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운영자금이 바닥난 홈플러스가 겨우 한숨을 돌렸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에 회생기업 운영자금 대출(DIP) 1000억 원을 부담하기로 결정하면서다. 하지만 현장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이번 지원이 주요 채권단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 성격이라는 관측 속에 실제 집행 시점은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자금 수혈을 약속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에도 매장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위스키 매대엔 보리차만 가득
지난 16일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정상화를 위해 긴급운영자금 1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날 MBK는 입장문을 내고 “M&A(인수합병) 성사 시 최대 2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는데, 급여 지급을 지연해야 할 정도의 긴급한 상황을 고려해 M&A 성사 전이라도 우선 1000억 원을 긴급운영자금 대출에 참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MBK가 긴급 수혈에 나선 것은 홈플러스의 자금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세금과 각종 공과금 체납 문제가 수개월째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난달부터는 직원 급여마저 정상 지급이 어려워졌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월급을 두 차례에 나눠 지급하는 ‘분할 지급’을 강행했다. 한 달 새 상황은 더 나빠졌다. 홈플러스는 최근 내부 공지를 통해 1월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을 전했다.
경영 상황이 악화하면서 매장 운영도 한계에 부딪혔다. 홈플러스는 14일 7개 점포의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홈플러스 측은 직원 대상 메시지를 통해 “한계 상황에 도달한 자금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문화점, 부산감만점, 울산남구점, 전주완산점, 화성동탄점, 천안점, 조치원점 등 추가 7개 점포의 영업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이번에 발표된 7개 점포 외에도 홈플러스는 최근 두 달 새 급격하게 매장 수를 줄였다. 지난해 12월 28일에는 가양, 장림, 일산, 원천, 울산북구점 등 5개 지점의 영업을 중단했으며, 이어 1월 말까지 계산, 시흥, 안산고잔, 천안신방, 동촌점 등 5개 지점을 추가로 정리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불과 두 달 만에 세 차례에 걸쳐 총 17개 점포가 영업 중단 혹은 폐점 수순을 밟게 됐다.
최악의 위기 속에서 들려온 MBK의 자금 지원 소식에 직원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MBK가 1000억 원이라도 자구 노력을 하겠다는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사태 해결을 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MBK는 약속한 2000억 원을 외부 조달에 기댈 게 아니라 직접 투입해야 한다. 홈플러스를 진정으로 살릴 의지가 있다면, 운영자금이 절실한 지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채권단 자금 안 내놓으면 약속 철회하는 것 아니냐” 불안감
MBK의 자구 노력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면서도, 현장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다. 이번 자금 투입이 산업은행과 메리츠증권 등 주요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건부 카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MBK가 1000억 원을 낼 테니 산업은행과 메리츠도 각각 자금을 보태 총 3000억 원 규모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자는 것이 이번 지원의 실질적인 배경”이라며 “채권단이 함께 움직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지원 결정을 내리고 언론에 발표한 분위기다. 때문에 만약 다른 채권단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을 때, MBK가 약속을 다시 철회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실제 자금이 현장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MBK가 1000억 원 지급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일 뿐 직접적으로 현금 지원되는 것은 아니다. 지급 시점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금 투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결국 영업 현장이다. 홈플러스 매장은 물품 대금 체납으로 인해 상품 공급이 끊겨 ‘텅 빈 진열대’가 속출하고 있다. 19일 찾은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대 곳곳은 PB(자체 브랜드) 상품인 ‘심플러스’ 제품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반 브랜드 상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빈 매대를 가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수급이 용이한 PB 상품을 전면에 배치한 모습이었다.
위스키 코너에는 주류 상품이 모두 빠지고, 대신 PB 브랜드의 보리차와 옥수수 수염차 페트병이 줄지어 자리를 채웠다. 와인 액세서리 진열대는 매실차와 알로에 음료가 빼곡히 메워져 있었다. 매장 입구의 이벤트 코너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명 브랜드의 특가 상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PB 재고들만 가득 쌓인 상황이었다.
한 직원은 “물건 대금을 갚지 못해 매장의 상품이 많이 비었다. 매대가 완전히 비어버리면 문제가 생기니 신선 제품이 놓여야 할 자리에 공산품 등을 비치하는 식”이라며 “매장 재고를 일단 산발적으로라도 나열해 놓긴 하는데, 고객들이 찾는 제품이 없으니 왔다가도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급여 정상화를 기대했던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망감도 감돌고 있다. 1000억 원의 자금이 수혈된다고 해도, 인건비 지급보다는 영업 중단 위기를 막기 위한 필수 운영비에 최우선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납된 물품 대금을 정산해 텅 빈 매대를 채우고, 연체된 전기료 등 공과금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 탓에 자금 집행의 후순위인 인건비까지 차례가 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홈플러스 측은 “현재로서는 급여 지급 일정을 확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한계 상황에 내몰리자 정치권은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홈플러스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언급됐다. 이날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노조 측은 “이제는 정부가 나서는 것 외에는 도저히 답이 없다”며 “정부가 주도해 신뢰할 수 있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지속 가능한 M&A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TF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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