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즈한국은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BIT(Business Innovation Track)가 작성한 전략 리포트를 10여 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환점에 선 기업의 문제를 Z세대 시각으로 분석한 리포트를 통해 혁신의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한때 던킨은 ‘도넛=던킨’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출근길 커피와 함께 도넛 한 개를 들고 가는 익숙한 풍경 속에 던킨도너츠는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일상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던킨도너츠는 94년 국내에 진출해 도넛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2007년까지만 해도 국내 도넛 시장에서 던킨은 약 80%~90%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은 크게 달라졌다. ‘크리스피 크림(Krispy Kreme)’, ‘노티드(Knotted)’, ‘올드페리 도넛(Old Ferry)’ 같은 프리미엄 도넛 브랜드들은 SNS를 통해 인기를 얻으며, 도넛을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감성적 경험의 매개체로 재정의했다. 한정판 굿즈, 매장 디자인, 사진을 남기고 싶은 공간 등이 그 브랜드의 가치를 좌우할 정도다. 반면 던킨은 여전히 가볍게 즐기는 간식 브랜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18년 글로벌 리브랜딩으로 ‘던킨도너츠(Dunkin’ Donuts)’에서 ‘던킨(Dunkin)’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소비자들에게 변화의 실체를 뚜렷이 각인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몇몇 브랜드가 유행을 만들어서 나타난 결과는 아니다. 소비 기준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국내 소비자는 이전처럼 ‘가성비’만 따지지 않는다. 이제는 기분, 분위기, 장소, 기록까지 포함한 ‘가심비’, 즉 감정적 만족을 더 중시하는 소비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소비의 기준이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던킨이 그동안 내세웠던 ‘빠르고 간편한 즐거움’이라는 포지셔닝은 이전만큼 강력하게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의 급성장
최근 몇 년간 국내 디저트 시장은 단순한 양적 성장 단계를 넘어 질적 고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디저트 외식 시장 규모는 약 12조4000억 원으로 집계되었고, 매년 10% 이상의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성장은 단순히 시장 크기가 커진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소비자 인식과 가치의 변화, 즉 ‘가성비’에서 ‘가심비’로의 이동이 그 근저에 있다. 디저트는 이제 “하루의 작은 보상”이자 “감정의 언어”로 소비되고 있다. 사람들은 얼마나 저렴한가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나에게 특별한가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하기도 한다.
MZ세대에게 디저트 소비는 단순한 식품 구매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요소가 되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 공유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디저트의 맛은 기본이고, 음식의 비주얼과 매장 인테리어 등 보는 즐거움 또한 중요시한다. 단순히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를 넘어, 그 맛을 둘러싼 상황·분위기·기록의 총합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노티드와 올드페리 도넛과 같은 도넛 전문 브랜드들은 모두 ‘경험을 설계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노티드는 귀여운 곰 얼굴 로고와 미니멀한 색감으로 독자적인 감성 이미지를 구축했고, 올드페리 도넛은 수제 프리미엄 도넛을 앞세워 기존의 정크푸드 이미지를 벗고 ‘작은 사치’의 상징으로 재정의했다. 이들은 공간·스토리·디자인을 결합해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냈다. 매장은 더 이상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만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브랜드 세계관을 경험하는 무대가 되었고, 소비자는 이 감각적 경험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결과적으로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떤 순간을 경험하느냐가 브랜드 선택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경험 중심 전략은 도넛 업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감각적 경험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경향은 카페 업계 전반에서도 관찰된다. 스타벅스는 리저브 매장을 통해 커피 한 잔을 프리미엄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F&B(식음료)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인 대형 베이커리 카페의 폭발적인 증가도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성향과 직결된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소비자들은 밀집된 실내보다 탁 트인 공간, 쾌적함, 심리적 여유를 제공하는 장소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 변화는 카페 선택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소비자는 커피의 맛이나 가격보다 그 공간이 주는 감정적 가치와 체험 요소에 더 큰 의미를 둔다. 특정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 혹은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새로운 경험이 소비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SNS, 특히 인스타그램의 시각적 확산력이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방문한 공간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이 콘텐츠들이 다시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마실 곳’이 아니라 ‘기록하고 싶은 장소, 경험하고 싶은 공간’을 향해 움직이게 되었다. 멀리서라도 찾아가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 공간의 매력과 경험의 독창성이 핵심 경쟁력이 된 셈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던킨은 기능적 가치에 머무른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제품의 맛이나 가격 경쟁력 자체는 여전히 훌륭하지만, 소비자가 매장에 머무를 이유와 기억에 남을 장치가 부족하다. 디저트 시장의 프리미엄화가 ‘감성의 고도화’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던킨은 여전히 기능적 만족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실제 여러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MZ세대 다수는 “제품 그 자체보다 브랜드 경험이 구매 결정에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외식 소비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감정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과거에 구매 결정 기준이던 ‘빠름’이 이제는 ‘여유와 몰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결국 던킨의 브랜드 전략도 속도와 효율 중심에서 벗어나, 소비자 경험의 깊이를 중심에 두고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던킨의 리브랜딩, 그러나 방향은 엇갈렸다
던킨도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글로벌 리브랜딩을 통해 브랜드명을 ‘던킨도너츠’에서 과감히 ‘던킨’으로 줄여 도넛 가게에서 ‘커피 중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정작 시장의 흐름과 미묘하게 엇갈렸다. 글로벌 본사는 ‘온더고(On-the-Go)’, 빠른 속도와 편의성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소비자는 이런 속도 중심 전략에만 반응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카페 모델이 회전률과 효율을 중시한다면, 프리미엄 카페들은 고객이 머물며 음미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실제로 국내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는 빨리 사고 먹기보다는 천천히 즐기는 경험 쪽으로 이동했다.
던킨이 글로벌 기조에 맞춰 도넛 브랜드에서 탈피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한국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가볍게 먹는 곳’ 정도로 남았다. 이것은 단순히 마케팅 실패라기보다 브랜드 경험 부재에서 기인한 한계였다. 매장 인테리어는 여전히 실용적 기능에 치중했고, 메뉴 구성을 보면 여전히 기존 도넛 위주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브랜드가 제공하는 감성적 가치는 그대로였던 셈이다. 결국 던킨은 변화의 파도를 인지하고도 그 변화를 완전히 체화하지는 못했다. 매장과 메뉴, 커뮤니케이션이 여전히 효율 중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윤리 소비의 확산
이제 시장의 흐름은 ‘프리미엄’을 넘어 ‘의미 있는 소비’로 진화하고 있다. 저당·비건·클린라벨과 같은 키워드가 디저트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는 맛있으면서도 죄책감 없는 디저트를 원하며, 각 브랜드는 이에 맞춰 제품 혁신에 나서고 있다. 던킨 역시 설탕 함량을 낮춘 ‘로우슈거 도넛’ 등을 출시하며 변화에 호응했지만, 이러한 대응은 개별 상품 수준에 그쳤다. 건강·윤리 트렌드를 브랜드의 철학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소비자에게는 일회성 신제품 정도로만 비친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칼로리를 낮춘 메뉴를 넘어 그 안에 담긴 브랜드의 태도와 가치관을 본다.
배달 앱과 편의점, 온라인 몰을 통한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도 예전보다 약해지고 있다. 브랜드 이름보다 경험의 질을 좇아 움직인다. 예컨대 노티드와 같은 가게 앞에 줄을 서는 행위조차 ‘기다리는 경험’ 자체를 하나의 감정적 이벤트로 여긴다. 줄을 서고 기다리는 과정에서조차 재미와 만족감을 얻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다. 던킨이 제공하는 빠르고 편리한 구매만으로는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워졌다.
#던킨 원더스로 진화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던킨은 단순히 도넛을 파는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가 매장 안에서 머물고 즐길 수 있는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브랜드로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감성을 전달하고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접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장 한편에 DIY 토핑·데코 스테이션을 마련하거나, 도넛과 어울리는 커피 페어링을 제안하고, 오픈 키친으로 제조 과정을 관람시키는 동선을 꾸민다면 소비자는 ‘맛’ 그 이상으로 참여·기록·공유의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도넛을 꾸미고 커피와 함께 여유롭게 즐기며, 매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콘셉트 매장을 늘려가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전략이다.
실제로 던킨은 2024년 ‘던킨 원더스(Dunkin’ Wonders)’ 매장을 열어 프리미엄 콘셉트의 인테리어, 오픈 키친, 싱글 오리진 원두 커피 등을 선보이며 변화의 신호를 보였다. 이제 이러한 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경험 중심의 매장 모델로 진화시켜야 한다. 맛이라는 기본 가치 위에 소비자가 기억할 만한 특별한 경험을 덧씌워야 한다. 던킨이 진정으로 소비자에게 남겨야 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의 맛이 아니라, 그 맛을 즐기는 순간에 피어나는 긍정적인 브랜드의 기억이다.
커피 및 외식 업계에서도 같은 패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타벅스의 리저브 매장은 커피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머물며 경험을 공유하는 ‘감성의 장소’로 진화했다. 폴 바셋은 앞서 언급했듯 ‘리추얼 커피’라는 개념을 통해 일상의 커피 의식에 감성적 만족을 불어넣는다. 음악·서점 등 다른 라이프스타일 업계 역시 굿즈와 공간, 체험을 결합해 “빨리보다 여유”를 제안함으로써 팬덤을 형성하고 반복 방문을 이끌어내고 있다. 결국 던킨의 전환 전략은 도넛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경험 중심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
던킨이 이미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예를 들어 누적 270만 명 이상에 이르는 배달 앱 이용 데이터를 분석해 요일·시간대·날씨·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메뉴를 추천하는 ‘Today’s 던킨 Pick’ 같은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던킨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제품만 나열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의 하루에 맞춰 제안하는 브랜드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면, 소비자는 던킨을 ‘내 취향을 알아주는 브랜드’, ‘내 하루의 리듬을 함께하는 브랜드’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Z세대와의 관계 재정립도 중요한 과제다. 이 세대는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고 ‘참여’한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능동적인 소비 태도를 보인다. 던킨은 SNS 챌린지, 굿즈 협업, UGC(사용자 생성 콘텐츠) 등 참여형 커뮤니케이션을 적극 설계해야 한다. 소비자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아니라 브랜드 이야기의 공동 창작자로 느끼게 하는 것, 바로 거기에 던킨의 새로운 브랜드 자산이 형성될 것이다.
던킨이 다시 선택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나 제품 종류의 다양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 하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 전체를 소비한다. 던킨 역시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자가 던킨을 ‘사는 브랜드’가 아니라 ‘머무는 브랜드’로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 바로 그 지점에 던킨의 새로운 경쟁력이 있다.
브랜드의 본질은 결국 훌륭한 제품에서 시작되지만, 그 제품을 통해 빚어지는 경험이야말로 브랜드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든다. 던킨이 도넛의 맛에 더해 그 맛을 즐기는 순간의 즐거움과 이야기를 함께 전달할 수 있을 때, 치열해진 시장 속에서도 다시 한번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승린 (중어중문학과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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