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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야행] 뉴트로 갬성과 소박한 일상의 조화, 북촌 계동길

오래된 세탁소와 힙한 카페, 상점마다 주인장 사진 걸어…소박한 동네에서 여행하듯 산책하듯

2019.03.21(Thu) 09:24:35

[비즈한국]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가 된 시대. 지난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많은 직장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맞았다. 그들을 위해 퇴근 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를 소개한다.

 

오후 ​4~5시가 되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오는 작은 골목. 계동길 끝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카페에 앉아 교복 입은 학생들의 싱그러운 움직임과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마치 봄의 새싹들이 움트는 것을 지켜보듯 절로 훈훈한 기분에 젖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다가가 물어보고 싶어진다. 마음으로는 그네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누구에게나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본다. 옛날 동네 모습을 아련하게 간직한 골목의 모습. 오래된 듯, 세련된 듯, 아련한 듯, 새로운 듯, 계동길은 드라마 세트장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그때 그 동네 같기도 하다.  

 

계동길에서는 어느 가게든 안으로 들어서기 전 주인장을 사진으로 먼저 만나게 된다. 오래된 세탁소든 새로 생긴 힙한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커다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방향 현대사옥에서 시작되는 계동길은 중앙고등학교에서 끝난다. 이 길은 번화한 북촌에서 한 블럭 외곽에 있다. 한 블록 더 가면 창덕궁이다. 중앙고등학교를 정면에 두고 왼쪽으로 가면 북촌 방향, 오른쪽으로 가면 창덕궁 담을 제 동네 담 삼은 원서동 방향이다. 이 작고 소박한 골목은 넓은 의미에서는 북촌에 포함된다.

 

1km가 될까 말까 한 계동길에는 옛날부터 있던 오래된 가게들과 최근 2~3년 전에 생긴 세련되거나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섞여 있다. ‘미미당북촌호떡’과 ‘계동떡방앗간’, 학교 앞 이름 없는 문방구, 맛탕과 함께 잔 막걸리를 파는 ‘짱구네식당’이 직접 향을 제조하는 향수집 ‘르네’나 가로수길에나 있을 법한 세련된 안경점 등과 함께 길의 풍경을 만든다. 거기에 자화상을 찍어주는 흑백사진관 ‘물.나무’와 로스터리 카페인 ‘모던팩토리’, 이 길을 꽤나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카페공드리’, ‘계동피자’, ‘계동커피’가 그 곁에 나란하다.  

 

지난해 10월 계동길에서는 ‘정박의 기억: 계동 2018’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계동길에 있는 상점의 주인들을 사진에 담아 프린트해서 가게 전면에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엮었다. 사진=이송이 기자


지난해 10월 계동길에서는 ‘정박의 기억: 계동 2018’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계동길에 있는 상점의 주인들을 사진에 담아 프린트해서 가게 전면에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도 엮었다. 골목 자체가 하나의 갤러리가 된 셈. 이후 사진들은 대부분 그대로 가게 밖에 걸려 있어 지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 가게든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주인장을 사진으로 먼저 만나게 된다. 오래된 세탁소든 새로 생긴 힙한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커다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덕분에 거리를 지나는 내내 왠지 모를 흐뭇함이 인다. 모두가 마치 알고 있던 사람들 같다. ‘그곳’에서 파는 음식이나 커피, 소품도 주인장의 정성이 묻어 있을 것 같고 왠지 모를 믿음도 생긴다. 얼굴을 걸고 하는 장사 아닌가. 최소한 그 얼굴에 부끄럽지 않을 무언가를 파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리를 지나는 내내 왠지 모를 흐뭇함이 인다. 모두가 마치 알고 있던 사람들 같다. 시골 장터처럼 길가에서 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짱구네식당. 사진=이송이 기자


이 길에서 물나무사진관을 운영하며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현식 씨는 “마을의 정체성은 사람이 중심인 풍경이다. 북촌은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박제된 관람 거리나 인증샷을 위한 관광명소가 아닌, 여전히 이 공간을 채우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체취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장소로서 의미를 가진다”며 “이 길에서 지금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엮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박제된 관람 거리가 아닌, 여전히 이 공간을 채우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체취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계동길. 사진=이송이 기자


오래된 슈퍼마켓과 미용실, 목욕탕과 분식집은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거나 후져 보이지 않는다. 요즘 생긴 세련된 가게들조차 자기만을 뽐내지 않고 옛날 가게들처럼 골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3~4미터의 폭, 이쪽 가게에서 맞은편 저쪽 가게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넓지 않은 골목도 계동길의 아기자기함을 더한다.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한때라는 뜻의 타이 레스토랑 ‘화양연화’. 그 옆엔 삼겹살집 ‘중경삼림’이 있다. 태국음식과 화양연화, 삼겹살과 중경삼림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그 이름을 지은 사람만 알 테지만 이름만으로도 작은 골목에 재미를 더한다. 

 

그 옆 플라워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꽃들과 초록의 화분들이 내뿜는 화사함이 커피 향을 넘어선다. 또 그 옆엔 주인아주머니의 푸근한 웃음이 좋은 낮은 한옥의 ‘더한옥카페’, 그 맞은편엔 하루 종일 빵 만드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한 카페 ‘미스핏츠’에서 직접 만든 마카롱을 먹을 수 있다. 

 

계동길에서 맛보는 소박한 브런치. 호랑이 카레집의 아보카도레드커리. 사진=이송이 기자

 

요즘 흔히 ‘뉴트로 갬성’이라 불리는 옛날 목욕탕과 이발관, 전파사 사이로 페브릭 소품과 액세서리 등의 공예품을 파는 작은 공방들도 여럿이다. 계동길 안쪽 골목에는 오밀조밀한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틈으로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드문드문 자리한다. 

 

계동길을 걷다보면 느닷없이 오래된 우물까지 나온다. 계동 55번지 앞엔 ‘석정보름우물터’가 있다. 돌로 된 이 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지곤 해서 보름우물이라 불려 졌다 한다. 한때는 종교단체에서 이 물로 영세를 할 만큼 신성하게 여겨졌다.

 

연이은 상점과 식당, 카페 사이로 갤러리가 된 한옥이나 사연을 품고 개방된 고택들도 드문드문 자리한다. 고희동 가옥에서 마당을 거닐거나 배렴가옥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한옥방에서 전시를 보는 맛도 색다르다. 

 

계동 골목 가장 끝에서 계동길을 내려다보는 중앙고등학교는 1983년에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를 품은 장소다. 일제 강점기에 교사들이 숙직실에서 3.1운동을 위한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앙고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한때는 일본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중앙고 앞 문방구에서는 아직도 그 시절 드라마 브로마이드를 판다.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의 시간을 풀어놓는 계동길의 밤은 조금 일찍 찾아온다. 사진=이송이 기자


관광지가 되어 버린 북촌과는 또 다른 느낌의 오래된 계동길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숨어 있듯 자리한다. 관광객도 있지만 동네 사람도 있다.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의 시간을 풀어놓는 계동길의 밤은 조금 일찍 찾아온다. 9시가 되면 골목은 온전히 동네 사람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듯 보인다. 조금 일찍 퇴근한 어느 날, 낮과 밤, 일상과 여행, 지금 여기와 그때 거기, 그 경계의 풍경을 느껴보기 좋은 길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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