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고 난 후, 이 칼럼에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러 사람이 애써 만든 작품에 이러쿵저러쿵 안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 건 유쾌하지 못한 노릇이다. 이 작품은 보는 내내 의아함과 함께 화를 불러 일으켰고, 칼럼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번복한 건, 그럼에도 부득불 12회를 이틀에 걸쳐 정주행 할 만큼의 ‘무언가’는 있다고 판단되어서. 더 정확히 이실직고하자면, 이 작품으로 새삼 김선호에 반했기에 그의 노력을 헛되이 만들 수 없다는 미약한 팬심 때문이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이사통)는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이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의 통역을 맡게 되면서 펼쳐지는 예측불가 로맨틱 코미디다. 주호진과 차무희의 만남은 ‘흑역사’로 시작한다. 스타가 되기 이전의 차무희가, 바람난 남자친구를 찾으러 일본에 갔다 주호진을 만나고 호진은 어쩌다 무희의 그 구구절절한 사연을 통역해주게 된다. 호진 역시 무희를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란 생각에, 일본을 찾은 이유가 오랜 짝사랑 때문이란 걸 털어놓는다. 흔한 이야기다. 낯선 곳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오히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말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들은 다시 얽히게 된다.
호진이 무희를 다시 만났을 때, 차무희의 환경은 완전히 변해 있다. 무명 배우였던 무희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좀비 영화를 촬영했는데, 마지막 촬영에서 와이어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6개월간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다 깨어난 것. 그리고 그 6개월 사이 차무희의 영화 캐릭터 ‘도라미’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말 그대로 무희는 자고 일어나니 글로벌 톱스타가 되어있었다. 달콤한 성공에 적응하기도 얼떨떨한데, 어쩐 일인지 무희는 현실에서 자꾸 도라미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 환영에 짓눌리는 와중에 여러 나라를 오가며 촬영하는 리얼리티 연애 예능 프로그램으로 주호진을 다시 만나게 되고, 또 어쩌다 보니 그와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사실 무희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 첫 만남부터 자신을 도와줬던 호진에게 호감을 가졌다. 다시 만나고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는 점점 더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호진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많은 외국어에 능통하지만 차무희가 하는 언어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부인한 채 애써 밀어내기 급급하다. 정작 호진이 직진 신호를 켜자, 사랑받지 못한다는 오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무희가 그를 밀어내고. 복잡한 가정사 등으로 사랑에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은 과연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이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설레고 쫄깃하게 그려내냐가 이 드라마의 관건인 셈이다.
사실 ‘이사통’은 흥행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작품이다. 김선호와 고윤정이라는 보기 좋은 비주얼 케미에,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라는 드높은 명성에, 일본과 캐나다와 이탈리아를 아우르는 화려한 로케이션이 더해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니. 안 볼 재간이 있겠나? 그런데··· 이상하다. 드라마의 개연성 따윈 개나 주라는 요즘 드라마의 파격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홍자매인데 이런 개연성은 이상하다. 중반부 넘어 마지막 회까지 본 건, (김선호에 대한 애정을 제외하면)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다. 벌려 놓은 저 설정들을 어떻게 주워담는지 보자 하는 오기.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도라미의 환영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설정이다. 호진과 무희의 러브 스토리가 주된 이야기지만, 어릴 적부터 큰집에서 눈칫밥 먹고 자라며 온갖 불행서사를 안고 있는 차무희가 도라미를 보게 되는 이유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곧 사랑이란 감정을 올곧이 마주하는 것과 직결돼 있기 때문. 그런데 그 도라미를 그렇게 얼레벌레 치워버리고 뭉개 버린다고? 한국 드라마 특유의 ‘막판에 모든 것을 얼레벌레 주워담기’와는 또 다르다. 뭉개 버린 그 설정의 디테일조차 하나같이 왜 그렇게 설정한 건지 한 줄 설명도 없어 납득을 못 시키기 때문. 홍자매에게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소통의 오류로 지루하게 엇갈렸다 다시 만나는 로맨스 장르의 클리셰들도 그렇고, 러브 스토리에 긴장감을 형성하거나 혹은 다채로움을 부여해야 할 서브 캐릭터들의 활용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무희의 파트너로 나오는 ‘열도의 로맨스 왕자’ 쿠로사와 히로(후쿠시 소타)는, 긴장감은 없지만 그럭저럭 제 역할을 한다 치자. 호진의 오랜 짝사랑 상대이자 프로그램의 PD인 신지선(이이담)의 존재와 서사는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를 늘리는 배경 외에는 역할하지 못하며, 지선과 차무희 매니저 김용우(최우성)의 갑작스러운 로맨스 또한 12회를 채우기 위한 소모적 이야기로 여겨질 뿐이다. 사랑에 적극적이지 못한 호진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어머니(최희진)와의 오랜 관계 단절이 맥없이 풀어지는 건 또 얼마나 실소를 자아냈는지.
자, 그럼에도 (순전한 오기를 제외하고)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이유는 주연 배우의 호연에 있다. 고윤정의 눈부신 외모와 매력은 화려한 톱스타 차무희와 무리 없이 어우러지며 탄성을 자아낸다. ‘인간 샤넬’이라 할 만한 극 중의 블링블링한 패션도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선호. 통역사라는 직업에 너무나 어울리는 신뢰감 있는 깊은 저음의 목소리가 시청자들을 홀린다. 진심이 느껴지는 다정한 눈빛과 부드러운 표정에 또 한 번 치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나마 납득시키는 건 김선호의 목소리와 눈빛이다.
드라마를 보게 되는 마지막 이유는 여행 욕구를 치솟게 만드는 로케이션지의 아름다운 풍광. 에노시마에서 한눈에 잡히던 후지산 뷰나 캐나다 밴프 애비뉴에서 화보처럼 펼쳐진 캐스케이드 산 뷰는 압도적이다. 그 외에도 로키산맥의 명소 중 하나인 재스퍼 국립공원의 멀린 호수며, 가을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캘거리의 헤리티지 파크, 로맨틱한 감성을 도와주는 이탈리아 시에나 캄포 광장 등 어느 곳 하나 멋지지 않은 곳이 없다. 아마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었다면 ‘여행 대체 소장각’일 것이 분명하다.
뭐, 내가 이러쿵저러쿵 한들, 이미 드라마 공개 이후 숫자들은 성공작이라 할 만하다.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V 부문 2위, 전 세계 76개국 TOP 10 진입,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국가 1위 석권 등등. 하지만 모두가 알 듯, 넷플릭스 공개 작품의 성적과 화제성이 꼭 작품의 퀄리티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부디 홍자매가 이 성적들에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홍자매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거두기엔 과거 즐겼던 전작들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으니, 다음 작품에 희망을 걸어보련다.
별점 ★★☆
부드럽게 치이는 김선호의 매력에 별 하나, 아름다운 풍광에 또 별 하나. 원래도 예쁜 고윤정에겐 별 반 개.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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