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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피 땀 눈물] ① 70일간 '새로고침'…무한 대기 '취케팅'의 역설

취소표 운영 불투명, 24시간 확인해야…매크로엔 '기회' 인간에겐 '족쇄'일까

2026.04.08(Wed) 17:51:44

[비즈한국] 전 세계가 K팝의 성취에 열광하고 있지만, 이 거대한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인 팬들이 마주치는 현실은 그리 눈부시지 않다. K팝 산업은 팬덤 경제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팬들의 구매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인 팬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애정이라는 명분 아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K팝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지 않은 공연 산업의 관행과 문제점을 이용자 권익 관점에서 짚어본다.  


2년 반 가까이 방탄소년단(BTS)을 ‘덕질’ 중인 황하린 씨는 최근 수개월간 정부 기관과 국회 문을 두드렸다. 황 씨는 BTS 글로벌 투어 ‘아리랑’의 국내 콘서트 예매처 ‘놀티켓’을 시작으로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취소 티켓 재판매 운영 구조에 관한 민원을 잇달아 제기했다. K팝의 글로벌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그 산업을 지탱하는 팬들은 왜 ‘무한 새로고침’의 감옥에 갇혀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다. 

예매 플랫폼의 취소표 판매 방식이 팬들의 일상권을 침해하고 매크로 업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며 예매 플랫폼과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운영 정보 공개 및 공정한 배분 방식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70여 일간 ‘취케팅’을 하고 있는 황하린 씨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 하루에 4시간 이상씩 모니터 앞을 지켰다. 사진=강은경 기자


#쉼 없는 ‘취케팅’…‘포도알’이 일상 삼켰다

 

황 씨는 지난 1월 22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노트북 화면을 지켜봤다. BTS 아리랑 월드투어 고양 공연(4월 9일·11일·12일)의 취소표를 잡기 위해서다. 평균 3~4시간씩, 주말이나 일정이 없는 날에는 10시간 이상 화면 앞을 지켰다. 식사를 건너뛰고, 수면과 약속을 미루며 버텼지만 70일 넘게 성공하지 못했다. 6일 기자와 만난 황 씨는 “최대한 일과 가정, 일상에 영향이 없도록 하다 보니 늘 지치고 피곤한 상태”라고 말했다. 

공연일을 앞둔 K팝 팬들에게 이른바 ‘취케팅(취소표+티켓팅)’​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이미 매진된 공연이라도 누군가 예매를 취소하기 마련인데, 그 자리가 다시 예매창에 나타날 때를 기다려 선점하는 것이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일명 ‘포도알’로 불리는 구매 가능한 좌석이 활성화될 때 재빠르게 클릭해 결제창으로 넘어가면 성공이다. 이 포도알을 잡기 위해 예매 희망자들은 기약 없는 전쟁을 벌인다. 

놀티켓 예매창구에서는 무작위로 인증을 요구하는 팝업이 노출된다. 사진=놀티켓 예매창 캡처


기자가 4월 7~8일 직접 취케팅을 시도해봤다. 오는 9일 개최되는 BTS 월드 투어 ‘아리랑’ 공연의 경우, 예매창에 접속하자 1만 번 대의 대기 순서와 예매율 99%가 화면에 표시됐다. 부정예매 방지를 위한 보안문자를 입력하고 좌석 배치도 창에 진입한 뒤부터는 구역을 바꿔가며 좌석이 업데이트되는지 무한 반복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 같은 방식은 NOL 티켓(인터파크트리플), 멜론티켓, 예스24 등 예매 플랫폼 전반에서 작동하고 있다. 공연일이 임박한 멜론티켓의 엔시티 위시 콘서트, 예스24의 더보이즈 콘서트 예매 화면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놀티켓에서는 중간중간 마우스로 퍼즐 조각을 끌어다 맞추는 팝업창 인증 절차도 함께 요구된다. 

황 씨는 취소 티켓 재판매 운영 방식과 관련해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핵심은 운영의 불투명성이다. 그는 취케팅을 벌이던 70일 동안 단순히 자신이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플랫폼별, 공연별로 취소표가 풀리는 시간이 상이한 건 물론이고, 공식적으로 공지된 기준 자체가 없다. 그러니 틈날 때마다 들어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는 직장인이나 학생 등 일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인구를 예매 시장에서 원천 배제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K팝 팬덤 내에서 취케팅은 티켓 예매에 실패한 일부 낙오자가 시도하는 보완 수단이라기보다 예매 프로세스의 ‘2차 라운드’로 기능한다. 인기 그룹 공연의 경우 수요 대비 좌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여기에 매크로 및 리셀러까지 개입해 초기 물량이 빠르게 소진된다. ‘올콘(콘서트 전 회차 참석)’에 대한 열의가 큰 팬덤 문화 속에서 취케팅은 사실상 팬덤 전반이 공유하는 관행에 가깝다.

지난해 6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25 마이케이 페스타(MyK FESTA) K팝 콘서트 현장.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K팝 팬덤 사이에서는 취케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험담이 심심치않게 공유된다. “끝 없는 대기에 손목이 나갔다”거나 “어깨와 목 결림, 손가락 저림이 심하다”는 신체적 문제부터, 수면과 일상에 지장이 생겼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취소표 판매와 관련해 플랫폼들이 제공하는 공식 정보는 거의 없는 반면 소비자들이 직접 패턴을 역추적해 ‘비공식 팁’을 공유하는 모습 역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임의 방출’ 오히려 ‘봇’에게 유리한 환경”

 

황 씨는 지난 2월부터 NOL 티켓(놀유니버스) 고객센터, 한국소비자원,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순차적으로 민원과 시민의견서를 제출했다. 취소표 판매 관련 정보 공개 등 불투명성을 개선해달라는 취지다. 그는 놀티켓 고객센터에 취소표 재판매 정책을 문의했으나, 4일 뒤 “내부 운영 방침으로 상세 안내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질의에서도 동일하게 회신 받았다. 

이어 지난달 1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접수했고, 같은 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시민의견서를 제출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법은 상품 정보 제공, 청약철회, 대금환불 등을 통해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며 “이 건과 같이 판매일시 등 사업자의 운영 정책에 대해서는 전자상거래법으로 규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황 씨가 국회에 요구하는 내용은 △취소표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재판매되는지 소비자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정보 공개 의무화 △​공정한 배분 방식의 업계 표준 도입 권고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별도 접근 방법 마련 등이다.

예스24와 멜론티켓은 취소표 재판매를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예매시스템에서 취소된 티켓을 다른 이용자가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이다. 사진=예스24 예매창 캡처


#‘못’ 하나 ‘안’ 하나…대안은 없나

 

국내 주요 예매 플랫폼들의 취소표 운영 방식은 상이하다. 무작위 재노출 방식을 적용하는 놀티켓과 달리, 예스24와 멜론티켓은 실시간 반영되는 형태다. ‘취소표 재판매’라는 별도 단계 없이 예매시스템에서 취소돼 다른 예매자가 구매할 수 있다. 

 

놀유니버스 관계자는 “취소 처리된 티켓이 발생하는 경우 임의의 시간이 지난 후 판매한다. 이는 취소를 통한 개인 간의 불법적인 티켓 양수도를 막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또 “놀티켓 관련 부정예매, 암표 거래 등을 막기 위한 정책과 기술적 장치들을 도입하고 지속적으로 고도화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스24 관계자는 “다만 무통장 입금 미이행으로 취소된 좌석은 입금 마감 시간 이후 시스템 자동 로직에 따라 일괄 판매석으로 전환된다”며 “기획사의 특별한 요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취소 좌석은 인위적인 개입 없이 시스템에 따라 실시간으로 판매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멜론티켓도 취소표 처리에 관한 정책은 기획사가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멜론티켓 관계자는 “비정상적 예매 시도 및 기술적 조치에 대한 우회 우려로 상세한 내용은 공개가 어렵다”며 “취소표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편의성을 향상할 수 있는 예매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대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랜덤 방출 방식이 오히려 매크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는 의구심도 터져나온다. 자동화 프로그램은 밀리초 단위로 반응하며 24시간 연속 작동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취소 티켓 재노출 시점이 예측 불가능할수록 인간의 성공 확률은 낮아진다는 논리다. 

 

중국 등 해외 암표 사이트에는 예매창이 열린 직후 VIP석 등 우량 좌석의 리스트가 대거 올라오기도 한다. BTS 공연도 예외는 아닌데 실제로 1일차 공연 전날인 8일, 티켓 취소 기한인 오후 5시를 한 시간 남짓 앞두고 고가의 VIP석 취소표가 무더기로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물량은 암표 사이트에서 구매자를 찾지 못한 리셀러들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티켓을 내던지는 ‘손절매’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매크로의 영향이 다소 과장됐다는 항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암표상들이 올리는 글 중에는 실제 티켓이 없는 ‘블러핑(거짓 티켓)’도 섞여 있다. ‘중국 해커들이 싹쓸이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 파악해보면 공연별로 상이하지만 외국인 예매자 중 중국인은 전체의 4분의 1 이하 수준”이라고 밝혔다. 매크로를 사용하는 부정 예매자 측의 기술도 고도화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나 매크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매크로가 유발하는 트래픽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면서 서버를 확충하는 것보다 잡아내는 것이 비용 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기회비용을 따지고서도 시간을 쓰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일 수 있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인기 공연에서 경쟁이 불가피한 것도 현실이지만 이용자 편의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북미 플랫폼인 티켓마스터 등은 가상 대기열이나 공식 리셀 마켓 등을 운영하고, 일본 공연 시장에서는 추첨제가 일반적이다. 다만 티켓마스터는 독점 및 가격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일본 추첨제는 좌석 선택권이 없어 현지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 또 국내 환불 규정이 소비자에게 유리한 법적 특수성이 있어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소비자의 상시 대기 부담을 덜고 예매 기회를 더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측면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3일 금요일 놀티켓은 오후 2시부터 약 6시간 동안 판매를 일시 중단한 뒤, 저녁 8시에 취소 티켓을 일괄 오픈했다. 사전에 공지한 덕분에 팬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 대신 약속된 시간에 맞춰 접속할 수 있었다. 황 씨 역시 이날 시야 제한석 예매에 성공했다. 이는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황 씨는 이 같은 방식이 오히려 플랫폼에도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4시간 분산된 트래픽을 특정 시간대에 집중시키는 대신 그 시간에 자원을 집중하면 매크로 탐지 효율도 오른다는 것이다. 

 

플랫폼 운영사로서는 취소표가 풀리는 시간을 사전 안내하는 일괄 방출 방식이 오히려 매크로 업자들에게 공격 지점을 명확히 해주는 역효과를 낳지는 않을지 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취소표를 모아서 내는 방식은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티켓이 판매 중인 상황에서 갑자기 방출 방식을 변경할 경우 시스템 안정성 문제 등도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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