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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서울올림픽 주제가 '핸드 인 핸드'와 케이팝의 성공 공식

부족한 부분 해외 뮤지션으로 채워…지금은 한국 프로듀서가 주도해 위상 변화

2018.02.13(Tue) 17:02:51

[비즈한국]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국민, 전 세계의 관심이 강원도에 쏠리고 있습니다. 평창올림픽이 한국이 주최한 첫 올림픽은 아닙니다.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이미 치뤘기 때문이죠. 서울 올림픽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국가 브랜드 형성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중진국 컴플렉스 극복의 시작이었죠. 유시민 작가는 ‘알쓸신잡’에서 전 세계의 시선이 서울에 몰렸던 덕에 독재 시스템이 약화되었다며 민주화에 서울 올림픽이 기여한 면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평창 올림픽은 케이팝(K-pop)을 틀었습니다. ‘강남스타일’​부터 ‘​DNA’​까지, 수많은 곡이 이미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덕분에 생긴 자신감이었는데요, 1988년에는 그런 자신감이 없었지요. 한국 음악은 팝 시장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주제곡을 만들었을까요?

 

1988년 올림픽 주제가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 세계적인 프로듀서 조르조 모르더의 이름이 강조되어 있다.

 

한국은 용병을 고용하기로 합니다. 음반사를 수소문한 끝에 조르조 모로더에게 곡을 맡기기로 한 거죠. 조르조 모로더는 댄스음악의 대부입니다. 1969년부터 댄스음악 씬에서 꾸준히 활동했지요. 전성기에는 디스코의 여왕 도나 써머의 음악을 프로듀싱해 음악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도나 써머의 ‘러브 투 러브 유 베이비(Love To Love You Baby)’. 당대에 가장 섹슈얼한 음악으로 음악계를 충격에 빠트린 대형 히트곡이다.

 

수명이 짧은 댄스음악 씬. 조르조 모로더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92년 이후 그는 사실상 활동을 멈춥니다. 힙합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음악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3년, 그를 댄스음악의 제왕 다프트 펑크가 소환했습니다. 힙합 이전의 음악을 되살리기로 한 다프트 펑크가 조르조 모로더와 함께 적극적인 협업을 하며 그를 음악계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은 거죠. 심지어 그들은 ‘조르조 바이 모로더’라는 이름의 곡까지 만들어 그를 기렸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음악계에 복귀, 브리트니 스피어스부터 카일리 미노그, 시아, 시스타 등의 음악에 참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프트 펑크의 ‘조르지오 바이 모로더(Giorgio By Moroder)’.

 

베테랑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가 서울 올림픽 주제가 프로듀싱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주제가인 ‘리치 아웃(Reach Out)’을 작곡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1990년 월드컵 주제가까지 작곡했죠. 주최 측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의도도 있었겠지요.

 

이 곡을 부른 팀은 코리아나였습니다. 코리아나는 당시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룹입니다. 한국에서 결성했으나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다크 아이즈(Dark Eyes)’ 등의 히트곡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지금 들으면 그다지 시대를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소위 옛날 ‘뽕’ 가요입니다. 영어 가사로 유럽에서 활동했다는 자체가 당시에는 큰 가치가 있던 활동이었을 테지요.

 

코리아나의 ‘다크 아이즈(Dark Eyes)’. 당시 그들은 ‘아리랑 싱어즈’라는 이름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세계 최고의 작곡가와 함께 협업할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게도 큰 기회였을 걸로 보입니다.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는 지금 들어도 좋은 세련된 팝 음악입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뛰어남, 세련됨이 있었다는 거지요. 음악은 5년만 지나도 촌스러워지는데, 30년이 지나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성과지요. 조르조 모로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손에 손잡고’의 2절은 영어였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겠지요. 2절은 ‘손에 손잡고’의 영어 버젼인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와 마찬가지로 영어 가사로 불렸습니다. 이 곡에서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 남성의 목소리와 창법은 코리아나의 그것과 전혀 다릅니다. 그야말로 유려한 1980년대 팝 보컬입니다. 좋은 가창력을 갖고 있지만 전형적인 한국 가요 창법을 구사하던 코리아나와는 괴리감이 드는 목소리입니다.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 목소리의 정체는 추후, 조르조 모로더가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영어 버전의 목소리는 코리아나가 아닌 조 피줄로였습니다. 주로 세르지오 멘데스와 조르조 모로더의 보컬을 맡았던 가수입니다. 누가 들어도 전혀 다른 목소리였지만 확실히 조 피줄로는 코리아나보다 더 당대에 걸맞은 세련된 팝 보컬이었습니다. 코리아나는 여성 보컬만 전반부와 후반부 코러스만 부르는데 만족해야 했지요.

 

조 피줄로가 세르지오 멘데스와 함께한 ‘네버 고나 렛 유 고(Never Gonna Let You Go)’.

 

영어 버전은 한국인이 부르지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부른 덕은 톡톡히 봤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손에 손잡고의 영어 버젼 ‘앤드 인 핸드’는 스웨덴 서독 등 17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성공했습니다. 1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걸로 알려져 있지요. 케이팝이 세상을 호령하기 20년 전, ‘핸드 인 핸드’는 올림픽이라는 특수성에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붙인 과감한 결정으로 팝시장에서 한국 음악으로는 이레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핸드 인 핸드’의 프로듀싱은 요즘 케이팝과 꽤나 비슷합니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서 만드는 방식이지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히트한 곡 중 하나인 레드벨벳의 ‘배드 보이(Bad Boy)’는 작곡팀 더 스테레오타이프(The Stereotypes)가 프로듀싱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최근 브루노 마즈의 음악을 프로듀싱하며 그래미 최고 본상을 휩쓸었습니다. 최고의 작곡가가 케이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20년 전의 케이팝 성공 공식을 이미 ‘핸드 인 핸드’가 보여준 셈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케이팝은 한국 주도로 만들어진다는 점이겠지요. 해외 최고 전문가를 고용하지만 기획은 철저하게 한국인 이수만 등 대표 프로듀서의 머리에서 나옵니다. 평창 올림픽도 마찬가지지요. 세계적인 전문가를 참여시키지만 지금의 평창 올림픽은 서울 올림픽과는 달리 한국이 주도해서 최고의 행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악만 봐도 그렇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달리 평창 올림픽은 이병우, 양방언 등 한국인 혹은 한국계 음악가가 음악을 담당합니다. 그만큼 20년 사이에 한국의 국력이 강해졌다는 뜻이겠지요.

 

코리아나의 ‘핸드 인 핸드’는 사실 모든 부분이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코리아나의 과거 음악이 20년 넘게 지난 지금 큰 감동을 주기는 힘에 부칩니다. 영어 버전에서 당대의 미국 최고 객원 보컬을 한국 가수 대신 끼워 넣고, 한국인이 아닌 미국 보컬이 영어 버전 곡의 대다수를 부른 일은 이해는 되나 썩 자랑스럽거나 유쾌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세계적 수준으로 행사를 치르고, 행사에 걸맞은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타협의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케이팝이, 지금의 평창 올림픽이, 지금의 한국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최초의 히트 케이팝, ‘핸드 인 핸드’였습니다.

 

코리아나의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조 피줄로와 함께.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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