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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탄력운전'이 뭐길래…시민사회 "전면 재검토하라"

재생에너지 많을 땐 원전 가동 줄여…제논 진동·설비 피로 등 안전성 지적, 경제성도 저하

2026.04.08(Wed) 10:36:12

[비즈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따른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핵발전의 출력 조절, 즉 ‘탄력운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늘어나는 낮 시간대에 원전 출력을 일시적으로 줄여 전력 공급 과잉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탄력운전이 원전의 안전성을 저해하고, 이용률 하락에 따른 경제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한다. 이를 전제로 한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역시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한울 2호기​. 정부가 원전 탄력운전 상시화를 추진하자 시민사회에서 여러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웹사이트


지난 1월 7일 개최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토론회’에서는 원전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탄력운전 기술이 집중 논의되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기저 전원인 원전의 전력 계통 붕괴를 막기 위해 출력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기술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목표는 원전 출력을 50%까지 낮추는 감발 운전을 연간 100회 이상, 시간당 10%p의 속도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예산을 500억 원 이상 투입해 부하 추종 기술 및 제어 시스템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원전이 유연성을 확보할 경우 무탄소 전원 중심의 안정적인 에너지 믹스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수원은 프랑스와 독일의 선례를 통해 탄력운전이 가능함을 입증하려 한다. 프랑스는 전체 발전량의 70%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는 특성상 설계 단계부터 부하 추종 기술을 적용해 운용했다. 신호철 한수원 중앙연구원장은 토론회에서 “한국과 비슷한 가압경수로 원전을 운영하는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수십 년간 원전 탄력운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한국 원전에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4월 7일 국회소통관에서 정혜경 국회의원(가운데)과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이 탄력운전 정책을 규탄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민호 기자


이에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4월 7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과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력운전의 안전성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이들은 원전이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기저부하용 전원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잦은 출력 변동이 원자로 내부의 물리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적 우려는 ‘제논 진동(Xenon Oscillation)’ 현상이다.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 결과물로 생성되는 제논은 중성자를 강하게 흡수하는 특성이 있다. 출력을 급격히 변화시키면 제논의 농도가 불균형하게 분포되는데, 이는 원자로 제어의 난이도를 높이고 국부적인 과출력을 발생시켜 핵연료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석탄·가스발전은 분 단위로 출력을 조절하는 반면, 핵발전은 시간 단위 조절에 그쳐 성능 격차가 크다”며 “급격한 출력 변화는 제논 독성 등 안전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안전 규제 전반의 문제”라고 짚었다.

 

설비의 물리적 피로 누적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출력 변화는 배관과 원자로 용기에 기계적인 응력을 발생시켜 장기적으로 미세 균열이나 금속 피로를 유발해 설비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성 저하 문제 역시 핵심 쟁점이다. 원전은 건설비가 높고 연료비가 낮다는 구조적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용률을 극대화해야 발전 단가를 낮출 수 있다. 만약 탄력운전 도입으로 원전 이용률이 80%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면, 이는 곧 균등화 발전원가(LCOE)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시민단체들은 이용률이 하락한 원전이 과연 경제적인 발전원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재생에너지를 보완하기 위해 원전을 멈춰 세우는 행위 자체가 원전의 경제적 효용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원전이 저렴한 에너지라는 논리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신규 원전 건설의 명분도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탄력운전 시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기금이나 전기요금 인상 압박 또한 국민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내부 문건 ‘원자력 탄력운전 주요 이슈 정리’는 정부 내부에서도 탄력운전의 현실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건에 따르면 기후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는 특정 시간대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출력을 20% 수준까지 대폭 낮추는 ‘-80% 감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수원이 목표로 하는 50% 감발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준의 탄력운전이 동반될 경우 안전성 확보가 극히 어려워지며, 연간 200회 이상의 출력 변동은 설비 수명을 치명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민사회는 탄력운전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긴 신규 원전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무탄소 에너지 믹스를 구성함에 있어 원전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는, ESS(에너지저장장치) 확충과 지능형 전력망 구축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전 탄력운전을 둘러싼 논란은 신규 핵발전소 건립과 향후 수립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혜경 의원은 “탄력운전은 핵발전이 저렴한 발전원이라는 전제를 흔들고, 이용률 저하로 인한 손실을 결국 국민 전기요금 부담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와 한수원 모두 안전성과 경제성을 국민에게 약속할 수 없다면, 핵발전 탄력운전 정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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