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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화성의 운하는 물이 아닌 '빙하'의 흔적

빙하가 태양풍과 우주 방사선 차단,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 더 높아져

2020.09.07(Mon) 10:19:16

[비즈한국] 1882년 조선은 최초로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며 서방 국가와 교역을 시작했다. 그다음 해 1883년 7월 조선은 답례의 의미로 미국에 외교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조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을 방문한 조선의 외교 사절단 ‘보빙사’는 일본인과 미국인 통역사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다. 보빙사가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그것을 일본인 통역사가 일본어로 옮겨주고, 일본어를 아는 미국인 통역사가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보빙사들의 미국 방문을 도와주었던 미국인의 직업은 천문학자였다. 그의 이름은 퍼시벌 로웰. 로웰은 원래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금수저 출신이다. 당시 로웰은 가업을 물려받고 여유롭게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중, 일본을 거쳐 조선이라는 낯선 나라까지 당도했다.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로웰은 고종 황제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나라를 소개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유명한 기행문도 남겼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팬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희동구’라는 이름을 선물했던 것처럼, 당시 고종 황제는 로웰에게 ‘노월’이라는 조선 이름을 하사했다. ​

 

오랫동안 화성은 지구처럼 과거 액체 바다로 덮여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이 기존의 관점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가설이 제시되었다. 화성은 단순히 물이 아니라 빙하로 덮여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과연 화성의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후 보빙사들과 함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로웰은 우연히 19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쓴 ‘행성 화성(La planete Mars)’이라는 책을 접했다. 책에 담겨 있는 지구 밖 다른 행성의 놀라운 묘사에 매료된 로웰은 돌연 사업보다 더 재밌는 취미 생활을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로 남은 평생을 바쳐 화성을 직접 관측하며 세월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이던 로웰은 그렇게 본격적인 천문학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금수저 출신이었던 만큼 로웰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스케일도 남달랐다. 로웰은 아예 자기만의 전용 천문대를 건설했다. 하인들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천문대를 짓기 좋은 부지를 찾았고, 이후 애리조나에 위치한 해발 2000미터의 플래그스태프산에 ‘로웰 천문대’를 건설했다. 개인 별장, 개인 요트 수준이 아니라 개인 천문대라니, 이런 게 진짜 ‘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포함한 보빙사들과 함께 로웰이 찍은 사진. 왼쪽 두 번째 유일한 서양인이 로웰이다. 사진=Lowell Observatory Archives

 

자신의 이름을 붙인 개인 천문대에서 24인치 망원경으로 금성을 관측하고 있는 로웰의 모습. 사진=Lowell Observatory Archives

 

이곳에서 오랫동안 직접 화성을 관측하던 로웰은 1894년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화성 표면에서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운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실 로웰 전부터 화성 표면에 뭔가 거뭇거뭇한 흔적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었다. 1858년 화성을 관측한 안젤로 세키는 화성 표면에서 이 어둡게 보이는 얼룩을 발견했다. 그는 이 얼룩들이 지구에서 물이 채워진 바다에 해당하는 지형이라고 생각했고, 카날레(Canale)라고 불렀다. 

 

이후 1877년 이탈리아의 스키아파렐리는 더 좋은 망원경으로, 화성 표면에 선명하게 쭉쭉 그어져 있는 어두운 물길 같은 흔적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는 이 지형을 보고 자연적으로 물이 흐르면서 생긴 물길이라는 의미에서 카날리(Canali)라고 불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화성 표면에서 보이는 거뭇한 흔적들은 물이 흐르면서 생긴 자연적인 지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1889년 미국의 천문학자 찰스 어거스트 영은 스키아파렐리가 그린 화성 지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물길들이 추가로 화성 표면에 나타났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10년 남짓한 짧은 시간 사이에 화성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새로운 물길을 판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사실 19세기 후반 당시는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등 거대 운하들이 개통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 화성에도 이런 거대한 운하들이 건설되어 있을 것이란 상상을 펼칠 수 있었다. 

 

실제 망원경으로 관측한 화성(왼쪽)과 퍼시벌 로웰이 당시 화성에서 발견했다고 기록했던 운하들(오른쪽)을 비교한 사진. 거뭇거뭇한 지형들이 모두 확인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웰이 그린 그림에서만 선명하게 보이는 운하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현재 많은 천문학자들은 로웰이 개인적 사견을 반영해서 화성을 왜곡해서 봤거나, 실제 보이지 않았던 운하가 있다고 허풍을 떨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사진=Tom Ruen, Eugene Antoniadi, Lowell Hess, Roy A. Gallant, HST, NASA

 

자신의 천문대에서 화성을 바라보며 매료되었던 도련님, 로웰 역시 화성 표면에 이런 흥미로운 흔적을 보게 된다. 심지어 로웰은 스키아파렐리가 단순히 자연적으로 생긴 물길을 의미하며 불렀던 ‘카날리’라는 명칭을 인공적인 운하를 의미하는 ‘카날(Canal)’로 오역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로웰은 화성에 있는 이 흔적들이 화성에 살고 있는 어떤 문명이 화성 극지방에 얼어 있는 얼음을 녹여서 적도 지방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건설한 인공적인 운하의 흔적이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펼쳤다. 화성에 정말로 외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라하는 이 오래된 떡밥의 시초는 우연히 조선에 놀러왔던 금수저 출신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었던 셈이다. ​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로 화성을 방문한 로봇 탐사선들은 화성 표면에서 인공적인 운하 같은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오늘날 많은 천문학자들은 당시 로웰이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려넣어서 허풍을 떨었다고 의심한다. 그런데 화성 표면에는 인공 운하는 없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지질학적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과거 화성에도 지구 못지않게 풍부한 물이 흘렀다는 것을 암시하는 강줄기와 같은 흔적들이다. 

 

화성 표면 곳곳에는 사방으로 뻗어 있는 다양한 강줄기 흔적들과, 그 아래 강 하류에 퇴적물이 쌓인 삼각주 지형도 발견된다. 또 아주 부드럽게 마모된, 블루베리 같은 둥근 자갈들도 발견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돌멩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물이 흐르면서 돌이 서로 부딪히고 깎여 나가는 풍화 침식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이런 블루베리 돌멩이들의 존재는 화성에 과거 물이 가득했다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

 

화성의 매리너 계곡과 미국을 비교한 그림. 화성 한가운데 깊게 파여 있는 매리너 계곡은 그 길이만 3000km, 깊이는 8km에 달한다. 그랜드캐니언은 길이 350km에 깊이는 1.6km로, 화성의 매리너 계곡에 비하면 손톱자국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다. 사진=NASA/JPL-Caltech

 

화성 표면에서 발견되는 둥글게 마모된 블루베리 돌멩이들. 이런 돌멩이들은 과거 화성에 자갈을 만드는 하천이 많았다는 증거가 된다. 사진=NASA/JPL-Caltech

 

특히 화성의 남반구에 있는 고원 지역을 보면 수만 개의 크고 작은 물줄기들의 흔적이 발견된다.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흔적들이 모두 과거 화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르면서 생긴 강줄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추측에는 사실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태양계의 진화 과정을 바탕으로 과거 고대 화성의 기후를 시뮬레이션해보면, 고대 화성은 지구처럼 온난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매서운 추위로 차갑게 얼어 있는 빙하기와 같은 모습이었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즉 고대 화성의 표면은 액체 상태로 흐르는 물보다는 차갑게 얼어 있는 얼음 빙하들로 덮여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화성 표면에 남아 있는 물줄기들의 정확한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서, 2만여 개의 화성 물줄기와 캐나다 북부 데본섬에서 빙하에 의해 생긴 지형을 비교했다. 흥미롭게도 화성의 물줄기 구조 대부분은 단순히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르면서 생긴 강줄기라기보다는, 데본섬에서 볼 수 있는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흔적과 더 유사했다. 즉 화성 표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운하’들은 단순히 물이 흐르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처럼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깎여 나간 지형인 것이다. 

 

이번에 분석된 1만 276개의 화성 ‘운하’들의 분포 지도. 이들 대부분은 단순히 물이 흘러서 생긴 지형이 아니라 과거 얼어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깎아 만든 지형으로 확인되었다. 사진=Galofre et al, 2020.

 

결국 새롭게 확인된 화성의 과거의 모습은 우리가 기존에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얘기다. 과거 화성은 단순히 지구처럼 따뜻한 기후와 액체 상태의 바다로 뒤덮여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차갑게 화성 전역이 얼어 있는 빙하로 뒤덮인 붉은 얼음 사막 행성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화성에도 과거 생명체가 존재했을 것이란 기존의 기대는 무너지게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실망하기는 이르다. 아니 오히려 화성이 빙하로 뒤덮여 있었다면, 더욱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당장 화성에 이주해서 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화성 표면에 쏟아지는 강력한 태양풍과 우주 방사선 때문이다. 화성은 지구와 달리 이들을 방어해줄 강한 자기장 보호막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화성에도 지구처럼 풍부한 물과 얼음, 대기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안타깝게도 자기장이 사라진 화성의 표면은 결국 태양에서 날아오는 태양풍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래전 화성의 대기와 물은 모두 우주 공간 바깥으로 벗겨져 날아갔다. 화성에겐 태양풍이 모든 것을 벗겨내는 ‘탈모빔’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화성의 과거는 단순히 액체 바다로 덮인 지구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 빙하기를 겪는 지구의 모습처럼 표면 대부분이 두꺼운 얼음 빙하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오히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사진=NASA/JPL-Caltech

 

그런데 만약 과거 화성 표면이 이런 두꺼운 빙하층으로 덮여 있었다면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를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다. 덕분에 태양풍이 쏟아지는 화성에서도 더 오랫동안 생명체가 버티고 생존했을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다. 추운 겨울 호수 표면이 꽝꽝 얼어도, 그 얼음 아래에서는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것처럼, 과거 화성도 표면의 얼음층 아래에 생명체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화성 물길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자기장이 거의 없는 화성에서도 오래전 얼음층 아래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새롭게 열리게 되었다. 머지않은 미래, 어쩌면 화성에 도착한 다음 로봇 탐사선, 또는 유인 탐사대의 손에 화성 땅 밑에 잠들어 있던 고대 화성 빙어들의 화석이 새롭게 발견되는 날이 찾아올지 모른다. 지구 밖 다른 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했고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화성 땅속에서 고대 생명체들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미래를 꿈꿔본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1-020-0618-x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04357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1127-y?proof=t 

http://www.antarcticglaciers.org/glacial-geology/glaciers-mar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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