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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파업 대해부] ③ [현장]하이닉스가 쏘아올린 '거대한' 공, 삼성을 흔들다

4만 명 평택 결의대회, 삼성 노조 역사 새로 쓴다…'체크오프' 전환으로 배수진 태세

2026.04.23(Thu) 23:17:51

[비즈한국] 반도체 초호황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 노사에 전례 없는 긴장을 불러왔다.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에서 비롯한 불만이 임계점을 넘은 사이 세를 불린 과반 노조가 탄생했다.​ 법적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한 노조는 상위 노조에 기대지 않고 임직원 권익만을 챙기겠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역대급 실적 속 보상 원칙에 대한 회의, 실리로 무장한 새로운 노조의 등판. 삼성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이번 파업은 어디로 향할까.

 

결의대회가 열린 23일 정오 무렵, 경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 사거리가 집회 참석 인파로 붐비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23일 정오 경기 평택 삼성전자 캠퍼스 내 왕복 6~8차선 도로가 유례없는 인파로 뒤덮였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 단체행동인 ‘4·23 투쟁 결의대회’ 현장이다. 캠퍼스 입구에서 메인 무대까지 이어진 약 1km 동선을 따라 검은색 노조 조끼를 맞춰 입은 조합원들이 모여들었다.

 

#평택 캠퍼스 가득 메운 인파, 창사 최대 결집

 

집회를 주최한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 투쟁본부의 ‘3만 명 동참’ 목표는 현실이 됐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경찰 추산 약 3만 4000명)이 모였는데, 이는 노조 공동투쟁본부의 주축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7만 6000여 명의 절반을 넘는 규모로 지난해 첫 파업 결의대회(약 4000명)의 10배에 달한다. 

 

오후 1시로 예정됐던 행사는 인파 정리가 지연되며 오후 2시께 시작됐다. 현장 분위기는 긴장감 어린 투쟁보다는 단결을 도모하는 성격에 가까웠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인원들도 있었지만 동료와 함께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등 대체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행사 시작이 임박한 시간에도 대열에 합류하는 대신 뙤약볕을 피해 잔디 그늘에 앉아 대기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행사 전 피케팅 연습이 여러 차례 진행되는 등 노조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조직문화가 반영된 풍경도 연출됐다. 

 

23일 경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 메인 행사장으로 향하는 조합원들. 사진=강은경 기자


이날 현장에는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와 초기업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지부·삼성화재 지부·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부까지 삼성 계열사 노조 위원장도 참여했다.

 

크레인에 오른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회사가 ‘인재제일’이라는 삼성의 경영 원칙을 저버리고, 직원들의 땀과 노력이 아닌 오직 시황만이 이 회사의 성과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며 “총파업 기간인 18일 동안 공장이 멈추면 18조에 가까운 공백이 생긴다. 경영진에게 그 숫자가 우리의 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지만 반도체, AI, 전자, 자동차 등 가장 중요한 산업의 인력에게 정당한 보상이 없다면 누가 미래를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공동투쟁본부가 파업을 감행하는 건 삼성전자의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최승호 위원장은 크레인 위에서 등장해 사측에 대한 요구사항을 밝혔다. 사진=강은경 기자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재용 회장의 주식은 수십조 폭등했고 경영진은 수십억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홍광흠 초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오늘의 역사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성벽에 최초로 맞선 대서사극의 첫 페이지”라며 조직 결속을 강조했다.

 

결의대회 직후 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협상 재개 조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사측의 진정한 사과가 선행돼야 하고, 교섭 안건도 미리 갖고 와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게 전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경영진이 알고 있다면 이재용 회장이 실제로 한번 나오셨으면 좋겠다”고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또 “DX(디바이스경험) 부문 VD(TV·가전) 사업부는 흑자를 내고 있는데도 EVA(경제적 부가가치) 기준으로 적자 취급을 받고 있다. 과반 노조로서 내년에는 추가 재원을 함께 요구할 수 있다”며 비DS(반도체) 사업부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했다.

 

#하루 손실 1조 원 현실화 우려…경쟁력 저하 시각도

 

노조는 이날을 기점으로 투쟁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DS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하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데 이어 체크오프(조합비 급여공제) 전환을 선언하고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연차를 활용한 사실상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투쟁지침 2호를 내렸다. 체크오프는 조합원 신분을 회사에 공식화하는 절차로, 총파업을 위한 조직 동력을 극대화하는 마지막 단계로 통한다. 노조는 체크오프 참여 규모를 5만~6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 도로에는 전국 각지에서 조합원들을 실어 나른 셔틀버스와 고속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사진=강은경 기자


이날 결의대회는 조합원의 단결을 강화하고 경영진을 압박하기 위한 전초전 성격의 집단 행동이었지만 단순 집회에 그치지 않고 생산 현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캠퍼스 내 주요 도로 차단으로 공사 차량과 통근 버스 진입이 지연됐고 평택 P4·P5 팹 공사에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사업장은 휴무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A 씨는 “부서 인원 450명 가운데 400명가량 참여했다”며 “자동화 라인이라도 인력이 빠지면 일부 공정은 멈출 수밖에 없다. 오늘 하루만으로도 생산량에 확실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2년 전엔 직원들이 회사 손해를 우려해 참여를 망설였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금은 사무실 의자에 노조 조끼를 걸어놓을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노사 간 소통 문제가 계속됐고, 이제는 불가피한 손해가 뒤따르더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올해 초 노조에 가입했다는 메모리 사업부 30대 직원 B 씨는 “실적 급등이 눈에 보이는데 보상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장의 참여 인원을 직접 보니 파업 전 협상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경찰 추산 약 3만 4000명)이 결집했다. 사진=강은경 기자


#“노조 리스크 vs 세 확인” 갈등 고조 

 

사측은 노조 리스크 확대를 경계하며 대응책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업계의 시선은 파업이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쏠려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인 300조 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파업 시 하루 약 1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18일간의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피해 규모는 30조 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노조는 이번 결의대회를 기점으로 4만 명의 결집으로 조직력을 실증했고, 이를 바탕으로 협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갈등의 파장은 비용을 넘어 기술 경쟁력 논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경우, 그 규모는 최대 45조 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 연구개발(R&D) 비용(37조 7000억 원)을 웃도는 수치다. 이에 이날 오전 일부 주주들은 결의대회에 앞서 파업 반대 집회를 열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측 역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대응에 나선 상태다. 

 

한편 하루 전날 집회를 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는 사측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일부 인용된 결과에도 5월 1일 파업을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법원은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 가운데 일부 정제 단계만 ‘중단할 수 없는 작업’으로 판단했다. 박재성 상생노조 위원장은 “부분 인용이며, 제품화시키는 일부 공정에 한해서만 작업을 해야한다는 판결이기에 파업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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