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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정신' 내던진 트럼프, '전쟁터' 된 2026 다보스포럼

그린란드 두고 '선전포고 아닌 선전포고' 마크롱, 카니 '응전'…한국 참가단은 실무 행보로 생존 모색

2026.01.22(Thu) 16:47:52

[비즈한국] 스위스 산악 마을 다보스에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다만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공기는 지난해와 확연히 다르다. 인공지능(AI) 혁신과 글로벌 협력을 전면에 내세웠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포럼은 지정학과 안보, 공급망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충돌하는 장으로 변모했다. 공식 주제는 ‘대화의 정신’이지만, 실제 다보스에서 오간 메시지는 대화의 회복보다는 힘의 재편에 가까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시해 다보스는 이상적 규범의 토론장이 아니라 각국이 자국 이익을 점검하는 ‘경제 전쟁터’​가 됐다.

 

#그린란드 논란과 AI 패권…무너진 국제 질서의 단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세계경제포럼(WEF) 웹사이트


이번 포럼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인수 협상 재개 선언이었다. 그는 그린란드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사용한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협 섞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선글라스를 쓴 채 등장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힘의 논리를 ‘브루탈리제이션(Brutalization·야만화)’이라 칭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미국 국채 매도나 ‘무역 바주카포’라 불리는 반강압수단(ACI)을 동원해서라도 다자주의 질서를 지킬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가세했다. 카니 총리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를 지켜온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는 이제 끝났다”​고 단언하며 “​미들파워(Middle Power​·중견국)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가치 기반의 리얼리즘’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허리펑 중국 부총리는 관세와 무역 전쟁의 무의미함을 지적하면서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넘어 세계의 ‘시장’으로서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미국 중심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올해 포럼의 성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세션은 ‘AI Power Play, No Referees(AI 권력 다툼, 심판은 없다)’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AI의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공조를 논의하던 것에서 올해는 기술이 곧 국가 안보이자 무기라는 인식이 전면에 등장했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래리 핑크 블랙록 CEO와의 대담에서 ​AI가 국방과 경제, 사회구조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을 강조했다. 카프 CEO는 AI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노동과 이민 정책까지 대체하는,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지정학적 무기’임을 강조했다. 또 미국과 중국은 AI를 대규모로 적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유럽은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의제의 변화는 기후위기 담론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풍력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를 ‘그린 뉴 스캠(Green New Scam·녹색 사기)’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하며 석유와 가스,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자강을 선언했다. 이는 지난해까지 다보스의 주류였던 탄소 중립 공조 체제가 ‘에너지 안보’라는 장벽 앞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대표단, 공급망 구축과 실질적 협력에 집중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0일(현지 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와 만남을 갖고, 양사 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기로 했다. 사진=HD현대 제공


이러한 지정학적 파편화 속에서 한국 참가자들은 실무적인 행보를 보였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세계가 주목하는 미들파워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복합 도전에 직면한 국제경제통상 질서의 복원에 기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머크(Merck) 등 글로벌 기업 인사들을 만나 한국 투자 유치를 제안하고, 미국 측 인사들과 반도체 관세 등 핵심 현안을 놓고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재계 리더들 역시 각자의 전장에서 생존 전략을 짰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팔란티어와 제조 현장의 AI 이식을 위한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기술 격차 확보에 나섰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핵심광물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십’ 세션의 연사로 나서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 구축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또 기고문을 통해 순환경제가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 등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허브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또한 ‘화학 거버너스 미팅’에 참여해 화학 산업의 중장기 전략과 글로벌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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