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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즉행] 2월의 설국, 대관령 선자령 눈꽃 트레킹

3월까지 내리는 눈눈눈… 눈꽃과 상고대 즐기며 가볍게 산행, 왕복 4시간이면 충분

2020.02.07(Fri) 14:54:37

[비즈한국] 선자령(仙子嶺), 신선마저 바쁜 걸음을 잠시 쉬며 구비구비 산자락 내려다보며 노니다 갈 만한 고개다. 지난 2월 1일 입춘을 목전에 두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자락의 선자령을 찾았다. 

 

지난 2월 1일 입춘을 목전에 두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 자락의 선자령을 찾았다. 사진=이송이 기자


겨울과 봄 사이 애매한 2월의 첫날, 하지만 선자령의 풍경만큼은 완벽한 설국이다. 서울은 겨우내 경제 위기니 바이러스니 삭막한 계절을 버티고 있지만, 구름도 쉬어 간다는 대관령 기슭에 자리한 선자령의 겨울은 하얀 낭만이 가득하다. 

 

대관령은 국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가르며 영동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과 영서의 대륙 편서풍이 부딪쳐서 내는 효과다. 3월 초까지도 적설량 많은 대관령에서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언덕이 선자령이다. 눈과 바람의 언덕이다. 

 

3월 초까지도 적설량 많은 대관령에서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언덕이 선자령이다. 눈과 바람의 언덕이다. 사진=이송이 기자


선자령은 산행보다는 트레킹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큰 오르내림 없이 편안하게 능선을 탄다. 대관령의 오밀조밀한 속살과 장쾌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시원하다. 선자령은 해발 1157m지만 대관령휴게소가 840m이니 정상과의 표고차는 317m밖에 안 된다. 대관령의 맛을 제대로 보는 꽤 긴 능선이지만 산행은 동네 뒷산 수준으로 어렵지 않다.

 

트레킹 코스도 쉽고 단순하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해 전망대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은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내려올 때는 출발점으로 돌아와도 되고, 다른 풍경을 보고 싶다면 재궁골삼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도 된다. 재궁골삼거리와 풍해조림지를 지나면 양떼목장이 나오고 다시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내려오나 저렇게 내려오나 산행거리는 총 11~12km 정도다. 중간에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내려와도 왕복 4시간이면 된다. 

 

겨울 선자령의 인기는 겨울눈 덕분. 태백산이나 설악산처럼 상고대와 눈꽃이 피기 때문이다. 상고대란 급냉각된 미세한 물방울이 나무의 측면에 붙어 동결해 순간적으로 생긴 얼음을 말한다. 꽃같이 피어올라 얼음꽃이라고도 하는데 엄동설한에 피워 올리는 얼음꽃의 향연이 봄꽃 못지않다. 

 

상고대는 바람이 강할수록 크게 성장하고 눈꽃은 폭설이 내릴수록 탐스럽게 피어난다. 사진=이송이 기자


선자령 남쪽으로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정상에 서서 산들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2020년의 소망을 되새긴다. 사진=이송이 기자

 

눈송이가 겹겹이 붙어 생긴 눈꽃도 온 나무를 치장한다. 꽃이라고는 모르던 날카롭던 칩엽수들도 온몸으로 두루뭉술 눈꽃을 피워 올린다. 형형색색 하늘거리는 봄꽃이 마음을 보드랍게 애무한다면, 눈이 시리게 하얗고 차가운 얼음꽃과 눈꽃은 침잠했던 생의 기운을 단단하게 끌어올린다. 연약해진 마음을 다잡게 한다.

 

상고대는 바람이 강할수록 크게 성장하고 눈꽃은 폭설이 내릴수록 탐스럽게 피어난다고 한다. 생활의 차가운 바람이 무시로 나를 할퀴고 생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저 상고대처럼 안으로 단단해지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저 눈꽃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꿈을 꾸는 거라고, 그렇게 되뇌어본다. 

 

선자령을 찾은 날은 마침 며칠 전부터 내린 폭설 덕분에 깊은 눈 속으로 짧은 다리가 푹푹 빠졌다. 아직 어느 한 곳 더러움이 묻지 않은 신선한 눈밭이 마음까지 푹푹 빠지게 한다. 큰일이다. 처음 온 선자령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봐버렸다. 가장 맛있는 반찬을 먼저 다 먹어버린 기분이랄까.​

 

연신 발바닥에서 뽀드득뽀드득 거리는 눈에 취해 5km가량을 그리 힘들지 않게 걷다보니 어느새 선자령 정상이다. 정상 이래 봤자 산의 꼭대기라기보다는 긴 능선을 이어가는 한 지점일 테지만 가장 높이 자리한 그 지점을 사람들은 정상이라 부르고, 목적지라 부르고, 완성이라 말하고, 도달했다 환호한다. 선자령 남쪽으로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 황병산. 정상에 서서 산들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2020년의 소망을 되새긴다. 

 

자랑스러운 듯 ‘백두대간선자령’ 비석 하나 우뚝 서 있는 정상에서 사진 하나 박고는 서둘러 내려가는 것, 그것이 모든 산행의 똑같은 스토리다. 사진=이송이 기자

 

백두대간 능선을 타며 1박 2일 야영짐을 꾸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진=이송이 기자

 

자랑스러운 듯 ‘백두대간선자령’ 비석 하나 우뚝 서 있는 정상에서 사진 하나 박고는 모두들 다시 서둘러 내려가는 것, 그것이 모든 산행의 똑같은 스토리다. 산에서나 인생길에서나 절정에서 아래로 내리는 길은 그것이 순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아쉽다. 아쉬운 마음은 눈꽃들이 화사하게 반짝이며 달래준다. ​

 

그래도 영 아쉬운지 내려오는 중간쯤에서 간단한 텐트나 비닐막을 치고 호젓하게 노니다 오는 사람들도 많다. 1박 2일 야영짐을 꾸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터가 다져진 설동들이 제법 보이는 것을 보니 어젯밤에도 이 능선에서는 한겨울 시린 눈 속에서 별밤에 취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선자령 넘어 오대산까지 갑니다.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거죠.”

 

텐트와 침낭 등을 어깨에 둘러맨 야영객의 한마디. 길이 가파르지 않으니 겨울 하룻밤을 보내게 해줄 커다란 배낭을 감당하는 어깨도 견딜 만하리라. 내심 속으로는 ‘다음엔 나도 야영을!’ 하고 되뇐다. 한낮에 황홀하게 깔린 눈밭만큼 한밤에 이 언덕으로 쏟아질 별빛도 문득 욕심이 난다. ​

 

내리는 길에서도 눈은 여전히 푹푹 빠지고 뽀드득 거리고, 그렇게 다시 5km 남짓 실컷 눈 구경하며 선자령을 만끽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사람이 조금 드문 곳으로 길을 내린다. 산에서 먹는 점심은 잠시나마 야영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입맛이 떨어졌다면 단연 산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메뉴가 뭐든 꿀맛 같은 식사를 보장한다. 컵라면과 사과, 몸을 데워줄 한모금의 위스키로 간단하지만 마음만은 거나한 점심을 먹고 남은 길을 이어간다. 내리는 길에서도 눈은 여전히 푹푹 빠지고 뽀드득 거리고 그렇게 다시 5km 남짓 실컷 눈 구경하며 선자령을 만끽한다. 문득문득 무심코 잊고 살던 순수를 발견한 듯,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하얗게 설레는 마음을 겨우겨우 부축하면서. ​

 

켜켜이 내린 눈 덕분인지 갑자기 드러난 파란 하늘 때문인지 세상이 참 맑고 깨끗하다는 착각(?) 속에서 잠시나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겨울 낭만을 누린다.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다는 선자령이라지만 어쩐지 포근하기 그지없는 날씨 속에서 얼었던 마음, 딱딱해져버린 머릿속까지 말랑말랑 녹아내린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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