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극희귀질환 리포트] ② 약은 '그림의 떡'…경제성 잣대에 병 키우는 환자들

신약 놔두고 '허가 외 의약품'부터 써야 하는 현실…정부, 치료제 부담 경감 조치 "빨리 체감하고 싶다"

2026.03.25(Wed) 14:41:09

[비즈한국] 희귀질환 가운데서도 환자 수가 특히 적은 질환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통상 유병인구 200명 이하이거나 질병분류코드조차 없는 질환을 뜻한다. 환자가 적다는 것은 곧 진단 경험도, 치료 데이터도, 사회적 관심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 결과 병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치료제와 제도가 따라오지 못해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온전히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 비즈한국은 숫자 뒤에 가려진 극희귀질환 환자들의 현실과 의료 사각지대를 짚어본다.

 

대한민국 극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신약 허가 소식은 반갑지만 온전한 희망이 되지 못한다. 약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탓에 자비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만을 기다리지만 보건당국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약을 눈앞에 두고도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비극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경제성 평가와 급여 기준이 극희귀질환 환자들에겐 때로 생명권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고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제한돼 환자들이 약을 사용하기 어려운 희귀·난치성질환으로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 특발성 폐섬유증, 신경섬유종증,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NMOSD)​ 등 20여 종을 꼽는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제한돼 환자들이 약을 사용하기 어려운 희귀·난치성질환으로 폰히펠-린다우 증후군(VHL), 특발성 폐섬유증, 신경섬유종증,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NMOSD)​ 등이 꼽힌다. 사진=생성형AI

 

#기약 없는 급여 등재…국민청원 5만 명 동의에도 ‘요지부동’

 

상염색체 우성 유전 희귀질환인 VHL의 유일한 치료제 ‘웰리렉(성분명 벨주티판)’은 2023년 5월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이 질환은 신세포암, 중추신경계 혈관모세포종 등 일생 동안 신체 곳곳에 다발성 종양을 유발한다. 환자들은 종양 제거 수술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심각한 장기 기능 손실과 합병증을 안고 살아간다. 국내 VHL 환우는 약 200명으로 추산된다. 

 

웰리렉은 2024년 8월, 2025년 3월과 12월 세 차례나 심평원 암질환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았지만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근거가 제한적이고 투여 중단 또는 재투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투여대상 및 투여기간 등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급여 기준 미설정 판정을 받아 보험급여 등재에 실패했다. 환자와 가족들이 2024년 5월 올린 국민동의 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는 등 국민적 관심을 받았지만 약은 여전히 환자들 손에 닿지 않는다.

 

폐가 점차 굳어가는 ‘특발성 폐섬유증(IPF)’ 환자들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IPF는 5년 생존율이 20~30%에 불과해 국내 희귀질환 중 사망자 수가 가장 많다. 치료제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가 2016년 10월 국내 승인된 후 9년 가까이 지난 2025년 5월에야 보험급여 목록에 올랐지만 전신경화증 연관 간질성 폐질환과 진행성 폐섬유증(PPF)​만 급여대상에 올랐을 뿐, IPF​는 제외됐다.

 

국내외 IPF 진료지침에서 권고하는 치료제는 오페브와 피레스파(성분명 피르페니돈) 두 가지다. 하지만 피레스파의 경우 위장관 장애(오심, 식욕부진) 및 피부 발진 등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의 약 25~50%가 1년 내 복용을 중단했다는 보고가 있어 오페브의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한국이 신약 약가 결정을 위해 가격을 참조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캐나다 등 8개국(A8 국가)은 모두 오페브를 보험급여 목록에 올렸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를 포함한 희귀질환 환자들은 정부의 희귀질환 치료제 지원 방안을 반기면서도 환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홈페이지

 

#나이 제한에 갇힌 ‘반쪽 급여’

 

천신만고 끝에 급여권에 진입해도 환자들의 고통은 끝이 아니다.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이 현실과 괴리된 탓이다. 

 

저인산효소증 치료제 스트렌식처럼 신경섬유종증 치료제 ‘코셀루고(성분명 셀루메티닙)’도 성인에 대한 급여가 제한된다. 신경섬유종증은 NF1 유전자돌연변이로 인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돼 신경계, 뼈, 피부 등에 발육이상을 초래한다. 시신경 아교종으로 인한 시력 이상, 신경학적 합병증 동반으로 인한 인지기능 장애, 악성 종양으로 진행 시 신경섬유육종이나 악성 신경초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3~18세 소아·청소년 신경섬유종증 환자는 2024년 1월 1일부터 코셀루고 보험 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2021년 5월 식약처 허가를 받은 지 약 2년 7개월 만이다. 성인 환자는 2025년 12월 적응증이 소아를 넘어 성인으로 확대된 이후에야 코셀루고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보험 급여는 받을 수 없다. 코셀루고캡슐25밀리그램 1캡슐당 급여 상한금액은 23만 5464원으로 성인 환자는 보험 급여를 적용받지 못하면 연간 1억 7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NMOSD) 신약 3종이 보험급여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만 환자들이 신약의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면역억제제와 ‘리툭시맙’ 성분 약제 치료에 실패해야만 한다. 사진=약학정보원

 

#병 키워야 급여 혜택 받을 수 있다?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NMOSD)의 급여 적용 조건은 모순에 빠져 있다. NMOSD는 시력 소실과 신경학적 손상을 유발하는 중추신경계 희귀 자가면역질환이다. 시신경염과 척수염이 주 증상으로, 발병 환자의 절반 이상은 5~10년 이내 시력소실과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의 보행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한 번의 재발로도 심각한 신경학적 결손을 유발할 수 있는데 환자 10명 중 8~9명은 반복적인 재발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환 특성상 초기부터 재발 방지에 특화된 혁신 신약을 투여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솔리리스’, ‘엔스프링’, ‘울토미리스’, ‘업리즈나’ 등 병의 근본 원인을 억제하는 표적 치료제 4종이 정식 허가를 받았다. 업리즈나주를 제외하면 모두 급여목록에 등재됐다.

 

국내 환자 수가 1500~2000명으로 추산되는 NMOSD 환자들은 다른 희귀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료제 선택 폭이 넓다. 하지만 환자들은 심평원이 설정한 단계적 치료 관문을 넘어야 한다. 처음부터 신약을 쓸 경우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해 연간 1억 원이 넘는 약값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환자들이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저렴한 경구용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혈액암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등에 쓰이는 ‘리툭시맙’ 성분의 약제를 3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리툭시맙 성분은 NMOSD에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심평원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NMOSD​ 치료에 오프라벨(허가 외 의약품) 처방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1, 2차 치료에 실패한 후에야 NMOSD 환자들은 비로소 혁신 신약 3종에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급여 조건 역시 까다롭다. 엔스프링은 최근 1년 이내 1회의 증상 재발이 있어야 하고, 솔리리스와 울토미리스는 최근 1년 이내 최소 2회의 증상 재발 또는 최근 2년 이내 최소 3회의 증상 재발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병 악화와 비가역적인 장애를 막기 위해 약을 쓰려는 것인데, 그 약을 쓰려면 눈이 멀거나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는 치명적인 재발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솔리리스는 2주마다, 엔스프링은 4주마다, 울토미리스는 8주마다 투약해야 하는 고가 의약품이다. 바이알당 급여상한 금액은 솔리리스가 360만 원, 엔스프링이 750만 원, 울토미리스가 504만 원과 1715만 원이다.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면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약값은 연간 약 1억 원에 달한다. 솔리리스의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가 출시되면서 다소 부담이 줄었지만 그래도 연간 6500만 원이 넘는다. 환자들 사이에서 심평원이 건강보험 재정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시력 상실과 휠체어의 공포 속으로 떠민다는 비난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희귀질환 환우 및 가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정부는 늘 어렵다고만…” 환자 생명 중심 제도 절실

 

희귀질환 환자 단체는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89개의 희귀질환 환우회 단체로 구성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정진향 ​사무총장은 “중증 질환 환자를 위해 대안을 마련하는 게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매번 어렵다는 얘기만 한다. 이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것 같다”면서 “성인이 되면 급여가 제한되는 저인산효소증 치료제 같은 경우 인권위원회에 연령차별이라며 진정을 냈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비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복지부는 지난 1월 희귀·중증난치질환의 고액 진료비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본인부담 수준을 현행 10%에서 추가로 인하하고, 희귀질환 치료제의 허가부터 보험 목록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을 330일에서 15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 사무총장은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 등재 절차를 완화하려는 등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겠지만 환자들은 그 효과를 빨리 체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초고가 약제를 청구하는 제약사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정부가 팽팽히 맞선 사이, 벼랑 끝에 선 희귀질환 환자들의 생명시계는 속절없이 돌아가고 있다. 경제성이라는 숫자 논리에 매몰돼 소수의 생명권이 짓밟히지 않도록 희귀질환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한 맞춤형 급여 심사 체계 개편이 시급한 시점이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

[핫클릭]

· [인터뷰] 반 하툼 주한 EU대표부 참사관 "한국과 R&D·공급망 협력 기대"
· [극희귀질환 리포트] ① "성인이라는 이유로…" 저인산효소증 환자의 잔인한 현실
· [K바이오에 AI더하기] 'AI 페르소나'로 마케팅 문법 바꾼다
· [K바이오에 AI더하기] 로봇 연구원이 24시간 연구하는 'AI 실험실'
· [K바이오에 AI더하기] 박영민 국가신약개발사업단장 "죽음의 계곡 넘도록 집중 지원"
· [K바이오에 AI더하기] 정부는 GPU 지원, 협회는 신약개발 생태계 조성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