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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살롱 '취향관'에서 만난 '그들이 사는 세상'

학연 지연 아닌 '취향' 중심 클래스…트레바리, 문래당, 문토, 안전가옥 등 다양

2018.12.13(Thu) 14:52:05

[비즈한국] ​요즘 서울에서는 나이와 직업, 성별과 지역을 떠난 커뮤니티, 일종의 사교클럽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사교클럽이라니? 상류층에나 있을 법한 문화 아닌가? 하지만 한창 직장생활을 할 나이인 2545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누구는 호기심에 또 누구는 일상의 새로움으로 사교클럽의 문을 두드린다. 

 

취향관은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살롱이다. 별다른 목적 없이 처음 보는 사람과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사진=취향관 인스타그램

 

# “직업이 뭔가요?”보다 “관심사가 뭔가요?”로 대화​​    

 

“이 근처 살아요. 혼자 사는데 가족이 없으니 퇴근하고 집에 가도 좀 허전하잖아요.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거 말고 다른 게 필요했어요. 그렇다고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낯가림이 있어서 억지스럽게 어울려야 할 것 같은 동호회는 좀 꺼려지더라구요. 뭔가 다른 것을 찾다가 발견한 게 이런 사교클럽이었어요.”

 

회원제 사교클럽인 취향관의 거실에서 만난 한 멤버는 어떻게 오게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별다른 목적 없이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이 취향관이다. 어찌 보면 모호하지만 그 모호함이 의외의 편안함을 준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할 필요 없이 그저 이곳에 온 사람들 사이에서 목적 없는 사교가 이루어진다.  

 

취향관은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살롱이다.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사교클럽을 찾은 이들에게 이곳은, 적어도 누가 누군가에게 말 거는 행위 자체가 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양옥집을 살짝 리모델링한 공간은 잘 꾸며놓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친구 집에 놀러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 외국의 홈파티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봐도 좋고 혹은 한쪽에 따로 마련된 바에서 칵테일이나 차를 마시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도 좋다. 어색할 것 같지만 꽤 자연스럽다. 나이나 직업, 사는 곳 등은 암묵적으로 묻지 않는 분위기다.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서 말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직업을 묻기도 하지만, 보통은 서로의 다채로운 취향을 중심에 두고 대화가 이어가도록 안내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대화가 “집이 어디세요?”나 “무슨 일 하세요?” 혹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등이다. 이런 질문에서 서둘러 공통점을 찾아내고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취향관에서는 상대의 신상보다는 지금 내가 관심을 갖거나 내 생활을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선하다.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직업이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호기심이 일지만, 그런 호기심을 남겨둔 채 대화를 이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보면 관계에서 정작 중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취향관에서는 서로의 신상 파악보다는 지금 내가 관심을 갖거나 내 생활을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대화를 이어간다. 신선하다. 사진=이송이 기자


# 학교공동체, 지역공동체 넘어 이제는 ‘​취향공동체’​​

 

‘청춘인문학’의 저자 정지우 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집단주의적 사회였다. 지역과 정을 기반으로 뭉쳤던 공동체가 산업화를 겪으며 급격히 해체됐고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해졌다. 시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독립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개인성을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외로움과 소외감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개인성을 보장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직업이나 학연, 지연, 종교 등으로 성립된 실용적 관계보다 개인의 취향을 더 우선시하며 삶의 다른 측면을 기반으로 뭉친 관계라는 점이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해외에서 들어온 SNS가 대개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데에 비해 국내에서 발생한 맘카페나 각종 온라인 카페는 커뮤니티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한국인의 연결성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취향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라며 사회가 개인의 다채로운 개성과 취향을 인정하고 다양화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집단적 공동체라는 맥락에서 겉으로는 일반 모임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은 사회적 위치를 떠나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요즘의 커뮤니티들은 전혀 다른 양상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취향공동체’​다.     

 

취향관에는 취향에 관한 다양한 살롱, 말하자면 작은 클래스가 있고 그 안에서 개인의 취향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실험이 진행된다. 스태프나 외부 전문가가 살롱을 주관하는 리더가 되기도 하지만 회원 중 누구라도 언제든 원하는 주제의 살롱을 만들 수 있다. 무비살롱, 음악살롱, 아트살롱, 글쓰기살롱, 사진살롱, 와인살롱 등 회원 8~10명 정도로 다시 구성되는 매일 달라지는 모임 속 모임인 셈이다. 

 

독서모임 사교클럽 트레바리의 청음회. 사진=트레바리 페이스북


취향의 개념은 넓다. 그 어떤 것도 취향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개인의 관심사나 삶의 태도부터 일상의 사소한 일들까지 ‘취향’이라는 단어에 포괄된다. 

 

아지트 개념의 공간을 중심으로 보통 모든 종류의 예술이 망라되는 사교클럽들은 취향관 외에도 다양하다. 인문예술공유지 ‘문래당’, 소셜살롱 ‘문토’, 창작커뮤니티 ‘안전가옥’, 독서모임 ‘트레바리’ 등이 있다. 보통 3개월 단위인 이들의 시즌제 회원 가입 비용은 커뮤니티에 따라 15만~45만 원 선이다. 나만의 아지트를 넘어 우리들의 아지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사교클럽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열어주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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