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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나쁜골프] 골프장을 살리는 '길'

거리는 물리적 단위가 아닌 '시간과 피로도'…새 도로 하나가 골프장 가치를 '재평가'

2026.04.21(Tue) 14:08:47

[비즈한국] 골프장 활성화 방안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진짜 ‘길’ 이야기다. ‘골프장 가는 길’이란 책이 있었다. 회원권 거래소에서 만든 책이다. 전국에 있는 골프장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가는 길을 안내하는 책이었다. 골퍼들의 필참서로 차 안 어디엔가 모셔두는 책이었다. (찾아보면 어딘가 있으리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어느 IC에서 나가서 몇 번 국도를 타고 무슨 사거리에서 우회전, 이런 식의 설명이었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늦을까 봐 전날 가야 할 골프장 페이지를 펼쳐놓고 가는 길을 몇 번이고 외우고 예습하게 한 책이다. 물론 라운드에 가는 날엔 한 손에 책을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곤 했다. 그때 알게 된 번호가 3번 국도, 42번, 45번, 46번, 47번 국도였다. 그땐 내비도 없었다.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또 잘못 들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니 길눈, 길머리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국도 번호 뒷자리가 헷갈린다.

 

사람들은 거리를 킬로미터가 아니라 시간과 피로도로 기억하고, 길이 좋아지면 마음의 거리도 함께 줄어든다. 그래서 새 도로 하나가 골프장의 접근성을 높이고, 내장객과 회원권 가치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된다. 사진=생성형AI

 

경기도 포천의 어느 골프장은 집에서 60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 그런데도 멀었다. 영종도에 있는 클럽72는 거의 80킬로미터인데 차가 없는 새벽에 가면 한 시간이 안 걸리는 대한민국 사정상 적당한(?) 거리가 된다. 길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얼마나 타느냐, 고속도로에서 나와 꼬불꼬불한 길을 얼마나 가느냐의 차이다. 여름 휴가 시즌, 포천에서 서울로 오는 47번 국도에서 4시간 동안 갇힌 적도 있다. 구리포천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길은 거리를 가깝게 한다. 우리는 물리적 거리를 시간으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지하철역 때문에 아파트 값이 올라가듯 골프장 앞에 새로 길이 생기면 회원권 가격도 오른다. ‘무슨무슨 고속도로 개통으로 강남에서 몇 분’은 첫 번째 PR 거리다.

 

프리스틴밸리, 마이다스밸리도 가까운 골프장은 아니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양주CC도 거리는 가까웠지만 자동차전용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대학 시절 엠티로 갔던 그곳, 오래된 길을 속도를 줄인 채 꽤 오래 달려가야 했다. 오크밸리CC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코스다. 동시에 당일 골프로 가기엔 부담스러운 코스였다. 영동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 문막 IC가 나오면 ‘이제 거의 왔네’란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인터체인지를 지나서도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제2영동고속도로 서원주 IC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블루헤런은 인터체인지에서 나오면 얼마 안 가서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뒷길도 생겼다. 중부고속도로 남이천 IC는 기존 도로에 인터체인지가 새로 생겨서 혹시 누군가의 뒷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다. 그럴 만하지 않은가. 없던 인터체인지가 갑자기 생겼으니. 그 주변 골프장들은 최고의 수혜자였다. 골프 코스는 좋은데 멀었던 곳이, 그래서 부담스러웠던 곳이 가까워졌다.

 

안성베네스트는 ‘베네스트’가 되기 이전 세븐힐스 시절부터 다녔던 골프장이다. 물론 가끔 갔었다. 코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가는 길이 복잡하고 멀었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 금광호수를 끼고 올라가는 길도 꽤 길지만 서울에서 그 호수까지 가는 길도 복잡다난했었다. 이 역시 세종포천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세종포천고속도로는 집에서 안성베네스트까지 가는 길을 단순화시키고 시간을 축소시켰다. 1시간 남짓 걸렸다. 안성베네스트가 한 시간이라니. 안성맞춤 IC에서 골프장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코스가 이제 작은 맘, 가벼운 맘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길의 힘’이다. 그 길 덕분에 나처럼 ‘이제 갈 만하네’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내장객도 늘지 않을까? 골프장을 살리는 ‘길’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가 골프를 하는 사이 새로운 도로가 많이도 생겼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길 하나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잘 내는 나라다. ‘여기서 어디 가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그 길이 나 있다. 있어야 할 길을 있게 한다. 지금도 우리의 ‘골프장 가는 길’을 위해 길을 내고 있겠지. 또 어느 골프장을 살리는 ‘길’이 될까.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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