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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원 비만청구서] ② 배달앱이 살찌우는 사회, 약물만으로 치료 못 해

비만약 투여 중단시 요요 속도 4배 증가…일본, 영국처럼 행동 치료와 생활 관리 병행돼야

2026.04.24(Fri) 09:36:22

[비즈한국]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연간 15조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낳는 ‘구조적 재난​이다. 비즈한국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비만 청구서의 근본 해법을 찾아 나섰다. 무너진 소아청소년 식생활 환경을 들여다보고, 비만 치료제 급여화와 설탕세 도입을 둘러싼 첨예한 정책적 딜레마를 살펴본다. 나아가 약물 만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100조 원 시장의 판도를 바꿀 K-바이오의 혁신 현장까지 조명한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 주 1회 주사로 체중 15% 이상 감량 효과를 내는 비만치료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내 위고비 매출은 4725억 원, 9월 출시된 마운자로는 4개월 만에 215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러한 ‘기적의 비만치료제’도 식욕을 억제할 뿐 근본적으로 비만을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한 한계다. 일상 속 환자들은 24시간 주문할 수 있는 배달 앱과 사방에 깔린 초가공식품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환경은 살을 찌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약에만 의존해 비만을 치료하는 것은 결국 일시적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비만약 투약 중단 뒤 체중이 빠르게 회복되는 생리학적 반동이 확인되었고, 배달 음식과 초가공식품이 일상이 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에게 ‘덜 먹고 더 움직이라’는 구호만 외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진=생성형AI

 

#약 끊은 뒤 매달 0.4kg 증가

 

비만 전문가들은 약물 만능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약물 중단 이후의 생리학적 반동이다. 우리 몸은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이라는 무서운 관성의 지배를 받는다. 체중이 줄어들면 기초대사량도 감소하는데 약물을 통해 강제로 식욕을 억제하다가 투여를 중단하면 우리 몸은 굶주림 상태로 오인해 억눌렸던 음식에 대한 갈망을 폭발시키게 된다. 대사율이 떨어진 탓에 적게 먹어도 살이 찌는 요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약물에만 의존해 살을 뺀 환자가 투여를 중단했을 때 일반적인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살을 뺀 사람보다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속도가 약 4배 빠르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지난 1월 국제의학 학술지 ‘The BMJ’에 게재한 ‘체중 관리 약물 중단 후의 체중 회복: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에 따르면 비만치료제 투여를 중단한 환자는 매달 평균 체중이 0.4kg씩 증가했다. 반면 식단 및 운동 등 ‘​행동 체중 관리 프로그램(BWMP)’​을 중단한 환자는 0.1kg씩 늘었다. 결국 평생 수십만 원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하며 주사를 맞거나 그게 아니라면 약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전략을 체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조건 끊으라”는 옛말…초가공식품·배달 음식 현명하게 활용해야

 

‘덜 짜게, 덜 달게, 덜 기름지게 먹자. 건강 체중을 위해 알맞게 먹고, 활동량을 늘리자.’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하루 10시간가량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구호는 탁상공론에 가깝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마트에 들러 신선한 채소를 다듬고 요리할 에너지가 남아 있는 직장인은 드물다.

 

비만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려면 치료제 급여화 논의에 앞서, 환자가 비만 환경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행동치료와 생활 관리 시스템부터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생성형AI

 

특히 1인 가구에게는 비싼 채소값을 감당하며 남은 식재료를 버리는 것보다 당장 문 앞까지 오는 배달 음식이나 동네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초가공식품과 배달 앱은 귀차니즘의 결과물이 아닌 구조적 산물인 셈이다.

 

지난달 13일 열린 제63차 대한비만학회 춘계학술대회 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김은미 대한비만학회 회장은 “요즘 초가공식품, 배달 음식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적절히 사용하게 되면 집에서 그냥 밥과 김치만 먹는 것보다 훨씬 영양적으로 적절할 수 있다”면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구체적인 모듈이 만들어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비만 환경에서 나쁜 선택을 피하고 영양을 챙길 수 있는 구체적인 조합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돈 안 되는 인지행동 교육…약물 의존 키우는 의료 시스템

 

하지만 국내에서 환자들이 의료진으로부터 제대로 된 생활 습관 교육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현행 제도상 비만 대사 수술을 제외한 모든 진료, 영양 상담, 인지행동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이 시간과 공을 들여 행동 교정 상담을 해줘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병원들은 수익이 나지 않는 교육 대신 3분 만에 처방전을 내어주는 약물에만 매달리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은 약물 처방의 전제 조건으로 행동 변화를 강제한다. 일본은 위고비를 건강보험으로 처방받으려면 반드시 의사의 지도 아래 6개월 이상의 식사 요법 및 운동 요법을 선행해야 한다. 영국도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 가이드라인을 통해 위고비 처방 시 반드시 식이·운동 요법과 같은 전문적인 체중 관리 서비스를 병행할 것을 필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치료제 복용을 넘어 시스템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비만치료제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려면 약값 지원에 앞서 환자들이 비만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를 급여화하는 게 먼저일 수 있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환경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진짜 역할이 아닐지 되묻게 된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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