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국내 통신 3사의 경영 체제가 나란히 재정비됐다. 지난해 대규모 고객 정보 유출 사고와 잇단 보안 논란으로 내부 통제와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 데다, 통신 사업의 성장 정체가 겹치면서 손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각 사는 위기 관리와 신뢰 회복을 위한 자사만의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사령탑들이 어떤 우선순위와 실행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통신 산업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는 KT에 유독 녹록지 않았다. 연말 끝자락까지 정부가 모든 이용자 대상 위약금 면제 조치를 요구하면서 뒤숭숭한 새해를 맞이했다. 대규모 고객 이탈과 함께 4500억 원 규모의 보상 프로그램, 과징금 등 후폭풍이 예고됐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은폐와 허위 보고 의혹은 KT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이 시점에 차기 수장으로 박탈된 박윤영 대표이사 내정자의 어깨는 무겁다. 무너진 보안 체계를 다시 세우고, 조직 안정화와 인공지능(AI) 사업의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30년 넘게 KT 지킨 전문가…보안 사고 수습 급선무
박윤영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16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면접을 거쳐 차기 대표로 낙점됐다. 1992년 공채로 입사해 컨버전스연구소장, 미래사업개발단장, 기업사업부문장 등을 역임한 그는 30년 넘게 현장을 지킨 ‘정통 KT맨’ 칭호를 얻었다. 이미 2019년과 2023년 대표 선임 과정에서도 최종 후보군에 올랐던 만큼, 내부 사정에 누구보다 밝고 실무 역량이 검증됐다는 평가다. 잠시 SK그룹에 몸담기도 했으나 ‘3수’ 끝에 친정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KT 이사회가 박 내정자를 선택한 핵심 이유는 연구개발(R&D) 역량과 기업사업(B2B) 분야의 전문성이다. 이사회는 “KT 사업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기술 기반의 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DX)과 B2B 분야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막대한 투자에 이어 가시적인 수익을 내야 하는 단계에서 박 내정자의 실무형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 내정자가 마주한 현실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보안 사고의 수습이 급선무다. 지난해 KT는 불법 초소형 기지국(펨토셀) 관리 소홀로 인해 실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일부 정보는 암호화되지 않은 평문 상태로 방치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로 인해 368명의 고객이 총 2억 4300만 원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입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의 최종 조사 결과에 따르면, KT 서버 94대가 2022년 4월부터 ‘BPF도어’를 포함한 악성코드 103종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났다. BPF도어는 시스템에 은밀하게 ‘뒷문’을 설치해 장기간 정보를 탈취하는 방식으로, 주로 북한이나 중국계 해커 집단이 사용하는 고도화된 공격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33종의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과 비교하면 KT의 피해 범위는 훨씬 광범위하다.
특히 지난해 3월 감염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정부에 즉시 알리지 않고, 서버 41대에 대해 자체적인 코드 삭제 조치로 무마하려 했던 정황은 ‘브랜드 신뢰’를 근간부터 흔들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위약금 면제 판단의 사유로 보안 조치의 총체적 미흡을 지목했다.
#해킹 사고 이후 31만 명 이탈…가입자 회복해야
정부 발표 직후 단행된 ‘2주간 위약금 면제’ 조치는 뼈아픈 결과로 돌아왔다. 이 기간 동안 약 31만 3000명의 고객이 번호이동으로 KT를 떠났다. 순감 가입자 수는 약 23만 8000명으로, 박 내정자에게는 단기간 대량 이탈한 가입자 기반을 회복하고 매출 하락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지난해 KT의 연간 실적 전망은 외견상 양호하다. 증권가에서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약 28조 2442억 원, 영업이익 2조 4247억 원으로 전망한다. 전년 대비 각각 6.86%, 199.53% 늘어난 수치다. KT는 지난해 2분기 기준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하며 상장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해킹 사고의 여파는 올해 상반기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4분기 실적에는 해킹 사고에 따른 유심 교체 비용(1000억 원 규모)과 함께 위약금 보상 비용이 소급 반영될 예정이다.
통신 품질이나 결합 할인 등의 서비스 차별성이 옅어지고 해킹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보안 문제는 통신사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KT의 보안 논란이 거세지자, 먼저 사고를 겪었던 SK텔레콤이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으며 가입자를 흡수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내정자는 우선 ‘정보보안 혁신 TF’를 통해 정보보안최고책임자(CISO) 중심의 책임 체계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향후 5년간 1조 원 규모의 정보보안 투자를 단행하고 외부 전문기관의 모의 해킹을 상시화하는 등 관리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보안 수습 이후의 승부처는 단연 수익 모델이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대규모 협력을 통해 AI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최근 보안 사태로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낙마한 상황에서 AI 사업의 성과를 입증하는 것 역시 박 내정자에게 주어진 주요 과제다.
박 내정자가 과거 B2B 수익 구조를 클라우드와 스마트팩토리 중심의 ‘디지털 전환(DX)’으로 재편했던 경험은 큰 자산으로 꼽힌다. 외형 확장보다는 AI 데이터센터(AIDC)와 기업 맞춤형 솔루션 등 즉각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영역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격적인 사업 드라이브에 앞서 내부 결속을 위한 안정적인 인수인계도 중요하다. 당초 박 내정자는 김영섭 현 대표와의 협의를 통해 이달 중 인수위 성격의 TF를 꾸리고 조직 개편을 단행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양측의 협의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임기 만료일까지 경영권을 온전히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조기 조직 개편과 인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식 취임은 3월 말 정기 주주총회 이후에야 이뤄질 전망이다. 이미 조직 개편을 완료하고 AX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일정이 최대 두 달 이상 늦어진다. 인사와 조직 운영의 방향성이 안갯속에 머물면서 내부 결속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통신 리더십 격변] ① SKT 정재헌, 위기관리형 CEO 첫 과제는 'AI 수익화'
·
'백수저' 네이버 탈락, 국가대표 AI 선발전 당락 가른 결정적 요인
·
쿠팡 '셀프결론' 발표가 키운 역풍…정부·수사기관과 정면충돌
·
'쿠팡 위기는 경쟁사에 기회' 이커머스 판 흔들
·
소비자분쟁조정위, SK텔레콤에 "해킹 피해자 1인당 10만 원 지급하라"





















![[통신 리더십 격변] ② 돌아온 'KT맨' 박윤영, 떠나간 고객도 돌려놓을까](/images/common/side0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