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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호불호는 '어쩔수가없다' 그래도 안 볼 수가 없다

중산층의 절박함 묘사한 박찬욱표 블랙코미디…천만 영화 못되어도 차고 넘치는 작품성과 연기력

2025.09.30(Tue) 15:39:24

[비즈한국] 요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격렬한 반응들이 눈에 띈다. 영화를 연출한 이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감독 중 하나인 박찬욱. 배우진엔 이병헌을 비롯해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이름들이 올랐다. 수상은 불발됐지만 13년 만에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 공개 후 애당초 예상과 다른 불호(不好)의 반응이 격렬하다. 박찬욱 영화가 원래 취향을 타고, 호불호가 강한 편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올 거라곤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 같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넘어서는 다양한 층위의 감정을 연기로 승화시켜내고야 마는 이병헌. 정말, 그의 연기는 어쩔 수가 없다.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나는 ‘어쩔수가없다’를 재미있게 봤다. 원래 박찬욱 영화의 결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 정서도 마음에 들었다. 박찬욱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전작인 ‘헤어질 결심’과 비교하는 반응도 많은데, 감독 자신이 말했듯 전혀 다른 타입의 영화라 같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헤어질 결심’의 작품성을 흠모하지만 개인적으론 ‘어쩔수가없다’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게다가 이렇게 백가쟁명으로 박찬욱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위기이니, 아직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지만 이 칼럼에서 다루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지업계, 그중에서도 특수지 라인에서 20년 넘는 경력을 쌓은 만수에게 경쟁자는 몇 되지 않는다. 자신보다 앞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구범모와 고시조가 제거 대상에 오른다.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어쩔수가없다’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건 주인공 유만수(이병헌)의 선택과 그 동기에 있다. 25년간 제지회사에서 일하다 한순간 해고된 만수는 3개월 내 재취업을 장담하지만 1년이 넘도록 성공하지 못한다. 견디다 못한 그는 자리가 없다면 경쟁자들을 제거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만수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아님에도 어쩔 수가 없다고 비겁한 변명을 한다며 이해하지 못한다. 동기가 약하고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한다. ‘복수는 나의 것’과 비교하면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아님을 구구절절 읊기도 한다. 

 

실직 후 만수의 아내 미리는 여러 모로 만수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그럼에도 가장으로의 무게는 만수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그런데··· 만수의 선택 동기가 그렇게 비난을 퍼부을 일이고, 영화의 작품성을 심각하게 해칠 정도인가? 물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재취업이 안 된다고 경쟁자들을 죽이진 않는다. 영화에서 만수의 상황은 누가 봐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은 아니다. 만수는 아내 미리(손예진)의 말처럼 집을 팔아 남은 대출금을 갚고 아파트 전세로 옮겨갈 수 있었다. 만수의 고급 취미인 분재 실력을 살려 다른 직종으로 이직도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1년 남짓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만수의 집에서 달라진 건 미리의 테니스와 사교댄스 레슨 포기 및 파트타임 취업, 빈약해진 식탁 위 반찬들, 그리고 넷플릭스 구독 금지 정도다. 아, 그리고 키우던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를 처가로 보낸 것. 이 정도로 살인을 결심한다니, 사람들이 이해 못하고 분노하는 것도 일견 이해한다. 

 

만수-미리 부부와 여러 모로 대비되는 범모-아라 부부. 극단적인 중첩으로 비교되는 두 부부의 상황이 재미나다. 특히 만수-범모-아라가 함께하는 ‘고추잠자리’ 시퀀스는 압권.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그러나 중산층의 입장에서 만수의 절박함은 십분 이해된다. 만수는 실업 기간 동안 놀고먹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꾸준히 취업 기회를 노렸다. 아내가 제지업 대신 분재라는 새로운 직종을 언급했지만, 사실 우리 알지 않나? 한 분야에서 25년간 일한 이가 갑자기 다른 분야로 취업하는 게 얼마나 힘들 것인지? 취미 정도 실력으로는 밥벌이의 냉혹한 세계를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다.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지만, 되더라도 25년 경력의 베테랑이 아니라 신입사원 정도의 대우나 받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분야의 신입사원이 되기 위한 취준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굳이 나이 많은 만수를 쓸 이유가 없다. 

 

범모 이후 만수가 제거해야 하는 제지업계 베테랑들 선출과 시조. 단 선출(왼쪽)은 현직에 있는 상황이다. 두 사람을 제거하는 사이 만수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마트든 타 직종 이직이든 그 정도 대우로는 삶을 생존할 순 있지만 만수가 지탱해오던 삶을 영위할 순 없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아내와 사교댄스를 추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3억 남짓 남은 대출금과 한층 더 비싸진 딸의 첼로 레슨비를 감당할 수 없다. 가족처럼 키우던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를 데려올 수 없다. 아내는 계속 파트타임 치위생사로 일해야 할 것이고, 천재와 자폐 사이 경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딸이 첼로로 성공해 독립하는 미래에도 먹구름이 낄 것이다. 영화 초반 “다 이루었다”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표출하던 만수의 가장으로서, 베테랑 직업인으로서 자존감? 완전히 바닥나 버릴 것이다.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가정에서든 직업에서든 다 이루었다며 정점에 서 본 한 인간의 삶이 될지는 의문이다. 만수, 만수의 제거 대상인 구범모(이성민)와 고시조(차승원), 최선출(박희순)처럼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 한 직업에 내 인생을 던지고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만수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않을까. 

 

박찬욱 영화는 장면 곳곳마다 상징과 의미가 한 아름이라 N차 관람할수록 그 함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 백가쟁명으로 박찬욱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도 두 번, 세 번 보면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사진=CJ ENM·모호필름 제공

 

 

사람들이 줄기차게 말하는 박찬욱과 봉준호의 차이로 보자면, 봉준호는 관객을 이야기가 펼쳐지는 상황에 끌어들여 공감을 얻고 메시지를 던지며 결국 그 끝에 진득한 감정을 남긴다면, 박찬욱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이것이 이야기임을 주지시키며 거리감을 강조하되 동시에 매혹적인 장치들로 시선을 잡아 끌어 메시지를 던진다. 예전에 트위터에 올라왔던 ‘박찬욱과 봉준호의 기괴함의 차이 썰’을 예로 들어 보면 더 명확하다. 박찬욱 영화는 아름다운 인어를 산 채로 활어회를 뜨는 거고, 봉준호 영화는 광안리 회타운에서 사장님이 “오늘 인어 세꼬시 만원이야 만원~” 외치고 있는 거라고. ‘어쩔수가없다’도 마찬가지.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다. 박찬욱이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 속 주인공의 선택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삶의 부조리를 마냥 웃을 수도 없지만 웃기게 그리는 블랙코미디에서, 주인공에게 공감을 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조리하지 않나.

 

‘어쩔수가없다’는 개봉 닷새 만에 100만 명을 넘기고 순항 중이지만 박찬욱 감독이 항상 염원(?)하는 천만영화가 될 리는 없다. 진입장벽 낮은 대중적인 영화라 주장했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워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추석 연휴 때 부모님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강변하고 싶지만, 오히려 가족들에게 의문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만 대한다면,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을 보는 재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으로 시작해 ‘고추잠자리’와 ‘그래 걷자’를 거쳐 첼리스트 장기엔 케라스의 연주곡 ‘르 바디나주’로 마무리되는 음악을 듣는 재미도 크다. 무엇보다 박찬욱의 기괴한 세계관을 완성하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영화의 엔딩곡 ‘르 바디나주(Le Badinage)’는 장난, 가벼운 농담이란 뜻이라고 한다. 박찬욱이 보내는 가벼운 농담, 그러나 그 끝에 남을 묵직한 감정을 극장에서 감상할 기회를 권한다. 개인적으론 대기업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다 퇴직하셨던 우리 아버지가 이 영화에 어떤 감상을 남기셨을지 못내 궁금하기도 하다. 지극히 T성향이었으나 한편으론 한시 읊는 것을 즐기셨던 아버지라면, 어쩌면 눈물을 훔치셨을지도.

 

평점 ★★★☆ 

가장의 무게와 인간의 존엄성으로 빚은 농담의 방아쇠.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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