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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소를 찾아' 만해 한용운의 마지막 거처, 심우장

조선총독부 안 보려 북향으로 지은 작은 집에서 광복 한 해 전 세상 떠나

2022.07.01(Fri) 09:37:13

[비즈한국] 서울 성북구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옛집이다. 민족대표로 3·1운동에 앞장서고, 일제강점기 타락한 불교 정화에 힘쓰고,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작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게 감동을 선사하던 만해는 꿈에도 바라던 광복을 한 해 남겨놓은 1944년 6월 29일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 

 

만해 한용운이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지은 단출한 한옥 ‘심우장’. ‘심우’란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진리를 찾는 과정을 말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북악산 자락의 북향 한옥

 

만해가 이곳에 심우장을 짓고 이사한 것은 1933년의 일이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에도 독립운동과 불교운동, 작품 활동에 매진하던 때였다. 이런 그를 위해 지인들이 땅과 내놓고 집을 지어준 것이다. 마침 이 무렵 만해는 두 해 전 결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 직후라 지인들의 호의를 고맙게 받았다. 그렇게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단출한 한옥을 짓고 ‘심우장’이라 이름 지었다. 

 

‘심우’란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불교, 특히 참선을 통한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에서는 진리를 찾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했다. 소를 찾는 것은 자신의 본성, 혹은 마음을 찾는 일이다. 만해는 이곳에서 수행을 지속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마음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랐다. 언덕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닿는 심우장에는 만해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만해가 죽을 때까지 쓰던 방에는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친필 문서, 연구 논문집, 옥중 공판 기록 등 여러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심우장을 찾은 사람들은 만해의 명성에 비해 집이 작고 소박한 것에 놀라고, 그 집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 아니라 정반대인 북향을 택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일제가 지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굳이 북향으로 지은 것이다. 한번은 만해가 종로 거리를 걷는데 변절한 육당 최남선이 인사를 건네자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어서 장례까지 치러버렸소”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심우장은 지금도 단출한 모습으로 북쪽을 향해 서 있다. 

 

#내 마음을 찾아가는 심우장길

 

심우장으로 가는 길은 좁은 골목과 계단이 이어지는 언덕길이다. 차는 들어갈 수 없으니 언덕 아래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굽이굽이 헷갈리는 길이지만 중간중간 ‘심우장 가는 길’이라는 표식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가는 길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에는 김광섭 시인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가 보인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는 시구로 시작하는 시는 이 지역이 ‘산동네’임을 알려준다. 이 시는 심우장이 세워지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쓰인 것이니, 만해는 지금처럼 빽빽이 들어선 집들 대신 비둘기와 함께 살았을 것이다. 다시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현판이 붙은 아담한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심우장으로 가는 길은 좁은 골목과 계단이 이어지는데 중간중간 ‘심우장 가는 길’이라는 표식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구완회 제공

 

매표소도 없는 대문을 지나면 마당 한편에 만해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서 있고, 맞은편엔 아담한 심우장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발만 벗고 들어가면 심우장 안까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제일 왼쪽, 만해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이 쓴 또 다른 ‘심우장’ 현판 아래 방은 만해가 죽을 때까지 쓰던 방이다. 이곳에는 만해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친필 문서, 연구 논문집, 옥중 공판 기록 등 여러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심우장에서 사는 동안에도 만해는 독립운동과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38년에는 그가 직접 지도하던 불교 계통 민족투쟁비밀결사단체인 만당사건이 일어나서 많은 후배, 동지가 검거되고 자신도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선일보에 ‘박명’이라는 소설을 연재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 반대운동에 나섰고, 두 해 뒤에는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도 벌였다. 그렇게 광복을 단 1년 앞두고 만해는 심우장에서 눈을 감았다. 

 

만해가 떠난 심우장에는 한동안 그의 딸이 기거하다 ‘만해사상연구회’에 기증해 지금도 그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심우장 대문. 마당 오른편에 만해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서 있다. 사진=성북구청 제공


매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는 만해의 업적을 기리는 다례재가 열린다. 사진=성북구청 제공

 

<여행정보>


심우장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9길 24

△문의: 02-2241-2652

△이용시간: 09:00~18: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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