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연간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낳는 ‘구조적 재난’이다. 비즈한국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만 청구서의 근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만 치료제 급여화와 설탕세 도입을 둘러싼 첨예한 정책적 딜레마를 살펴본다. 나아가 약물 만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100조 원 시장의 판도를 바꿀 K-바이오의 혁신 현장까지 조명한다.
살 빼는 데도 빈부 격차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출시된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맞으려면 월 30만~60만 원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 1회 주사로 체중을 15%가량 줄여주는 이러한 비만치료제는 비급여 처방으로 막대한 약값을 온전히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에 환자와 일부 의료계를 중심으로 비만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가뜩이나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당장 생사가 달린 중증 질환자들을 제치고 살 빼는 약에 건강보험료를 투입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에 부딪힌다.
#“항암제·희귀약도 줄 섰는데…” 형평성 논란
비만약 급여화에 신중론을 펴는 이들이 가장 먼저 꼽는 문제는 ‘의료 자원 배분의 형평성’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의료 이용량 증가로 인해 벼랑 끝 위기에 직면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보건당국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사실상 올해부터 적자 전환하고, 30조 원에 달하는 적립금도 이르면 2028년, 늦어도 2030년에는 완전히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료를 낼 청장년층은 줄어드는데 의료비를 쓰는 고령층은 급증하는 인구절벽 위험 속에서 건보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현재 보건당국의 건강보험 급여 심사 목록에는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중증 암이나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제들이 쌓여 있다. 약효가 아무리 뛰어나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제성 평가 문턱을 넘지 못해 환자와 가족들이 빚더미에 앉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만큼 비만치료제에 조 단위의 건보 재정을 우선 배정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하는 반발이 거세다. 특히 비만은 환자 수가 극히 적은 희귀질환과 달리 잠재적 처방 대상자가 수백만 명에 달한다. 1회 투여에 수십만 원이 드는 약을 급여화하는 것만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목숨이 오가는 중증 환자들을 제쳐두고 살 빼는 약에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만 사회경제적 비용 15조 원 “선제적 투자 필요”
반면 비만 치료를 전담하는 임상 현장의 시선은 정반대다. 비만을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합병증을 유발하는 만성 질환의 근본 원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1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만을 방치하면 제2형 당뇨병은 5~13배, 고혈압은 2.5~4배, 심혈관 질환은 1.5~2배 증가한다고 본다. 비만은 대장암, 간암, 췌장암, 담도암, 유방암 등의 주요 발병 요인으로 꼽힌다. 고도비만의 갑상선암 사망 위험은 최대 3.2배, 폐색전증 사망 위험은 최대 2.7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훗날 비만 환자들이 겪게 되는 각종 합병증 치료에 소요되는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면 초기에 비만치료제를 급여화해 살을 빼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으로도 유리하다는 시선이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지난달 13일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국내에서 비만 소아청소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서 “10년, 20년 뒤 이들이 성인이 되고 중장년이 되면 각종 대사질환을 겪게 되고 그러면 건강보험에서 커버를 하게 돼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비만병 ‘핀셋급여’, 이웃 일본을 보라
현실적인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비만과 당장 치료가 시급한 비만병을 명확히 구별해 지원하는 ‘핀셋 급여’라는 주장도 나온다. 단순히 미용 및 체형 관리를 위해 살을 빼려는 환자와 고도비만에 당뇨·고혈압 등이 동반돼 생존을 위협받는 환자를 동일선상에 둬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최신 의학계에서는 당장 합병증이 없는 건강한 비만도 장기적으로는 대사 질환을 유발하는 시한폭탄으로 본다. 모든 비만 환자를 선제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2030년 고갈 위기에 처한 건강보험 재정을 생각해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핀셋 지원의 훌륭한 참고서가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위고비를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문턱을 까다롭게 설정했다.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제2형 당뇨병 중 하나 이상을 앓고 있으면서 체질량지수(BMI) 35 이상인 고도비만 환자, 혹은 두 개 이상의 비만 관련 합병증을 동반한 BMI 27 이상의 환자로 급여 대상을 엄격히 제한했다.
국내 의료계도 우선순위 선정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대한비만학회는 단순 체중 증가와 질병으로서의 비만을 분리하고, 건강보험 혜택의 1순위가 되어야 할 비만병의 의학적 기준을 명확히 확립하기 위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재혁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치료제에 보험 급여 적용이 일반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올해부터 일부라도 시작하는 방향으로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면서 “내부 공청회와 유관기관의 합의를 거쳐 상반기 중으로 비만과 비만병의 구별 기준을 공식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가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한정적이기에 우선순위 조정이 불가피하다. 15조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만 청구서를 무작정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그렇다고 텅 빈 건강보험 금고를 무분별하게 열어젖힐 수도 없다. 결국 비만과 비만병 사이, 국가가 어디에 어떻게 선을 긋고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지 사회적 합의를 향한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최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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