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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나쁜골프] 골프장 '개명'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이름은 단순한 간판 아닌 오랜 골퍼들의 기억과 역사를 품은 유산

2026.05.06(Wed) 14:01:12

[비즈한국] 오래된 친구가 어느 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이름 ○○으로 바꿨어.” 친구의 이름은 특이하면서도 옛날 사람 이름 같았으니 그럴 만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친구의 이름은 늘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친구의 이름은 어느 유명 연예인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고, 성과 어울려 꽤나 세련되어졌다. 하지만 예의상(?) 그 친구의 새로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았다. ‘책상’을 ‘꽃’이라고 부르는 느낌이라면 좀 과장일까? 결국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 친구의 예전 이름을 부른다.

 

오래된 이름을 지켜온 골프장들은 그 자체로 역사와 전통의 무게를 보여준다. 결국 골프장의 개명은 새 주인의 취향이나 마케팅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 납득할만한 이유가 먼저여야 한다. 사진=생성형AI

 

골프장이 이름을 바꾸는 경우는 몇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주인이 바뀌었을 때다. 새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다분히 새로운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다. 한자 이름이 영어나 프랑스어로 바뀌고, 이해하기 힘든 암호 같은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경기도 여주의 세라지오GC는 시에나그룹이 인수하면서 더 시에나 벨루토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부CC는 더 시에나 서울로 바뀌었다. 더 시에나 세라지오라고 했으면 안 됐을까? 서울도 아닌데 굳이 서울을 붙여야 했나? 더 시에나 중부로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의 골퍼들이 불렀던 예전 이름도 그 코스의 유산이 아닐까? 지킬 것은 지키면서 바꾸자는 말이다.

 

포천의 몽베르CC는 회원제 18홀과 퍼블릭 18홀의 코스다. 아주 오래전엔 회원제는 북코스, 퍼블릭은 남코스였다. 아직도 그 호칭에 익숙하고 그렇게 말하는 골퍼도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쁘렝땅, 에떼, 오똔, 이베르가 코스 이름이었다. 겨우 외웠는데 명성산 코스와 망무봉 코스로 바뀌었다. 한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코스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해봤다.

 

대한민국 코스 중에 가장 오래된 코스는 한양CC다. 아직도 그 이름은 한양CC다. 한양CC와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하는 서울CC도 아직 서울CC다.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태릉CC, 대구CC, 안양CC도 아직 그 이름 그대로다. 분명 그 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개명’에 대한 요구 혹은 니즈가 있었을 것이다. ‘너무 이름이 올드하다’, ‘코스도 리뉴얼했으니 이름도 바꿔보자’고 했을 것이다. 안양CC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안양베네스트로 불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지역의 이름이 골프장의 이름이 된 이 몇 개의 코스들은 역사와 전통이라는 탄탄한 땅에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서 있는 굳건한 나무처럼 느껴진다.

 

경기도 곤지암의 한 골프장은 내가 골프를 하는 동안 이름이 대여섯 번 바뀌었다. 대여섯 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예전 이름과 새 이름을 합쳐서 썼던 기간 동안의 명칭이 머릿속에서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울 만하면 바뀌었다. 매물로 나왔다더니 주인이 바뀌었구나.

 

물론 이름을 바꾸고 이미지가 좋아진 골프장도 많다. 다이너스티란 다소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이름에서 ‘티클라우드’라는 문학적인 이름이 탄생하기도 했고, ‘한일’이라는 상투적인 이름이 ‘솔모로’라는 예쁜 한글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춘천에 있는 라비에벨GC는 개장을 앞두고 시범 라운드를 할 때만 해도 이름이 ‘산요수’였다. 한옥 클럽하우스와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사 중에 주인이 바뀌면서 ‘라비에벨’로 바뀌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라비에벨은 프랑스어로 인생은 아름다워다’라는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스카이72의 새로운 이름 ‘클럽72’가 스카이72보다 좋다고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아직도 스카이72라고 부르는 골퍼들이 허다하다.

 

주인이 바뀐다고 반드시 이름을 바꿀 필요는 없다. 왜 ‘개명’이 필요한지, 새로운 이름에 어떤 의미와 철학을 담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골프 코스는 이름을 바꾼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며, 이전에 수도 없이 불렀을 예전 이름에 골퍼들의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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