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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제5공화국에 맞섰던 '레저산업 선구자' 명성그룹

국내 '콘도미니엄' 방식 최초 도입…전두환 정권 세무조사에 반대성명 내기도

2020.10.06(Tue) 15:38:40

[비즈한국] 한 때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대한민국 레저 역사를 개척하며 재계에 이름을 떨쳤던 명성그룹은 대한민국 최초의 관광레저전문그룹으로, 지금은 국민에게 익숙한 ‘콘도미니엄’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명성그룹은 전두환 정권 눈 밖에 나며 사실상 정리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1983년 모습(왼쪽)과 2008년 부부 공동 서화전 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문에 성명까지 내며 전두환 정권과 국세청에 반기를 들었던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은 결국 강도 높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금융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며 명성그룹도 같이 해체됐다. 이 사건은 5공화국 시기 3대 대형금융부정사건 중 하나인 ‘명성그룹사건’이다.

 

#샐러리맨, 택시 운수업 거쳐 레저산업으로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은 193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공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을 거쳐 호남비료에 입사했다. 입사 2년 만에 과장자리를 꿰차며 고속승진 했던 그는 1966년 29세의 나이에 돌연 호남비료를 퇴사하고 전라남도 광주시에 ‘금강운수’라는 택시회사를 차렸다.

 

당시 택시 운수업을 위해서는 택시의 수급이 가장 중요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택시 자동차로 토요타 승용차인 ‘코로나’가 인기를 끌었다. 김철호 회장은 코로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자동차 생산량이 현저히 적었으며 신진자동차에서 코로나를 독점으로 생산하고 있어 수급이 어려웠다.

 

김철호 회장은 당시 신진자동차 김창원 사장 집에 꼭두새벽부터 찾아가 무작정 기다렸다고 한다. 김철호 회장은 노력 끝에 김창원 사장을 만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0대의 코로나 자동차를 제공받아 택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김철호 회장은 1년 만에 100대가 넘는 코로나 자동차를 들여오며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이후 코로나 자동차 판매중개업까지 겸했다. 금강운수는 당시 금호그룹의 광주고속 다음으로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고 한다. 

 

김철호 회장은 1968년 금강운수를 광주에 두고 서울로 상경했다. ‘금강개발’을 세워 건설업에 진출했고, 식품업에 진출하며 사업 확장에 힘썼다. 하지만 모든 사업이 다 실패했고, 심지어 금강운수도 부도나며 김철호 회장은 빚쟁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잠적했다.

 

1971년 그는 고향인 임실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의원은 되지 못했지만 이후 한 목재 회사에 부사장으로 취임해 2년간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철호 회장은 사업의 꿈을 접지 않았다. 1976년 명성관광을 설립해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명성그룹의 태동

 

1979년 3월 김철호 회장은 제주도에 1560실의 콘도미니엄 건설계획 허가를 받으며 새로운 관광숙박시설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1979년 9월에는 자금난에 시달려 공사가 중단된 경기도 오산의 오성골프장을 19억 1300만 원에 인수 후 68억 원을 들여 골프장을 완공해 ‘명성컨트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했다. 이 골프장 덕에 명성그룹은 재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80년 6월 명성그룹은 설악레저타운 건설 계획서를 교통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민간에서 230만㎡​의 대규모 레저타운 건설을 주도한 적이 없어 법적 조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교통부가 사업인가를 내주기 위해 ‘종합관광 휴양지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양평에 있는 용문산을 개발해 1785만㎡​ 규모의 레저타운을 만드려는 시도와 함께 지리산에 케이블카 건설을 계획하는 등 레저산업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며 사업가의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 레저산업의 선구자였던 김철호 회장은 23개 계열사를 명성그룹 산하에 두는 레저전문 그룹 오너가 됐다. 

 

하지만 사업가로서 실패하고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였던 그가 골프장을 인수하기 위한 19억 원과 완공하기 위한 68억 원의 자금을 어디서 조달했는지 의문이 남았다.

 

#제5공화국 대형금융사건 ‘명성그룹사건’과 명성그룹의 몰락

 

1981년 제5공화국,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본격적인 ‘기업 길들이기’에 나섰다. 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여러 기업에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일이 많았으며 명성그룹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1982년 명성그룹이 소유한 양평올림픽레저타운, 설악레저타운 등 관광명소 15군데 등 여러 레저타운 부지 6600만㎡​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진행됐고, 김철호 회장은 세금 탈수 명목으로 17억 원을 토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성그룹은 통일교 지원설, 대통령 장인인 이규동 씨가 뒷배에 있다는 소문이 났고, 1983년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세청을 동원해 다시금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세무조사 중 정권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김철호 회장은 1983년 7월 여러 일간지에 ‘강호제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성명을 내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명성그룹의 정면 도전에 뿔난 국세청은 세무조사 인원을 두 배로 늘리며 명성그룹을 털기 시작했다. 결국 국세청이 김철호 회장의 차명계좌를 발견하며 국세청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이 때 명성그룹의 의문스럽던 자금조달 과정이 밝혀졌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김철호 회장에게 1000억 원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경위가 밝혀졌고, 그 자금조달책은 상업은행의 김동겸 대리였다. 한 은행의 대리가 1000억 원의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은행 시스템이 전산화되지 않아 수기로 내역 등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1989년 국회 5공 부실기업 청문회에 출석한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왼쪽)과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동겸 대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사채업자들과 예금조성을 했다. 조성된 예금은 부정 인출을 통해 김철호 회장에게 전달됐다. 김동겸 대리가 조성한 자금으로 김철호 회장은 명성그룹을 키웠던 것이다. 1984년 8월 14일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으로 김철호 회장에게 징역 15년, 벌금 79억 3000만 원, 김동겸 상업은행 대리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명성그룹도 해체됐다. 이후 ㈜명성, 금강개발, 명성관광 등 6개의 레저사업 부문이 ‘정아’로 사명이 변경되며 법정관리를 받았고, 이후 한화그룹으로 편입됐다.

 

#명성그룹사건 그 후

 

김철호 전 회장은 1993년 9월 가석방된 후에도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태백산 폐광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투자 금액만 1조 1000억 원이었다. 관광레저단지, 복합리조트, 스키장 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2000년 20억 원 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되며 무산됐다. 

 

레저사업뿐만 아니라 김철호 전 회장은 다른 사업에서도 활로를 찾으려했다. 1999년 돌연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고 밝혔으나 별다른 진척 없이 마무리됐다. 2006년에는 전남 영암군 ‘21영암포럼’에 강사로 초청되기도 했다. 2년 후인 2008년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 서화전을 열기도 했다. 서화전에서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시기에 맞춰 지상 20층, 해저 2~3층 규모의 해상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기본설계까지 마쳤다고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그 전에도 골프장을 준공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산됐고, 2016년 한국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캐피탈 입찰에 김철호 전 회장 아들이 대표로 있는 ‘태양의 도시’라는 회사가 참여했지만 무산됐다. 결국 김철호 전 회장은 사업 재기에 성공하지지 못하고 2017년 10월 14일 악성폐렴으로 사망했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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