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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Y2K 감성 자극하는 '키스는 괜히 해서!'

개연성 따위 무시하는 21세기 캔디물…그 시절 클리셰 범벅 이겨내는 '올곧은 뻔뻔함'

2025.12.05(Fri) 10:15:15

[비즈한국] 드디어 공지혁이 고다림이 유부녀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12월 4일 방영한 ‘키스는 괜히 해서!’ 8화를 본 시청자들은 모두 ‘드디어!’를 외쳤을 것이다. 사랑하게 된 상대가 유부녀라서 애써 마음을 접고 정략결혼을 하고자 한 남자가 약혼식 당일에 그 여자가 유부녀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다니. 아마 ‘키스는 괜히 해서!’ 애청자들이라면 이 충격을 ‘커피프린스 1호점’(2007)에서 남장을 하던 고은찬(윤은혜)이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려 했던 당일에 최한결(공유)이 먼저 그 사실을 알게 된 충격과 비교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서로의 목적에 의해 얽혔다 강렬한 스파크가 통한 공지혁과 고다림. 돈 많은 남자에 의한 여자의 ‘메이크 오버’는 기본이다. 사진=SBS 제공

 

솔직히 처음 ‘키스는 괜히 해서!’를 보면서 경악으로 입이 벌어졌다. 저런 서사를 밀어붙인다고? 저런 대사를 친다고? 저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한다고? ‘키스는 괜히 해서!’는 ‘설마’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온갖 클리셰란 클리셰를 죄다 끌고 나온다. 혹자는 이전에 있었던 ‘사내맞선’이니 ‘킹더랜드’니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와 다를 게 뭐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면 단호히 말해주고 싶다. 다르다. ‘사내맞선’은 클리셰를 가져와서 뒤틀어 비트는 재미가 분명했고, ‘킹더랜드’ 또한 클리셰를 따르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도움 없이 자기 앞가림쯤은 하는 21세기형 신데렐라였다. 반면 ‘키스는 괜히 해서!’는 명백히 시대를 역행하는 드라마다. 

 

대략의 스토리는 이렇다. 여주인공 고다림(안은진)은 나이 서른에 경력 하나 없는 공시생. 어쩌다 제주도에서 오해로 인해 재벌 2세 공지혁(장기용)과 얽히는데 이게 연속해서 얽히게 된다. 고다림이 엉겁결에 제주도에서 마주친 전 남자친구에게 공지혁을 연인으로 소개하고, 유명한 AI 개발자인 그 전 남자친구를 스카우트하러 갔던 공지혁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냉큼 연인인 척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연인 행세를 하다 보니 어쩌다 키스도 하게 된다. 그것도 1화 만에! 그야, 제목이 ‘키스는 괜히 해서!’니까 얼른 키스부터 시켜야겠지만, 어쨌든 여느 드라마의 감정의 ‘빌드업’ 과정 따윈 싹 무시했다. 

 

집안의 사정으로 장기 공시생을 벗어나 어디든 취업을 해야 하는 고다림. 결국 아무 스펙도 따지지 않고 경력단절 애엄마이기만 하면 된다는 ‘내추럴베베’ TF팀에 거짓으로 입사하게 된다. 사진=SBS 제공

 

키스 한 번으로 스파크가 파바박 튀어 버린 두 사람. 그런데 고다림이 홀연히 떠나 버린다. 결혼한 여동생이 남편과 함께 친정의 재산을 담보로 사채까지 쓰고 도망쳐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 고다림을 찾으려는 재벌 2세 공지혁이 하는 행동? 20세기 순정남마냥 고다림이 말한 동네(슈퍼마켓 앞 커다란 할아버지 나무가 있는)를 단서 삼아 리스트를 뽑아 손수 줄을 그어가며 찾는다. 그 사이 고다림은 집안을 돌보고자 공지혁 부친이 운영하는 육아용품회사 ‘내추럴베베’의 경력단절 TF팀의 채용 공고를 보곤 아이 있는 기혼녀인 척 거짓말을 하고 입사한다. 네, 다음 수순은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입니다.

 

TF팀 팀장이 된 공지혁은 재회한 고다림이 아이 있는 기혼녀임을 알곤 ‘난 팀장, 넌 팀원!’을 외치며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이미 화학작용이 발동됐는데 제어가 될 리 만무하다. 고다림 역시 거짓말로 입사했지만 공지혁에게 자꾸 설렌다. 상황도 자꾸 공지혁과 고다림을 운명적 관계로 엮어 넣는다. 정확히는 자꾸 공지혁이 고다림을 구해낸다. 전 남자친구의 희롱에 맞서 주먹을 날리고,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돼 장기가 털릴 뻔한 것을 구해내 빚을 갚아주고,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쓰러진 다림을 ‘공주님 안기’를 시전하며 1인실에 입원시키고,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져 기절해 있던 다림을 기어코 찾아낸다. 

 

2025년의 왕자님은 더 이상 백마를 타고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손에 쥔 블랙 카드로도 충분하니까. “얼마면 돼?”는 언제고 통용되는 진리인가 보다. 사진=SBS 제공

 

물론 고다림에게도 장점은 있다. 1화 첫 장면부터 드라마는 고다림이란 인물이 세속적 시선에서 봐줄 만한 조건은 하나도 없지만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란 걸 보여주려 애썼다. 길 가다 다른 사람의 열려 있는 가방을 닫아주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횡단보도 건너는 걸 도와주는 그런 따뜻하고 착한 마음씨. 이런 고다림의 마음으로 치유되도록, 공지혁에게 아버지로 인해 사랑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있다는 뻔한 서사를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다림의 가짜 남편이 되어주는 고다림의 친구 김선우. 사실 오랫동안 다림을 좋아했지만 아이가 있는 이혼남이란 현실과 친구 사이란 한계 때문에 고백을 주저해 왔다. 그리고 공지혁의 약혼녀 유하영이 그런 김선우에게 첫눈에 반한다. 사진=SBS 제공

 

이처럼 ‘키스는 괜히 해서!’는 20세기식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란 클리셰는 전부 가져왔다. 클리셰를 가져온 대신 개연성은 포기했다. 고작(?) 227만 원의 실수령액 월급을 받기 위해 기혼녀란 거짓말을 해가며 입사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포기하라. 아무리 한시적 TF팀이라도 저렇게 회사 입사 절차가 허술할까 하는 의문도 포기하라. 공지혁의 약혼녀 유하영(우다비)이 짝사랑하는 남자 김선우(김무준)의 부탁 때문이라지만 자신이 불륜녀란 오해를 받으면서도 공지혁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도 포기하라.

 

캔디형 여주인공은 항상 가난하고, 사연이 많으며, 또 결정적으로 자주 아파야 한다. 고다림 역시 여러 번 쓰러지며 공지혁에 의해 구해진다. 사진=SBS 제공

 

일찌감치 개연성 어린 서사와 빌드업 있는 감정선에 대해 포기했다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당신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만화 같은 대사를 읊는 장기용의 그윽한 눈빛과 날렵한 턱선을 감상하면 된다. 놀란 토끼처럼 입을 오므리는 안은진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탈출할 생각이 사라진다. 여전히 매 순간마다 입이 벌어지지만, 처음에 느꼈던 경악보단, 지금은 이렇게까지 뻔뻔하고 올곧게 신데렐라 스토리를 끌고 가는 뚝심에 일종의 경외심이 든다. 아, 고다림은 귀족 출신 신데렐라보단 캔디에 가까우려나. 

 

2025년에 지성인의 자의식으로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기엔 좀 부끄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키스는 괜히 해서!’의 시청률은 좋다. 평일 드라마 시청률 1위는 물론, 중요한 지표인 2049 시청률에서 계속된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왜? 대다수 사람들이 지성인이 아니라서? 물론 아니다. 그럼 장기용과 안은진의 치명적인 매력 때문에? 배우들의 매력이 이 드라마를 보는 아주 큰 동력인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긴 어렵다. 

 

클리셰 범벅인 이 드라마에서 그래도 새로운 건, 남녀 주인공이 통하게 되는 계기가 키스라는 신체적 접촉이란 점? 사진=SBS 제공

 

사실 이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인 것 같지만 Y2K 감성이 유행인 트렌드를 정확히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를 외치던 ‘가을동화’의 원빈이나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를 외치던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을 보며 꺅꺅 탄성을 내지르던 그 시절 그 감성을 공략한다.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20세기 신데렐라와 캔디를 굳이 그때의 원형으로 들고 나온 걸 보라. ‘정치적 올바름’이나 창의성 빛나는 하이브리드 장르물도 좋지만, ‘옛날 그때 좋았지 않아?’ 하는 추억만큼 강렬한 게 또 있으랴. 8화에서 약혼식을 앞둔 공지혁을 위로하고자 부하직원이 데려간 노래방에서 조성모의 ‘다짐’과 에메랄드캐슬의 ‘발걸음’이 흘러 나오는 순간 이 드라마의 올곧은 뻔뻔함이 이해가 갔다. 젊은 세대에겐 뭔가 색다른 복고 트렌드를 보여주면서 중년세대에겐 익숙한 그 시절 감성을 복기시키는 전략이었구나.

 

‘지성인이 이런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하다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럴 것 없다. 유치해도 웃기면 즐거운 거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주얼의 만족으로 상쇄하면 된다. 장기용의 저 수트 핏이랄까, 턱선이랄까 뭐 그런 거. 사진=SBS 제공

 

그러니 그저 돌아온 캔디를 즐기시라. 테리우스인지 알버트인지 모르겠지만 남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순정도 함께 즐기시라. 다만 이런 캔디의 귀환은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할 것도 같지만, 어떨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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