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긴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독일에서는 짧게는 1~2주, 길게는 약 4주를 여름휴가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정 휴가일수는 독일연방 휴가 법에 따라 결정된다. 법에는 “모든 노동자는 주5일을 근무해야 하고, 연간 최소 20일의 휴가를 보장받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거기에 주별로 9~13일의 법정 공휴일이 더해지면 최소 29일가량을 쉴 수 있다. 단체협약에 의한 독일의 평균 휴가 기간은 6주다. 여름휴가는 그 가운데 가장 길다. 

긴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사람들은 어디를 다녀왔는지 삼삼오오 이야기 나누기 바쁘다. 그리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둡고 추운 독일의 겨울 날씨를 피해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따뜻한 나라로 벌써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유럽에서는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는 문화가 생겼다. 특히 채용이 항상 고민인 스타트업에서는 ‘리모트 워크’를 회사의 큰 장점으로 삼는데, 때로는 휴가와 일을 결합한 ‘워케이션(workation)’을 복지 차원에서 제공한다. 리모트 워크의 연장선상으로 워케이션을 하기도 하지만, 회사의 팀 전체가 함께 워케이션을 떠나기도 한다. 

#워케이션 친화 도시 톱5​

유럽의 매력적인 도시들이 전 세계 리모트 워커와 디지털 노마드를 끌어모으고 있다.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가 특히 인기를 끈다. 단순히 휴식과 관광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물가가 싸고, 인터넷 환경이 좋은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Statista)와 휴가지 숙소 예약 플랫폼인 독일의 홀리두(Holidu)는 2021년 공동 조사를 통해 유럽에서 워케이션을 하기 가장 좋은 도시를 꼽았다. 

와이파이 속도, 코워킹 스페이스의 개수, 평균 커피 가격, 평균 택시 가격, 술집의 평균 맥주 가격, 한 달 아파트 월세, 중간 수준 레스토랑의 평균 가격, 평균 일조량,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기준 ‘즐길 거리’ 개수, 인스타 해시태그 된 사진 수를 기준으로 꼼꼼하게 평가했다. 

상위 다섯 개에 오른 도시는 순서대로 리스본, 바르셀로나, 부다페스트, 이스탄불, 부카레스트와 마드리드(공동 5위)다. 이 중에서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는 타 도시 대비 와이파이 속도가 월등했다. 이스탄불은 커피, 음식, 숙박 등의 물가는 매우 저렴했고, 스페인의 두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잘 갖춰져 있었다.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전체 1위까지 차지해 유럽 사람들이 얼마나 해가 고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10위권에 든 폴란드 크라쿠프, 불가리아 소피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체코의 프라하 등 옛 동구권 도시들은 저렴한 물가와 안정적인 인프라로 인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워케이션을 통해 생산성과 창의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많은 스타트업이 워케이션 도입에 적극적이다. 노동자들도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이들이 워케이션을 꿈꾼다. 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더 어렵고, 세금 및 비자 문제와 같은 행정적인 문제, 그리고 생활비가 많이 들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유럽에서는 원격 근무 비자(또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고려 중인 나라가 많다. 월 최소 급여 기준 소득 증명을 할 수 있다면 1년가량 도시에 머무를 수 있는 비자를 제공하는 것인데, 포르투갈이 가장 적극적이다. 그 밖에 조지아, 크로아티아, 체코, 에스토니아, 그리스,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몰타, 노르웨이도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 몬테네그로, 스페인​은 앞으로 이 비자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가족 있어도 워케이션을 꿈꿀 수 있을까

워케이션은 이동을 자유롭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직업과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고려할 선택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는 흥미롭게도 리모트 워커의 70%가 아이가 있는 부모였다. 

이 조사는 론리 플래닛과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Fiverr)가 2022년에 공동으로 진행했다. 영국 비즈니스 웹사이트(smallbusinessprices.co.uk)에서 30세 이상의 영국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2%가 해외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보다 생활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42%는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고 답했고, 21%는 가족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워케이션을 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간다고 하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지역 탁아소나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 여름에는 각종 여름 캠프 등의 선택지가 많고, 일부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베이비시터나 키즈 클럽 등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아이들 보육까지 담당해주는 올 인클루시브(All-inclusive) 리조트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기존 제도권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과 일을 할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안정적으로 가족과 워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스타트업들도 생겨났다. 몬트리올 기반의 스타트업 바운드리스 라이프(Boundless Life)는 유럽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이 가족과 함께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도록 숙박, 코워킹 스페이스,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주로 1세에서 12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최근에는 ‘새로운 형태의 일’이라는 주제로 커뮤니티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네트워킹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포르투갈의 패밀리 워케이션(Family Workation)도 가족 중심의 워케이션 인프라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패밀리 워케이션은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토마르(Tomar) 마을의 숙박, 보육,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포르투갈에는 10대를 위한 유연한 학교​, 브레이브 제너레이션 아카데미(BGA, Brave Generation Academy)도 등장했다. BGA는 세 아이를 키우는 팀 비에이라(Tim Vieira)와 리디아 비에이라(Lidia Vieira) 부부가 공동 설립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병행해 유럽, 남미, 아시아 및 아프리카 전역​ 등 어디에서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하이브리드형 교육 현장을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12세 이상의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추었으며, 현재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 학부모, 교사 및 직원을 포함해 15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일에 대한 고민이 결국 삶에 대한 고민으로, 그리고 교육과 인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스타트업과 그들이 만들고 있는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자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가 무척 기다려진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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