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즈한국은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BIT(Business Innovation Track)가 작성한 전략 리포트를 10여 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환점에 선 기업의 문제를 Z세대 시각으로 분석한 리포트를 통해 혁신의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기차(EV, Electric Vehicle) 시대의 도래와 함께 배터리 산업은 미래 성장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2023년까지 친환경 정책과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며 EV 배터리 시장 역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캐즘으로 인해 24년 상반기 유럽과 북미의 성장세가 둔화됐다. 특히 국내에서 현대차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성장 둔화로 인해 완성차 OEM 업체들이 휘청이자 자연히 배터리 업체들도 주가가 급락했다. 삼성SDI 역시 침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필수불가결하기에 EV 배터리 시장은 여전히 성장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타 기업들은 캐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삼성SDI의 상황은 어떨까. 이 글에서는 급변하는 배터리 시장 환경을 분석하고, 삼성SDI가 중장기적으로 시장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기차 캐즘의 실체
전기차 판매량 정체는 2024년 1분기에 특히 두드러졌다. 소비자들은 전기차 구매를 미뤘고, 완성차 업체들은 재고가 쌓여 투자를 축소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주가가 급락했고, 업계 전반에 긴축 기조가 확산됐다.
전기차 시장에서 나타나는 성장 둔화의 배경에는 ‘캐즘’이라는 개념이 있다. 캐즘(Chasm)은 새로운 기술이 충분히 검증되고 생태계가 성숙하기 전까지 대중이 수용을 주저하면서 시장 성장이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얼리어답터들이 환경 가치와 기술 혁신에 대한 관심으로 초기 불편함을 감수한 반면, 대중은 내연기관차 수준의 경제성·편의성·안정성을 바란다는 점이 드러났다. 정부 보조금 축소의 영향도 컸다.
결국 전기차 캐즘의 근본 원인은 대중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제적 병목’과 ‘기술적 병목’으로 구조화할 수 있으며, 이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시장의 확산 속도가 둔화된 것이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기술 발전 및 OEM 업체 간 가격 경쟁 심화로 경제적 병목 현상은 일부 완화됐다. 다만 기술적 병목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및 기술 한계 극복의 필요하다. 충전 인프라 확충과 관련한 문제는 일부 해소되었으므로, 앞으로 시장의 게임 체인저는 ‘전기차의 성능과 비용을 동시에 혁신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이 될 것이다. 신기술에 대한 R&D의 중요성 역시 그만큼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NCM과 LFP로 양분된 배터리 시장
수요 측면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기술 패러다임 전환 역시 시장을 재편하는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 혁신의 근간이 되는 EV 배터리의 구조와 기술적 특성을 먼저 이야기해보자.
EV 배터리는 계층적 시스템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배터리 셀이다. 셀은 기본적인 충전 및 방전 반응이 발생하는 곳으로, 양극재, 음극, 분리막, 전해질의 네 가지 핵심 소재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양극재다. 양극재는 배터리의 양극을 이루는 핵심 소재로,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을 결정한다. 양극재의 종류에 따라 배터리 성능과 특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데, 현재 시장은 크게 두 가지 양극재를 중심으로 나뉜다.
첫째는 NCM으로 불리는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다. 니켈, 코발트, 망간을 혼합한 양극재를 사용해 높은 에너지 밀도와 우수한 출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비용이 높고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으며 화재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며 프리미엄 전기차에 주로 탑재된다.
둘째는 LFP로 불리는 리튬 인산 철 배터리다. 리튬, 인, 철을 사용한 양극재를 채택하는 LFP 배터리는 높은 안정성과 긴 수명, 저렴한 비용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낮은 에너지 밀도와 무거운 무게, 겨울철 성능 저하, 낮은 출력이라는 단점이 있다. CATL과 BYD 등 중국 기업들이 LFP 배터리 생산을 주도하며, 대중형 전기차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 Energy Storage System)에 주로 사용된다.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들은 R&D를 통해 에너지 밀도와 성능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또 추가 공정을 도입해 ESS 분야와 리사이클링 생태계도 구축했다.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의 생존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장점 합친 전고체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차세대 기술로, 기존 NCM 배터리의 높은 에너지 밀도와 LFP 배터리의 안정성·수명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단순히 성능 개선을 넘어 전기차 시장의 핵심 제약요인인 주행거리 불안, 화재 위험, 높은 유지비용 등 기술적·심리적 병목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다. 특히 고체 전해질 기반의 구조는 열폭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낮춰 안전성 우려를 해소하고, 높은 에너지 밀도는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려 소비자 요구를 충족한다. 긴 수명은 배터리 교체 비용을 줄여준다.
이처럼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의 전기차 캐즘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해법으로 평가된다.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개발과 비용 절감이 필요한 단계지만, 전고체 배터리가 제공하는 ‘킬러 스펙’은 대중 시장 수용성 제고와 시장 패러다임 전환을 동시에 이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이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이 캐즘 이후 전기차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배터리 생태계의 기술 표준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의 현주소
그렇다면 삼성SDI는 캐즘과 신기술로 인해 급변하는 배터리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삼성SDI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2024년 기준 에너지솔루션 사업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95%를, 전자재료 사업이 5%를 차지한다. 에너지솔루션은 다시 세 가지 핵심 사업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약 1930억 달러 규모 시장인 EV 배터리 시장으로, 삼성SDI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3.3%다. 고성능 EV부터 대중형 EV에까지 배터리를 납품해왔으나, 고객사 수요 둔화와 LFP 배터리로의 전환으로 인한 재고조정이라는 리스크에 직면했다.
둘째는 약 140억 달러 규모 시장인 ESS 배터리 사업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약 4.9%다. 인공지능 개발과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향후 연평균 12퍼센트에서 14퍼센트의 시장 성장이 전망되며,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기회 영역이 존재한다.
셋째는 약 650억 달러 규모 시장인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약 26.8%로 1위를 차지한다. 이 배터리는 스마트폰, 웨어러블 IT 기기, 전동공구 등에 사용되며 소형모빌리티 등으로 응용처 확대가 기대된다. 다만 단가 압박 및 경쟁 심화로 마진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삼성SDI의 수익 모델은 완성차 OEM 업체나 IT 기기 제조사에게 배터리를 제공하고 대금을 받는 B2B 사업이다. 따라서 고객사의 제품 수요가 곧 삼성SDI의 매출을 결정한다. 이는 고객사의 시장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전기차 캐즘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까지 삼성SDI의 주가는 지속적으로 우하향 추세를 보였다. 이는 외부 환경 요인과 내부 사업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외부 환경 요인을 살펴보면 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EV 수요 둔화가 주력 고객사들의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직격탄이 되었다. 미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는 북미 시장 매출 감소로 연결됐고, 각국의 보조금 정책과 관세, 규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해외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또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이 저가 LFP 배터리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가격 경쟁이 심화됐다.
최근 삼성SDI는 ESS 분야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캐즘으로 인한 수익축 상실 문제를 일부 해결했다. 다만 삼성SDI의 본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EV 배터리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내부 사업 요인으로는 EV, ESS, 소형 배터리 모두에서 성장세가 둔화되는 전 사업부문 실적 둔화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에 최근 결의된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 지분 희석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해 경쟁사보다 대응이 늦었다는 것이다.
#경쟁사들의 대응
배터리 시장 1위 CATL은 현재 북미와 유럽에 합작공장을 설립해 지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 및 규제 정책이 중국 기업들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였으나 유의미한 결과는 낳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CATL은 LFP 기술 리더십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를 더 발전시킨 나트륨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을 상용화하며 기술 다변화 및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ESS 등 배터리 생태계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포트폴리오 확장까지 도모하는 상황이다.
배터리 시장 대표주자 중 하나인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합작공장을 설립한 뒤 최근 완전히 인수했다. 이로써 미국 내에 단독공장 3곳, 합작공장 5곳 등을 확보하게 됐다. 유럽에는 헝가리와 스페인 공장에 투자해 지역 거점을 확보했고, 듀얼파워 아키텍처 등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며 기술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또 캐즘 이후 수요 전환에 대비해 ESS 및 소형 배터리 사업을 강화하는 사업 다각화 전략을 펼쳐왔다.
반면 삼성SDI는 북미와 유럽에 JV(Joint Venture) 설립을 추진했으나 그 결과가 아직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북미 JV ‘스타플러스 에너지’는 2024년 4분기부터 공장을 가동했으나, 전기차 수요 급감으로 인해 2025년 3분기까지 누적 매출 4711억 원, 누적 손실 1011억 원 수준이다. 또 LFP 전환 및 다형태 셀 대응, ESS 분야 강화 등 사업 다변화 측면에서 CATL과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주요 경쟁사들보다 뒤처진 상황이다.
그러나 삼성SDI에게도 강점이 있다. 삼성SDI는 시장의 ‘게임 체인저’인 전고체 분야 기술 개발에서 도요타, CATL 등과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현재 초기 양산을 앞둔 상태다.
#단기 전략: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생존 기반 확보
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EV 배터리 수요 급감은 삼성SDI에 즉각적인 생존 위협이 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ESS 등 기타 배터리 관련 부문들에 대한 투자를 통한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연적이다.
ESS 배터리 시장은 인공지능 개발과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연평균 12~14%의 성장이 전망되며,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거시적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으로 정체된 상황에서 ESS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대체 수익원이 된다. 또한 SDI가 글로벌 1위 수준의 점유율을 보유한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부문 역시 웨어러블 기기와 소형 모빌리티 등으로 응용처가 확대되고 있어, 이 부문에 대한 투자 강화를 통해 수익 기반을 다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은 단순히 리스크 분산을 넘어 시장 변동성에 대한 헤지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EV 수요가 감소할 때 ESS나 소형 배터리의 수익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를 만들어, 단기적인 시장 충격에도 기업이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캐즘의 해소는 필연적이기에, 이러한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을 통해 급변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살아남을 중장기 전략을 실행할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단기 전략의 핵심이다.
#중장기 전략: 전고체 배터리 시장 선점을 통한 도약
단기 생존 기반을 확보한 이후,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선점을 위해 파일럿 스케일 업과 프로토타입 제작 등 현재 진행 중인 개발 단계를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2027년 양산 목표는 선점 효과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며, 동시에 주요 완성차(OEM)들과 초기 단계부터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향후 영향력 확대를 준비해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 선점은 네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초기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벤츠, BMW, 포르쉐 등)을 확보함으로써 핵심 고객을 장기간 묶어둘 수 있다.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공급사를 쉽게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공급 계약은 장기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배터리 산업의 특성상 누적 생산 경험이 원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므로, 선점 기업은 2~3년의 학습효과 우위를 확보해 후발주자보다 불량률과 원가를 낮게 가져갈 수 있다.
셋째, 선점 기업의 기술 사양이 사실상의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완성차 설계, 충전 인프라, 공급망 전반에 진입 장벽을 형성한다. 넷째, 기술 선점을 기반으로 프라이싱 파워를 확보하고 기술 라이선싱 등 추가 수익 기회를 창출할 수 있으며, 전기차 생태계 내 표준·정책 논의에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선점은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시장 구조와 규칙을 주도하는 위치로 도약하는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LFP 기반 대량생산·원가절감으로 경쟁력을 가진 중국 업체들의 효율화 전략이 통하지 않는 고기술 프리미엄 영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기술장벽이 높아 단기간 추격이 어렵고, 시장이 초기 단계라 선점 효과가 크며, 럭셔리 완성차 브랜드 중심의 프리미엄 시장 진입과 기술 표준·생태계 구축을 통해 구조적 우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격 경쟁이 아닌 기술·가치 경쟁의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단기 대응과 장기 기술 전략을 조화롭게 수행한다면, 삼성SDI는 캐즘 이후 전기차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며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정빈 (불어불문학과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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