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디지털 자산 기본법, 일명 가상자산 2단계법 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 10일 금융당국이 정부안을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시행한 1단계법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을 맞췄기에 산업 전반을 아우루지 못했다. 시장 성장 속도에 비해 법적 공백이 길어지면서 소비자 피해와 업계의 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상자산 소비자 보호와 입법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디지털소비자연구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국회에서 ‘디지털 자산과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민 의원은 지난 6월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은 현재 여러 건의 의원 발의안이 올라와 있으며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준비 중인 정부안과의 조율을 남겨둔 상태다.
민병덕 의원은 10일 세미나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의 신속한 도입을 강조했다. 민 의원은 “디지털 자산 시대에는 방향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안타깝다. 혁신은 현실이 됐는데 안전망이 과거에 머무르면 안 된다”라며 “디지털 자산이 ‘코인 투기판’이라는 오명을 벗고 건전한 금융 시장으로 도약하려면 예측 가능한 법적 기준, 투자자를 지키는 촘촘한 보호 장치, 사업자가 준수할 명확한 책임과 규율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외국환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지급 수단으로 포함하는 논의가 나왔지만 연계 방안에 대한 규율을 정비하지 않아 제도적 혼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더불어 스테이블 코인을 무역 결제, 해외 송금 등 실물 경제로 확대했을 때 관리할 규정 마련도 촉구했다. 국내외 거래소에서 레버리지 거래가 늘면서 가상자산이 강제 청산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자 보호 방안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미영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축사에서 “현재 국회와 금융당국은 디지털 자산 체계의 안착을 위해 발행 상장 공시, 사업자 진입 규제, 스테이블 코인 등을 포괄하는 2단계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디지털 자산의 복잡한 구조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가 안심하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 전달, 피해 예방에 최선을 다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발제를 맡은 임병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외 가상자산 시장과 규제 현황을 설명했다. 임 교수는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량의 10%가 한국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파생상품이 없는데도 현물로만 10%의 거래량이 나온다는 건 엄청난 규모”라고 전했다.
임 교수는 일본의 입법 현황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는 규제 목적의 법제화는 산업을 육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디지털 자산 법제화가 가장 빠른 곳이 일본이었다. 해킹 사고로 만든 규제 법안이다 보니 2023년에 이미 스테이블 코인을 법제화했는데도 산업이 크지 못했다. 최근에야 발행 컨소시엄을 준비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국내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넓은 범위에서 고민해야 한다”라며 “최근 미국 월가의 대형 은행이 공동으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 기관이 들어오면 시장 판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은행이 발행하는 예금 토큰에 대해서는 이를 모두 고려하는 온체인 금융(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금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임 교수는 “한국은 유럽과 비슷한 금융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만약 유로가 CBDC를 발행하면 유사한 형태의 금융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예금 토큰과 CBDC는 경쟁하는 게 아니라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예금 토큰은 기관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민간에서 활용할 것으로 본다”라고 내다봤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변화에 따른 투자자 보호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정민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디지털 취약계층에 속하던 저연령층(20대 이하)과 고연령층(60대 이상)에서 가상자산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보호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관련 피해자 중에서 약 70%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대처 방법을 모르거나 소액 피해라 포기하는 것”이라며 “집단 피해 분쟁 조정 등의 구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기술이 복잡하고 정보 비대칭이 심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피해 입증하기가 힘들다. 손해배상에서 입증 책임 전환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발행과 더불어 유통과정 전반에서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 정보 불균형, 이해 상충 문제는 2단계 입법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파생상품 가입 시 금융 교육을 하는 것처럼, 디지털 자산도 거래 교육 의무를 부여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도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 확장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면서도, 향후 화폐처럼 사용할 때 생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방법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은 중앙 집중 방식으로 발행할 수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자금세탁에 코인이 사용됐을 때 중앙화 스테이블 코인이어야 문제의 블록을 정지하고 활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결제에 도입하면 송금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를 플랫폼이 지원할 수도 있지만 가스비 제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 화폐 역할을 하면 연말정산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조세특례제한법도 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수단으로서 건전성·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김도년 한국소비자원 박사는 “정부의 물가 관리 차원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어떤 역할을 할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집단 소비자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고민하게 된다”라며 “현행법상 집단 소송 제도는 자본시장법에 따라서만 가능하다. 거래 기록을 다 볼 수 있고 투명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의 제도 설계에서도 이 같은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의 관점을 전통 금융과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디지털 자산 규제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글로벌 규제 정합성이다. 이를 포기하면 산업과 소비자 보호 둘 다 놓치게 된다”라며 “예를 들어 해외 발행사가 한국의 강한 규제에 순응하면서 들어올 이유가 없다. 현재 싱가포르가 해외에서 받은 라이선스를 인정해주는데, 이 같은 유연한 프레임 워크가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한편 11일 민주당은 정부안과 별도로 2026년 1월 중 당 주도의 입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지 않으면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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