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리브골프 아들레이드에서 앤써니 김이 무려 5795일, 16년 만에 우승했다. 앤써니 김은 엄지손가락 부상, 아킬레스건 부상, 알코올 중독과 약물 문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은퇴를 결정했다는 논란 등의 긴 시간 동안 대중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었다. 나 역시 앤써니 김을 좋아했었지만 그가 사라진 후엔 ‘그런 선수가 있었지’라는 아주 희미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앤써니 김은 리브골프에서, 아니 전 세계 골프에서 가장 핫한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다. 앤써니 김의 16년 만의 우승은 골프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고도 표현하는 드라마틱한 부활 스토리들을 소환했다. 물론 앤써니 김의 부활도 이 중 하나다. 어떤 감동적인 컴백, 복귀, 부활의 이야기가 역사 안에 쓰여졌는지 살펴보자.
#켄 벤투리(Ken Venturi 1931-2013)
켄 벤투리는 전설의 골퍼 바이런 넬슨의 제자였고 역시 전설의 골퍼 벤 호건의 플레이 파트너였다.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복무한 적도 있었다. 그는 말더듬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증세 때문에 골프를 시작했고 골프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골프는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25세 때인 1956년 프로로 전향하고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6개월 동안 10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챙겼다.
너무나 당연히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켄 벤투리는 1961년 교통사고를 당한다. 부상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고 이후 켄 벤투리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며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긴 슬럼프에 빠진다. 그러다 1964년 US오픈에서 찌는 듯한 폭염 속의 탈수 증세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고 우승을 한다. 켄 벤투리는 케빈 코스트너와 르네 루소가 주연한 골프 영화 틴컵에서 해설가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JB 홈즈
정말 독특한 스윙, 독학 스윙으로도 엄청난 비거리를 보였던 JB 홈즈라는 선수를 기억하는가. 조금은 불명예스럽지만 슬로플레이의 대명사이기도 했었다. 홈즈는 2011년 어지럼증으로 대회 도중 기권을 한다. 홈즈는 단순한 어지럼증으로 생각했지만 그 증세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뇌의 기형으로 두 번이나 뇌수술을 해야 했다. 두개골의 4분의 1을 제거하고 티타늄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 후 그는 투어에 복귀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2014년에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본인의 3번째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수술 후 뇌 조각을 본인의 집 창가에 진열해 놓았다고도 한다.
#베이브 자하리아스(Babe Zaharias 1911-1956)
베이브 자하리아스라는 여자 선수가 있다. 1911년생이고 본명은 밀드레드 엘라 디드릭슨인데 후에 프로 레슬러인 조지 자하리아스와 결혼해서 자하리아스란 성을 따랐다. 그녀의 이름 베이브는 어린 시절 야구 경기에서 홈런 5개를 쳐서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모든 스포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각을 나타낸 선수다.
그녀는 올림픽 육상 허들과 높이뛰기, 창던지기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땄고 후에 농구 선수로서 올아메리칸에 뽑히기도 한다. 늦은 나이인 24살에 골프에 입문해서 남자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다가 1947년 프로로 전향한다. 성대결을 펼쳤던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미셸 위의 원조인 셈이다. 1949년엔 8승, 1950년엔 9승을 기록했다. 당시 경기 수를 감안하면 압도적인 우승 확률이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는 괴력을 뽐냈다.
그러다 1953년 암 진단을 받고 대장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여자 스포츠인은 암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필드에 서서 1954년 US 여자 오픈을 우승하고 5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56년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때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녀는 위대한 선수였고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영감을 주었다”라며 그녀의 죽음을 기렸다.
#타이거 우즈
타이거 우즈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다. 타이거 우즈의 기록 중에 샘 스니드와 동률인 통산 82승, 142개 대회 연속 컷 통과, 683주 세계랭킹 1위, 4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은 앞으로도 ‘절대 깨질 수 없는 기록’이란 랭크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런데 타이거 우즈의 역사는 부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타이거 우즈의 본격적인 부상은 2007년 십자인대 파열부터 시작한다. 허리는 최소한 7번 이상의 수술을 받았다. 아킬레스건도 수술을 받았고 발목과 왼쪽 무릎 부상에 족저근막염도 겪었다. 2014년 허리 수술을 받고 2015년, 2016년 시즌에 경기 출전을 못 한다. 복귀한다고 했다가 무산하고를 반복한다.
2017년에 투어에 복귀해서 최소한의 경기만을 치르다가 2019년 43살의 나이에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우승한다. 본인의 15번째 메이저 우승이었는데 무려 11년 만의 메이저 우승이었다. 1타 차 우승이었는데 당시 공동 2위가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잰더 쇼플리였다. 극강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영건들이었다. 당시 나를 포함한 타이거 우즈의 팬들과 미디어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활이라는 제목과 활자로 이 역사적인 순간을 박제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타이거 우즈가 한 번 더 부활과 건재의 감동을 우리에게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타이거 우즈는 왠지 여기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타이거 우즈니까.
#필 미켈슨
2013년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을 우승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제 퍼팅을 좀 알 것 같다”고 해서 매우 당황했었다. 이건 무슨 망언인가. 필 미켈슨은 퍼팅의 달인, 숏게임의 신이 아닌가. 나를 급겸손하게 만들었었다.
그 후 많은 팬들은 필 미켈슨이 US오픈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었었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이 우승 이후 긴 슬럼프가 찾아온다. 디오픈의 트로피, ‘클라렛 저그’의 저주인가. 그 사이 필 미켈슨은 스윙 코치를 바꿨고 두 번의 탈장 수술을 했고 아내인 에이미는 여전히 투병 중이었다. 5년 동안 우승이 없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유망주가 이제 더 이상 우승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1승씩을 거두고 2020년엔 무승에 그쳤지만 2021년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을 우승한다. 역대 최고령 메이저 대회 우승자다. 50세 11개월. 이 부활은 나이를 이겨낸 나이로부터의 부활이다. 많은 50세 이상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살렸고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불꽃처럼 타오를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벤 호건
벤 호건이야말로 스윙의 바이블이다. 어쩌면 지금의 골프 이론, 골프 레슨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다.
가끔 벤 호건의 파이브 레슨즈를 꺼내서 다시 보면 ‘아, 이래서 이런 말을 한 거구나’ 무릎을 탁 치며 선현의 지혜를 만난 느낌이 든다.
1949년 벤 호건은 습하고 쌀쌀한 텍사스의 어느 길을 아내와 함께 캐딜락을 몰고 달린다. 그러다 중앙선을 넘고 마주 오던 그레이하운드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쇄골 골절, 복합 골절, 발목 골절, 갈비뼈 골절 등 온갖 골절과 안면 부상을 당한다. 당시 벤 호건의 나이는 36세였다. 골프 선수로서 익을 대로 익은 최절정의 시기였다. 의사들은 벤 호건에게 다시 걸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골프를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벤 호건은 다시 일어섰다. 의사의 만류에도 59일 만에 퇴원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메리언에서 열린 US오픈을 우승한다. 이 교통사고 이후 벤 호건은 6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쥔다. 벤 호건의 교통사고는 7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많은 팬들은 이 극복과 컴백을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활로 뽑고 그 투혼을 높이 받들고 있다.
이런 컴백, 부활은 위대한 선수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골퍼, 주말 골퍼들에게도 그 스토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인생에서도 존재한다. 부상이나 투병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골프를 그만뒀다가, 잘 안 되다가 다시 한 번 골프가 인생에서 활활 타오르는 아주 사적이며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있다. 봄이다. 시즌 시작이다. 전성기가 다시 부활하는 스토리를 한 번 만들어보자.
필자 강찬욱은? 광고인이자 작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현재는 영상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를 맡고 있다. 골프를 좋아해 USGTF 티칭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글쓰기에 대한 애정으로 골프에 관한 책 ‘골프의 기쁨’, ‘나쁜골프’, ‘진심골프’, ‘골프생각, 생각골프’를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독자 및 시청자와 나누고 있다.
강찬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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