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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기술 우선' AR 드론으로 패러다임 바꾼 '패롯'

음성인식 기능에서 시작해 드론으로 진출…중국업체에 밀리다가 미-중 갈등으로 '기사회생'

2019.06.07(Fri) 17:41:03

[비즈한국] 앙리 세이두는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뒤로하고 1994년 테크 업계로 돌아와 ‘패롯(Parrot)’을 창업한다(관련기사 [유럽스타트업열전] '본드걸' 레아 세이두와 '패롯' 창업자의 관계는?). 

 

당시 패롯은 지금과 같은 드론 회사가 아니었다. 앙리가 당시 관심을 가진 기술은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였다. 패롯 설립 이듬해에 ‘보이스메이트(VoiceMate)’라고 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 기능을 갖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를 내놓는다. 이 기기는 가수 스티비 원더가 애용하는 등 잠시 주목을 끌었으나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2015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마크롱 당시 프랑스 경제장관(가운데)이 패롯 부스에 들러 앙리 세이두(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모바일 기기에 관심이 많았던 앙리의 다음 관심사는 블루투스였다. 블루투스 기술은 1994년 에릭슨의 사내 프로젝트로 출발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참여하는 업체들도 많지 않았다. 이 기술에 매력을 느낀 앙리 세이두는 2000년에 에릭슨과 함께 블루투스 단말기를 이용해 자동차를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세상에 선보인다. 007 제임스 본드의 현실판이었다. 이 역시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앙리는 개의치 않고 블루투스를 비롯한 무선 단거리 통신 기술에 계속 투자한다. ​

 

돈 버는 데에는 크게 관심 없던 테크 기업 패롯은 2000년대 초의 닷컴 버블 붕괴로 반전을 이룬다. 경쟁사들이 모두 쓰러지는 바람에 갈 곳 없는 유능한 개발자들을 싹쓸이하게 된 것. 이후 사업 아이템이라기보다는 창업자의 취미에 가까웠던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바일 기기의 증가세와 맞물려 수요가 급증했다. 패롯은 불과 4년 만에 20배 이상 성장해 매출이 2억 유로에 달하는 중견 테크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돈 안 되는 자동차 원격 조종 기술에 매달리던 앙리 세이두가 본격적으로 드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7년에 이르러서였다. 

 

회사가 성장하는 와중에 앙리는 잠시 머리를 식히러 파리 시내의 산업디자인박물관을 찾았다. 거기서 1907년 프랑스 기술자들이 개발해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로타리 윙 방식의 쿼드콥터(Quadcopter) 브레그-리쉐 자이로플레인(Breguet-Richet Gyroplane)을 발견한다. 4개의 로터를 이용한 비행체가 100년 전에 이미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그동안 몰두해온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자동차를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드론에 적용할 결심을 한다. 전 세계 드론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꾼 ‘AR 드론’은 이렇게 탄생했다. 

 

1907년 프랑스 기술자들이 개발해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로타리 윙 방식의 쿼드콥터(Quadcopter) 브레그-리쉐 자이로플레인(Breguet-Richet Gyroplane).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AR 드론은 2010년 미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첫선을 보인 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여러모로 드론의 역사를 바꾼 제품으로 평가된다. 이전에도 쿼드콥터 형태의 소형 상업용 드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 누구나 간편하게 드론 조종법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은 패롯이 처음이었다. 오픈 API를 통해 개발 플랫폼을 배포해 개발자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드론을 활용하는 다양한 응용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 것 또한 주효했다. 

 

AR 드론은 50만 대가 넘게 팔려 드론 대중화에 큰 획을 그었다. 동시에 ‘누구나 조종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 비행체’에 대해서도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인 정보에 민감한 독일에서는 개인용 드론에 카메라 장착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영국에서는 버킹엄 궁전 정원에 드론이 착륙해 왕실을 엿보는 설정의 광고가 제작되었으나, 불법 사용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방영 금지되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이 상업용 드론 사용에 규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2011년 세계는 드론의 또 다른 가능성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미국의 독립 언론인 팀 풀(Tim Pool)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패롯의 AR 드론을 활용해 유튜브와 SNS를 통해 생중계한 것. 그의 동영상은 로이터, 가디언, 뉴욕타임스와 알자지라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에 공개되어 모바일 저널리즘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스마트폰과 드론만 있으면 사건 현장의 생생한 영상을 전 세계로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패롯은 2012년 스위스의 드론 회사 SenseFly와 동영상 기술회사 Pix4D를 인수하며 기술력을 확장한다. 후발주자들이 쿼드콥터 형태의 드론을 더 싸게 내놓으려 경쟁하는 동안 롤링스파이더, 점핑스모 등 전혀 새로운 개념의 드론을 선보이며 이들을 멀찍이 따돌린다. 

 

패롯이 승승장구만을 거듭한 것은 물론 아니다. 2015년 이후 DJI를 비롯한 중국의 드론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넘어 월등한 기술력으로 상업용·취미용 드론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 사이 패롯은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만을 고집하는 창업자의 독선에 휘둘려,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제때 선보이지 못했다. 가령 풀 HD 영상 지원은 항공 촬영 위주인 취미용 드론 시장에서 경쟁사들이 먼저 선보이고 패롯의 골수 팬들도 꾸준히 요구하고 있으나, 앙리 세이두는 시장과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2016년에 앙리가 야심차게 선보인 패롯 디스코는 쿼드콥터가 아닌 고정익 형태에 일인칭 시점의 FPV(First Person View)를 도입해 취미용 드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장의 판매량은 예상에 크게 못 미쳤고 경영악화와 재정난으로 인해 900명에 이른 직원의 3분의 1 가까이를 내보내야 했다. 

 

점점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격차를 벌려 나가는 DJI를 비롯한 중국계 드론 업체에 맞서 패롯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커지던 2019년 5월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난다. 미 국방성이 군사 목적의 단거리 감시용 드론(Short-range reconnaissance aircraft) 개발 프로그램 협력사로 6개 회사를 선정했는데 유럽계로는 유일하게 패롯이 포함된 것이다. 물론 현재 드론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누구나 조종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 비행체’ AR 드론은 50만 대가 넘게 팔려 드론 대중화에 큰 획을 그었다. 사진=패롯 홈페이지

 

상업용·취미용 드론 시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드론 시장의 70% 이상은 아직도 군사용이 차지한다. 상업용과 취미용은 17%와 13% 정도다. 그동안 취미용 시장에서도 소비자를 겨냥하기보다 열성 팬들이 깜짝 놀랄 만한 신기술을 즐겨 선보였던 패롯이 군사용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가 뭘까? 미-중 패권 다툼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일까? 창업자의 성향으로 보아 그뿐만은 아닐 듯하지만,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아침 드라마를 보듯 매번 땀을 쥐는 반전을 선사하는 패롯과 창업자 앙리 세이두의 스토리는 물론 그의 개성과 배경에서 기인할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기존에 있는 뭔가를 더 잘 만들기 위해 일한 적이 없다. 완전히 새로이,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을 때 나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CEO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가 매번 돈 안 되는 새로운 기술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천재성뿐 아니라 재벌가 장남이라는 든든한 배경 덕분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극도로 사이가 안 좋아 승계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창업의 길을 선택한 결과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으니, 인류를 위해서는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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