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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토박이가 느낀 진짜 ‘배신의 정치’

불난 서문시장에서 ‘​박 대통령 파이팅’​이라 환호하는 이들을 보고

2016.12.05(Mon) 13:16:47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할머니께선 명절마다 ‘돔배기(상어고기)’를 산다며 서문시장에 다녀 오셨고, 어머니께선 결혼하시며 서문시장에서 두툼한 이불을 혼수로 맞춰 오셨었다. 이번 서문시장 화재 뉴스를 보는 누군가에겐 ‘지방의 어느 재래시장’이었겠지만, 대구에 살면서 서문시장과 아무런 연이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삼성상회로 사업을 시작한 것도 저 서문시장이니 말 다했지. 그만큼 대구에서 유서가 깊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그런 서문시장에 대형 화재가 났고, 700개가 넘는 소형 상가들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워낙 열악하게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다 보니 가게가 전부인 사람도 많고, 기존에도 몇 차례 화재가 났던 곳이다 보니 보험도 거의 안 들어줬단다. 그래서 이번 화재가 정말 뼈아픈 거고, 하룻밤에 전 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을 했다. 그래도 ‘대구’라고 오신 것 같은데, 금방 언론에 보도될 만한 사진만 찍곤 휙 가버렸다더라고.

 

나도 어쩔 수 없는 대구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저 행동이 그리 납득이 안 가지는 않는다. 위문 차 방문한 거긴 한데,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인 직무수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은 맞지 않나. 그냥 떠났다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도 ​방문하는 일이 전부일지라도, 이런 시국에도 잊지 않고 대구를 찾았다는 점에 마음이 누그러지는 사람도 꽤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정서를 옅게 깔아두고 있는 곳이 대구인데, 나는 박사모가 그날의 현장해서 벌인 행동들을 보고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대통령이 왔다고 화재현장에서 박수치고, 대통령님 힘내라고 응원을 하고 있더라고. 

 

만약 광주의 재래시장에 화재가 나서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갔고, 박사모가 거기서 저런 짓거리를 했으면 상인 대표가 저리 고운 말로 비판을 하진 않았을 테다. 상인대표께서는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에서도 박 대통령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칭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국에서 저 정도의 고운 표현이 나오는 사람이 상인대표를 맡은 곳인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라는 인간들은 거기까지 꾸역꾸역 몰려와서 항의하는 상인들에게 이딴 말을 내뱉었다.

 

“불났는건 불났는기고, 건물은 새로 지면 되잖아.”

“저거는 보험금 타무면 되잖아, 불났는 거.”

 

지역주의에 근거한 불만제기로 읽힐 수도 있고, 기존에 다른 유사한 일들에는 왜 입을 닫고 있었느냐고 하실 수 있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서는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국민 담화에서 항상 말했던 그 18년간의 ‘정치’란 걸 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지지해준 시민들이 있는 곳에, 그것도 대형 화재로 전 재산 날린 사람들이 망연히 있는 곳에 가서 ‘​박 대통령 화이팅’​이라고 박수치는 인간들을 방치한 건 도대체 어떤 경우인가. 정말 너무나 참담한 심경이다. 울분에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상인대표께서 이렇게 얘기를 하지 않나. “불난 집 옆에서 박수치고 이러는 거는, 우리나라 상식에는 이런 상식이 없어요!”

 

‘배신의 정치’가 이런 건가 싶다.​ 

한설 약학을 전공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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