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때 SNS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이야기가 있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태양은 11년마다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는 극대기를 맞이하는데, 마침 올해가 극대기인 데다가 특히 올해는 매우 난폭한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올해 여름 오로라를 기대해왔다. 오로라는 태양과 지구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다. 사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내막은 태양과 지구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소리 없는 전쟁의 상처라고도 볼 수 있다.
지구의 자기장은 극지방 하늘에 아름다운 녹색빛으로 빛나는 예술 작품을 그리는 예술가일 뿐 아니라, 사실상 지구 생명체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생명의 은인이다. 만약 자기장이 없었다면 지구는 이미 화성의 운명을 따라갔을 것이다. 지구를 향해 쏟아지는 태양풍 입자들이 고스란히 지상에 도달해 지구의 대기와 바다는 모두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을 테니까. 다행히 지구의 자기장은 1억 5000만 km 거리를 날아온 태양풍 입자들을 막아낼 정도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덕분에 그 아래에서 지구 생명체는 약 45억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진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그런데 자기장은 단순히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가 발견됐다. 어쩌면 지구 자기장이 지구에 산소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어떻게 이렇게 생명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됐을까?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가운데 하나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한 산소 대폭발 사건이다. 약 28억 년 전부터 지구 대기에 급격히 산소가 증가했다. 이 당시 식물이 바다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광합성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산소가 대기를 채우면서 지구 생태계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과거 지구의 하늘에 얼마나 많은 식물이 숨 쉬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구의 오랜 기억을 추억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하나는 숯의 기억을 들춰보는 것이다. 과거 자연 산불로 인해 나무가 타면서 공기 중 산소가 타고 남은 재에 남는데, 그 성분을 통해 과거 산불이 난 당시의 대기 중 산소 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 암염과 같은 광물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소금 결정이 굳으면서 그 안에 갇힌 고대의 대기 성분을 분석하면 산소 농도를 추억할 수 있다.
NASA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약 5억 40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의 산소 농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했다. 그래프의 파란색 선이 산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런데 3억 5000만 년 전에서 2억 5000만 년 전 사이에 아주 흥미로운 구간이 보인다. 이 시기에 산소 농도가 갑자기 40%까지 폭등했다. 그러다가 산소 농도가 조금 줄어들어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 약 1억 년에 달하는 이 특정한 기간에 왜 갑자기 산소 농도가 폭증했다가 줄어들었는지, 그 원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뜻밖의 데이터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정확히 똑같은 패턴을 보이는 또 다른 현상이 있었다. 바로 지구의 자기장이다. 고대 지구의 자기장도 마찬가지로 지구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깊은 바닷속 해양 지각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퍼져나간 발산형 경계의 암석이다. 갓 뿜어져 나온 마그마가 굳는 과정에서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그 안에 있는 금속 성분이 정렬되는데, 이것이 고대 지구의 자기장 방향을 추적하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선이 지구 자기장의 양극이 얼마나 강하게 정렬됐는지를 나타내는 지구 자기장 쌍극자 모멘트 VGADM(Virtual Geomagnetic Axial Dipole Moment)의 변화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앞서 봤던 파란색 그래프,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 변화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특히 3억 5000만 년 전에서 2억 5000만 년 전 사이에 둘 모두 똑같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건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 변화와 지구 자기장 변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둘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너무 강력해서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쉽게도 이번 분석은 둘의 상관관계만 보여줄 뿐, 정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총 세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장의 변화로 인해 산소 농도가 달라졌다, 또는 산소의 변화로 인해 자기장이 변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큰 변화로 인해 산소와 자기장 모두가 동시에 변했다.
첫 번째로 자기장의 변화가 원인이 되어 산소 농도에 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보자. 실제로 중심 별의 난폭한 활동이 그 주변 행성 대기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잘 알려져 있다. 태양보다 훨씬 왜소하지만 난폭한 별 곁에서는 겨우 2500만 년 사이에 현재 지구 대기 전체 질량에 맞먹는 대기 분자가 사라진다는 계산도 있다. 따라서 지구의 자기장이 강해진 덕분에 지구의 대기가 태양풍으로부터 더 잘 버틸 수 있게 되었고, 산소가 더 많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가설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지구 대기 분자 총량이 아니라 그 중에서 산소의 농도 변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 자기장의 성장이 대기권을 보호해준 결과라면 단순히 산소뿐 아니라 전체 대기 총량이 함께 증가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면 단순히 산소만의 농도가 아니라 고대 지구의 대기압과 같은 값을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대 지구의 대기압을 추적할 뚜렷한 방법이 아직 없다. 자기장이 강해진 덕분에 지상 식물들이 더 오래 번성할 수 있었고 덕분에 산소 농도가 더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대기 중에서 유독 산소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자기장에서 산소로 향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의 인과관계도 가능할까?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땅 속에도 그 일부가 전해질 수 있다. 지구의 판이 갈라지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대기 중 산소가 바다를 거쳐 암석과 마그마 속에 스며든다. 그리고 맨틀까지 전해진다. 이러한 하늘과 바다, 땅을 연결하는 대규모 순환을 통해 맨틀의 화학 조성이 산소가 풍부한 환경으로 바뀐다. 맨틀이 산화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가 맨틀과 그 내부 물질이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러한 메커니즘을 입증하는 뚜렷한 근거는 아직 없다.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기장과 산소, 둘 모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는 흥미롭게도 지질학적으로 또 다른 역사적인 시기와 겹친다. 과거 지구 땅이 하나로 붙어 있던 초대륙 판게아가 갈라지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다. 판게아가 본격적으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2억에서 3억 년 전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마침 딱 이 시기에 지구의 자기장과 산소가 모두 비슷하게 급증했다. 이러한 연이은 우연은 지질학적인 변화가 결국 지구의 하늘까지 닿았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이번 발견이 아무런 의미 없는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지구 자기장과 산소 사이에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다면 지구 자기장은 단순히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넘어 지구 생명체가 번성하고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기장 덕분에 강렬한 태양빛을 피해 동굴에 숨지 않고 당당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자기장 덕분에 숨을 들이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지구 자기장이 만들어내는 오로라가 선명한 녹색으로 빛난다는 사실은 절묘한 우연이다. 올해 여름 우리를 설레게 했던 오로라가 유독 녹색으로 빛난 이유가 바로 산소다. 지구 자기장은 태양에서 불어오는 전하를 띤 입자들이 극지방에 모이게 만든다. 높은 에너지를 머금은 이 입자들은 극지방의 상층 대기에서 산소 분자와 부딪히고, 에너지를 얻은 산소 분자들이 빛을 낸다. 산소 분자는 주로 녹색 파장의 빛을 발산한다. 그래서 오로라가 녹색으로 보인다.
사실 이미 작년 5월부터 태양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오랜만에 가장 강력한 단계인 X급 플레어를 토해냈고, 마침 태양의 코로나 물질 분출이 지구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오로라를 보기 어려운 저위도 지역에서까지 오로라가 목격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희미하게나마 오로라가 포착됐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도 많은 언론에서 오로라를 기대한 것이다. 물론 무슨 노르웨이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오로라를 우리나라 하늘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아무리 맑은 날씨에도 맨눈으로 오로라를 알아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사실 화려한 오로라의 향연은 천문학자들에게는 오히려 악몽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태양이 난폭했다는 뜻이고, 그것은 행성 전체에 전기 인프라가 쫙 깔려 있는 현대 인류 문명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대기권 바깥을 떠도는 인공위성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래서 한국천문연구원에서도 시시각각 태양 활동을 모니터링하며 우주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이제 우린 지구의 하늘뿐 아니라 1억 5000만 km나 떨어진 태양의 변덕까지 신경 써야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시하게 지나간 오로라로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태양의 또 다른 빅 이벤트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무려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35년 9월 2일, 태양을 완벽하게 가린 달 그림자가 정확히 한반도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다만 약간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개기일식 경로 대부분이 북한 지역을 지난다는 점이다. 다행히 남한 지역에도 겹치는 곳이 딱 하나 있다. 강원도 북쪽 끝 고성이다.
한때 강원도 속초 일부 지역에서만 포켓몬고 게임이 가능해 엄청난 인파가 몰렸던 것처럼, 10년 후에는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고성에 몰리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되는 만큼 고성군에서도 지자체 행사를 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35년 9월 2일, 부디 그땐 날씨가 꼭 좋기를.
참고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u8826
https://science.nasa.gov/earth/earth-oxygen-magnetic-field-linked/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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