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돌 노조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빙산’이다. 빙산의 대부분은 물에 잠겨 있는데, 약간 물 밖으로 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 인식이다. 아이돌 노조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한 패널이 말했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권리가 너무 신장되었다. 그것이 문제다.” 그 패널은 30대 여성 음악평론가이자 아이돌 관련 책의 저자였다. 어느 교육자가 말했다. “아이돌은 부모와 아이가 계약 관계에 동의했고, 기획사의 경영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자본의 축적과 분배에 대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아이돌 노조 설립을 추진한다는 말에 50대 남성 평론가가 말했다. “별 게 다 생긴다. 아이돌 노조라니 권력이 강해졌다.” 노동 관련 전문가가 말했다. “아이돌의 노동자성은 인정받기 힘들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게 노동의 영역에서는 낯설다.”
어떤 것은 전문적이고 어떤 것은 학술적이며 또 어떤 것은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한 견해다. 이런 견해를 애써 논파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 더 보충할 것들이 있다.
아이돌 가수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는 하나 이는 상대적이다. 과거에 너무 불합리했기에 그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 특히 달라진 표준계약서가 그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여전히 기획사와 아이돌이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하는 것은 아니다. 이면계약을 통해 아이돌에게 불리한 조항이 얼마든지 추가된다. 이상적인 기준에 비춰보면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권리 신장이 된 아이돌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 부모와 본인이 계약서에 동의했다고 해도 불합리한 조치와 대우가 발생할 경우 그 계약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아이돌을 자원했으므로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획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위험 부담은 동등해야 한다. 애초에 아이돌 구성원의 몸을 담보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돌과 연습생은 청춘과 미래를 희생하는 투자를 한다. 사람의 시간과 생명을 소진하는 것이 자본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그런 토대 위에 K팝이 성립한다면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올바른 토대와 관계성 속에서 K팝이 존립해야 한다. 최소한 케데헌의 헌트릭스처럼 말이다.
아이돌 노조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다. 기존 연예계 단체들은 엔터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아티스트를 위한 조직이나 단체는 없다. 가수협회가 있지만 유명가수나 기성세대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젊은 세대, 새로운 장르의 아티스트가 입지를 구축할 만한 조직이나 단체는 아니다. 즉 달라진 K팝 지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4대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중소돌이 매우 많다. 중소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한 기획사 출신들도 부지기수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엑소, 에스파, 캣츠아이 등이 아이돌 노조에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해에 수십 개의 아이돌 그룹이 선을 보였다가 곧 사라진다. 그렇게 이름 모르게 사라지는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대변하는 단체나 조직은 없다. 아이돌 하면 유명하고 돈 많이 버는 존재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요계 내부에서 보면 그런 아이돌은 99.99%의 밖에 있다. 즉 0.01%에 불과하다.
또 대다수 아이돌은 기획사의 부당한 노동 지시를 받고도 움직여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거액의 위약금과 손해 배당을 감당해야 한다. 미성년 청소년들이 말이다. 더구나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과거에 생각하지 못한 노동 조건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애초에 계약에서 규정하지 않았다. 아티스트 활동을 담보로 무리한 지시와 강요가 벌어지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개별 연습생이나 아이돌 멤버들이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 영미권의 에이전시 구조와는 다르다. 에이전시 구조에서는 아이돌이 사업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계약 파기가 어느 때라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99.99%의 실패자가 있기 때문에 K팝이 성립할 수 있다.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한다면 0.01%의 성공한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탈락해 미래를 잃은 99.99%를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일 것이다. 시장 실패를 국가 정책이 교정하고 보완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돌 노조와 관련해서도 노동자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 단지 아이돌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예술인이 이들과 처지가 같다. 많은 아이돌이 어린이와 청소년이듯 배우와 음악인도 그렇다. 이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업종이 생겨나고 있는 디지털 모바일 환경이다.
자금을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계약 기간이 유지돼선 안 된다. 아이돌 측의 문제 제기가 있고 기획사가 투자금의 최소 2~3배를 환수했다면 계약 기간은 다시 논의해야 한다. 문제 제기가 없고 더 폭넓게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소속사라면 아이돌이 이탈할 이유가 없다.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유가 우선이다.
다만 아이돌을 위한 노조에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아티스트 노조가 되어 대표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미래세대인 어린이, 청소년 아티스트를 특별히 고려하기를 당부한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국내 최초 '아이돌 노동조합' 설립 추진, 관건은 '근로자성'
·
[K컬처 리포트] 우울한 한국 영화판에서 코미디 영화만 웃는 까닭
·
[K컬처 리포트] '관람객 폭증' 국립중앙박물관을 유료화하라?
·
[K컬처 리포트] W코리아 '호화 파티' 논란이 남긴 것
·
[K컬처 리포트] K팝 팬 늘어날수록 K브랜드 관리 필요하다





















![[알쓸비법] 인테리어 리뉴얼, '브랜드 유지'인가 '부당 강요'인가](/images/common/side0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