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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 다시보기] 싸게 더 싸게 "랜드사의 고혈"

왕복 항공료보다 싼 여행비, 랜드사와 가이드는 투어피 메우기 위해 쇼핑센터 '돌리기'

2019.07.04(Thu) 18:28:07

[비즈한국] 패키지 여행상품은 어떻게 이렇게 싸게 나올까? 단순 왕복항공료보다 저렴한 가격에 호텔과 식사, 관광이 모두 포함된 패키지상품을 팔고 또 산다. 태국의 방콕+파타야를 29만 원에 가고 터키일주 9일도 129만 원이면 된다. 과연 이런 상품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패키지 여행사들이 태국 3박 5일을 29만 원에 판다면, 여기에는 항공비와 패키지사의 마진만 겨우 들어있다. 현지투어피는 마이너스이거나 0원이다. 패키지여행 가격비교 사이트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최근 현지여행사(랜드사)들의 잇따른 폭로로 패키지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랜드사들이 성토하는 내용의 핵심은 하나투어나 모두투어 같은 대형 패키지 여행사들의 횡포와 갑질이 심해 더 이상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패키지 여행사들의 횡포와 갑질은 현지에 지급해야할 투어피를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하는 ‘마이너스(-) 투어피’나 아예 투어피를 주지 않는 ‘제로(0) 투어피’로 대변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관광객의 인원수에 따라 랜드사가 패키지 여행사에 역으로 돈을 주고 단체 관광객을 사오는 ‘인두세’까지 등장한다. 이는 하나투어나 모두투어 같은 대형 여행사들뿐 아니라 흔히 2군이라 불리는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KRT, 투어2000, 온라인투어 같은 회사들도 흔히 행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 패키지사들이 태국 3박 5일을 29만 원에 판다면, 여기에는 항공비와 패키지 여행사의 마진만 겨우 들어있다. 혹은 비용이 항공료로 모두 빠져 마진이 남지 않으면 역으로 랜드사로부터 관광객을 주는 조건으로 일정액을 받아 마진을 챙기고, 현지의 숙박, 교통, 관광비용인 투어피를 주지 않고 관광객을 넘긴다.        

 

태국 랜드사를 운영하는 A 씨는 “아직 현업에 종사하고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이런 방식으로는 한국의 패키지 시장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쇼핑과 옵션을 통해 수익을 유지하는데 10팀 중 3~4팀의 수익으로 겨우 전체의 수익을 맞춘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에 비해 쇼핑에서 소위 ‘터지는’ 팀이 별로 없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랜드사들은 마이너스 투어피나 제로 투어피를 메우기 위해 호텔등급과 식사 수준을 최대한 낮추고 쇼핑센터에서 보내주는 차량을 이용한다고 한다. 랜드사는 그렇게 쇼핑센터와 계약을 맺고 쇼핑센터에서 제공해 주는 차량을 이용해 관광객을 관광지뿐 아니라 여러 쇼핑센터로 ‘돌린다’. 

 

저가의 3박 5일 패키지라면 보통 3~5개의 쇼핑센터를 돌게 된다. 쇼핑센터에 따라서는 쇼핑센터로 들어오는 관광객의 인원에 따라 랜드사와 가이드에 커미션을 주는 곳도 있고, 판매 금액에 따라 커미션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가이드가 “이 쇼핑센터에는 크게 살 것이 없으니 휙 한번 둘러보라”고 한다면 전자일 경우가, 침을 튀겨가며 ‘썰’을 푼다면 후자일 경우가 많다. 

 

옵션투어의 경우에는 20~30달러(2만 3400~3만 5100원)의 투어를 80~100달러(9만 3600~11만 7000)의 투어로 둔갑시킨다. 쇼핑도 옵션도 안하는 관광객에게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미운털’들의 여행경비를 쇼핑과 옵션을 많이 하는 관광객들이 대주고 있는 격이다. 

 

이런 사실을 대놓고 말하고 관광객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게 해서 쇼핑과 옵션을 강요하는 가이드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내가 쇼핑과 옵션에 인색하다면 옆 사람이 하는 쇼핑과 옵션으로 내가 여행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요즘 한창 뜨는 베트남 등도 예외는 아니며 지역별로 약간의 방식과 금액에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 국내 여행업계와 랜드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저가 패키지 상품에서 쇼핑도 옵션도 안하는 관광객의 여행경비는 쇼핑과 옵션을 많이 하는 관광객들이 대주고 있는 격. 가이드의 주된 업무는 여행을 안내한다기보다는 마진이 많이 남는 현지의 상품을 파는 것이 된다. 여행 가이드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터키의 경우에는 몇 년 전 터키 국내 치안이 불안할 때 한국-터키 간 항공이 텅텅 비게 되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저가 패키지가 생겼고 제로 투어피도 나타났다. 이후 터키의 치안 상황이 안정된 후에도 투어피는 그렇게 고착되어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터키 랜드사는 관광객들에게 가죽재킷과 카펫을 팔아야 한다. 가이드의 주된 업무는 여행을 안내한다기보다는 마진이 많이 남는 현지의 상품을 파는 것.   

 

터키 랜드사 대표 B 씨는 “하나투어든 모두투어든 그 외 2군 여행사든 랜드사들끼리 견적을 놓고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에 랜드업을 계속하려면 좋든 싫든 이 상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식으로 저가 덤핑 여행을 하고 싶은 랜드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베트남 랜드사 대표 C 씨는 “이 바닥엔 의리도 인정도 없다. 몇 년간 아무리 현지투어 진행을 잘 해줘도 견적에서 밀리면 한 순간에 물량을 회수한다. 투어피가 낮아지다 못해 없어진 이유”라고 귀띔했다.  

 

관광객은 자연히 진행을 잘하는 랜드사가 아닌, 견적을 최대한 낮게 뽑아준 랜드사로 넘겨진다. 리드를 잘 해주는 가이드가 아닌, 더 많이 잘 파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일정에 합류할 확률이 높은 셈이다. 패키지여행의 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의 성장으로 자유여행객이 팽창하며 패키지시장이 위태롭게 되자 패키지사에서 선택한 모객 방법은 가격을 더 낮추는 것이었다. 

 

중견여행사 대표 D 씨는 “패키지사가 가격을 낮추면서 자사의 마진을 줄인 것은 아니다. 부족한 금액은 랜드사에 떠넘겨졌다”며 “최근 몇 년간 패키지사들이 보여준 성과와 실적은 랜드사들의 고혈이다. 현금이 도니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돌아갈 줄 알았지만 점점 곪아오던 것이 요즘 터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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