 한다. 케데헌은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상표권을 전방위에 걸쳐 재빠르게 등록한 것이다. 우리도 넷플릭스처럼 못할 게 없지 않은가. 적어도 콘텐츠 유통 플랫폼업자가 아닌 오리지널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중심인 케이팝이라면 말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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