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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간호사 '태움'을 막을 수 있을까

현장 "실효성 없을 것" 한 목소리…신규 간호사 교육체계 재정립·인력 충원 '절실'

2019.07.18(Thu) 16:24:25

[비즈한국]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좋죠. 그런데 이 법이 병원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해결이 안 된 채로 있잖아요. 결국 ‘태움(병원 내 집단 괴롭힘)’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죠.”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속 최원영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태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원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2년째 근무 중인 간호사 김 아무개 씨도 “시행되기 전에도 딱히 변화는 없었고 앞으로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지난해 내과 병동에 신규 간호사가 6명 들어왔는데 지금은 1명 남았다. 다들 태움 혹은 일이 힘들어서 그만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 법은 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건을 계기로 태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제정됐다. 앞으로 10명 이상이 일하는 사업장은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관한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간호사들은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직원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방지하자는 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이 법으로 태움 악습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 인력난 해결 못하면 고스란히 환자 피해로 연결

 

태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개인 사이의 문제’보다는 인력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신규 간호사들이 입사해 병동에 배치되면, 교육 전담 간호사들이 아닌 각 병동의 3~4년 연차의 간호사가 ‘프리셉터(Preceptor·지도 교사)’로 지정돼 신규 간호사들을 교육한다. 보통 병원에서 프리셉터에게 10만 원 정도의 수당을 지급한다. 교육 기간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대개 한두 달이다. 경력 간호사는 본인의 기존 업무를 하면서 신규 간호사의 교육까지 떠맡는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가중되고 스트레스가 쌓여 신규 간호사들을 괴롭히는 악습이 반복된다.

 

전진한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은 “경력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를 가르칠 여유가 없다. 태움 가해자에게 잘못이 없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지만, 지금은 경력 간호사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대구의 한 대형병원에 입사한 지 5개월 된 간호사 A 씨는 “다른 중환자실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들어가서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경력 간호사들이 소문을 내고 두고두고 혼낸다고 들었다. 중환자실에 배치됐던 동기는 퇴사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피해가 환자에게로 향한다는 점이다. 경력 간호사들이 고의로 혹은 피치 못하게 신규 간호사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일을 습득하지 못한 신규 간호사들이 실무에 투입된다. 이 과정에서 일에 부담을 느끼는 신규 간호사들의 이직과 퇴사가 잦아져 업무에 공백이 생긴다. 2016년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이직률은 38.1%에 달하며, 심지어 매년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간호학회 조사에 따르면 입원환자 사망의 6~7%는 환자를 돌보는 적정 수의 간호사가 확보되지 않아서 발생했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1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사망률이 8%씩 늘었다.

 

태움 피해자는 보통 신규 간호사이지만 경력 간호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간호사들은 각 병원의 병원장이나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병동을 옮기게 되는데, 이때 경력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적응 기간은 3~6일이다. 병동별로 사용하는 의료기기나 약품이 놓인 장소가 모두 다른데 이를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익혀야 한다. 경력 간호사가 제대로 일하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시선은 더욱더 따갑다고 한다.

 

간호사 인력난으로 발생하는 태움을 줄이지 못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병원 수술실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비즈한국DB


# 신규 간호사 교육체계 재정비 ‘시급’

 

따라서 간호사들의 태움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병원에서 간호 인력을 더욱 늘려 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전담하는 경력 간호사가 돌봐야 하는 환자 수를 대폭 줄여도 무리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환자당 중환자실 간호사 비율을 1 대 2로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규정이 아예 없다.

 

신규 간호사의 교육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해 신규 간호사의 이직 혹은 퇴사로 생기는 업무 공백을 막자는 이야기다. 앞서의 간호사 A 씨는 “간호사 일을 시작한 후 5개월 동안 로테이션이 두 번이나 이뤄졌다. 그런데 처음 병동은 4주, 그다음 병동은 2주의 교육 기간을 줬다”며 “그런데 이 기간에 신규 간호사는 절대로 일을 습득할 수 없다. 다른 병원은 교육 기간을 3개월까지 둔다는데 모든 병원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간호등급제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는다. 간호등급제는 간호 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기본진료비 중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최하 등급인 7등급을 받아도 병원이 받는 불이익은 없다. 아울러 각 병원이 간호사들의 고충을 진정으로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전진한 정책위원은 “병원 중 95%가 민간병원인데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익을 늘리려고 의료기기를 들이고 병상만 늘린다. 이 돈으로 간호사를 좀 더 고용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했다.

 

정부가 현장의 간호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좀 더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교육 전담 간호사를 확충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간호사들은 실무보다는 일반적인 업무에 필요한 일만을 가르친다. 모든 병동의 간호사가 모여 ‘병원에서 준수해야 할 일’을 배우는 식이다. 최원영 간호사는 “간호정책을 맡는 보건복지부 간호정책 태스크포스(TF)팀이 꾸려졌지만 실무자가 3명뿐이다”며 “단계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지만 더딜수록 희생자는 더 많아진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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