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기도 포천 국도변에 자리한 한적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의외의 활기가 느껴졌다. 유심히 들여다보며 작업화를 고르는 노동자, 탈의실에서 바지를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선 중년의 가장, 아이 손을 잡고 들어온 가족 단위 고객까지. 한쪽에서는 젊은 부부가 재킷을 집어 들고 서로 어울리냐고 묻고 있었다. 매장 한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에는 다양한 작업복이 빼곡히 걸려 있고, 그 옆으로는 각종 장비와 전기용품이 진열돼 있었다. 흔히 떠올리는 패션 아울렛 매장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이곳에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일에 필요한 ‘소모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어보고 비교하며 ‘쇼핑’을 하고 있었다. 최근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워크웨어 전문몰 ‘워크업’ 이야기다.

워크업은 원래 캠핑용품 유통 브랜드 ‘고릴라 캠핑’을 운영하던 트레이딩포스트에서 새로 시작한 사업이다. 고릴라 캠핑에서 쌓은 대량 생산과 저원가 소싱, 재고 관리와 효율적 유통의 노하우는 워크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전됐다. 텐트와 캠핑 체어를 공급하던 방식이 이제는 작업복, 안전화, 공구, 아웃도어 상품에 적용됐다.
#일본 성공 모델, 한국 시장에 맞게 변형
워크업은 소비자보다 유통업계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과거 도전했지만 실패한 사업모델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일본 워크맨이 그것. 워크맨은 1980년대부터 건설 현장 작업복 체인으로 출발해, 지금은 일본 전역에 9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거대 브랜드다. 최근에는 ‘워크맨 플러스’, ‘워크맨 걸’을 앞세워 작업복을 패션 아이템으로 끌어올리며 ‘작업복의 유니클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국에서도 워크맨 사업모델을 여러 차례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였다. 패션과 실용의 접점을 찾지 못하거나, 가격 경쟁력에서 온라인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발길을 붙잡는 데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 어려운 모델을 한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현실화한 곳이 바로 워크업이다. 워크맨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한국적 소비 문화에 맞게 변형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별점은 ‘피팅’이다. 한국에서 작업복은 오랫동안 싼값에 대량으로 사는 소모품이었다. 사이즈 선택권은 제한적이었고, 불편한 디자인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워크업은 S부터 5XL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갖추고 누구나 직접 입어본 뒤 고를 수 있도록 했다. 피팅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노동자가 당당히 ‘소비자’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옷을 입어보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소비자 권리다.

최근 몇 년 사이 배달 노동자와 건설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는 점도 워크업의 성장 배경과 맞닿아 있다. 안전화, 방수 재킷, 헬멧 같은 장비는 더 이상 일부 산업 종사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노동 현장이 늘어나는 만큼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는 작업복의 수요는 커진다. 특히 정부가 최근 노동 현장의 안전을 강조하며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작업복은 소모품이 아니라 안전의 최전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워크업이 피팅과 품질을 강조하는 것도 이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이 더해진다. 아무리 좋은 의류라 해도 노동자가 비싼 옷을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워크업은 온라인 최저가보다 더 저렴한 가격대에 소비자가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 비결은 공급 방식에 있다. 워크업은 납품업체에 물건을 받을 때 어음이 아니라 현금 결제를 원칙으로 한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자금 회전이 빠르니 단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고, 워크업은 원가를 절감해 판매가를 낮출 수 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 최저가보다 싼 가격에, 그것도 매장에서 직접 피팅 후 구매하는 획기적인 소비 경험을 하게된다.

워크업의 차별화는 가격과 실용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업복도 일정 수준 이상의 디자인을 갖춰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현장에서 일한 뒤 그대로 친구를 만나러 가도 어색하지 않은 옷, 단순히 저렴하기 때문에 입는 옷이 아니라 최소한의 멋과 체면을 지켜주는 옷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노동자를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존중받아야 할 소비자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랜차이즈 운영 방식 역시 파격적이다. 가맹비, 보증금, 인테리어 비용을 받지 않고, 매출과 무관하게 월 50만 원의 고정 비용만 부과한다. 대신 본사가 공급가와 마진율을 투명하게 공개해 점주와 신뢰를 쌓는다. 이 같은 구조는 유통 시장에서 드문 방식이지만, 가맹점주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다이소·올리브영과 닮은 길, 서울 진출이 관건
지금 대부분의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구조조정과 폐점에 내몰리는 것. 하지만 이 힘든 시기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다이소와 올리브영이다. 생활 필수품을 싸게 공급하는 다이소, 합리적인 가격대의 뷰티·헬스 상품을 앞세운 올리브영은 오프라인 침체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인다.
결국 최근 소비 트렌드는 프리미엄보다는 중저가 합리적 소비에 무게가 실린다. 워크업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온라인 최저가보다 저렴하면서도 직접 보고, 만지고, 입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 지금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워크업이 돋보이는 이유다.

워크업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다. 창업 1년 6개월 만에 130개 가맹점을 모집하며 백종원도 부러워할 속도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소비자도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서울 도심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수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긴 하지만, 주요 타깃은 여전히 지방 산업단지와 건설 현장 인근 노동자들이다. 서울은 임대료가 높은 탓에 워크업이 가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형마트와 아울렛 인숍 입점을 시도하고 있다. 이 도전의 성공 여부가 워크업 성장의 다음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업계의 관심이 모이는 지점이다.
매장 안을 천천히 둘러보니 브랜드 철학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노동자는 더 이상 ‘막 입을 옷을 대충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체형과 취향에 맞는 옷을 선택하는 당당한 소비자가 된다. 여기에 가족 단위 고객까지 더해지며 매장은 생활형 아울렛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처럼 워크업의 성장은 노동자의 소비 경험을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저렴한 가격에 더해 입어보고 살 수 있다는 차별점은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 매장이 가져갈 수 있는 확실한 경쟁력이다. 다만 지금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임대료와 경쟁이 치열한 서울 시장 진입 등의 과제도 남아 있다. 이 시험대를 넘어설 수 있다면, 단순한 작업복 브랜드를 넘어 다이소·올리브영처럼 전국적 유통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충분히 엿보인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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