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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하와이 마우나케아, 원주민 성지인가 천문학 성지인가

천문대 가득 찬 마우나케아 산에 대형 망원경 추가 건설 계획에 원주민들 반발

2019.08.05(Mon) 11:51:09

[비즈한국] 며칠 전 하와이 빅 아일랜드 정상에 설치된 천문대에서 근무하던 전 세계 천문학자들에게 비상 대피령이 내려졌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거센 시위 때문이었다. 대체 왜 하와이 원주민들은 천문학자들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또 원주민과 천문학자들의 갈등은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로 올라가는 도로를 막고 있는 원주민 시위대. 현재 이들이 도로를 점거하면서 망원경 건설을 위한 공사 차량과 관측 업무를 위한 천문학자들의 출퇴근 차량 역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사진=Pu’uhonua o Pu’uhuluhulu


북반구의 하와이, 남반구의 칠레. 이렇게 두 곳은 구름보다 더 높이 산이 솟아 있는 지역으로 비교적 대기 현상의 방해를 덜 받고 지상에서 밤하늘을 가장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함께 협력해 활용하는 연구 시설이 운용되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 밤하늘을 하나씩 맡아서 둥근 지구를 둘러싼 우주 전체를 쉬지 않고 관측한다. 

 

하와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닷가 해변이 펼쳐진 휴양지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천문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망원경이 서 있는 마우나케아(Mauna Kea) 천문대를 먼저 떠올린다. 마우나케아라는 이름은 하와이 말로 ‘하얀 산’이라는 뜻으로 매년 겨울이 되면 새하얀 눈으로 덮이는 높은 산의 모습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하와이가 미국의 주로 편입된 지 9년 뒤인 1968년 미국의 국 자원 및 토지 위원회 (BLNR, Board of Land and Natural Resources)는 마우나케아 정상 주변의 토지를 하와이대학교에 임대했다. 1970년 이곳에 네 개의 대형 천문대 건설 계획이 발표되며 천문학 성지로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1] 

 

마우나케아 관측소의 전경. 현재 하와이 마우나케아에는 영국, 캐나다 등에서 운용하는 제미니 노스 망원경(Gemini North Telescope)과 한중일 등이 관리하는 제임스 클러크 멕스웰 망원경(JCMT, James Clerk Maxwell Telescope), 일본의 지름 8.2미터짜리 스바루 망원경(Subaru Telescope), 세계에서 가장 큰 쌍둥이 켁 망원경(Keck I & II Telescope) 등 11개국에서 관리하는 총 13개의 대형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Maunakea Summit


마우나케아 관측소에 설치된 망원경들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이미 정상에 다양한 대형 망원경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미지=Maunakea Science Reserve Master plan

 

하지만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마우나케아산 정상은 기독교의 에덴동산과 같은 우주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성지다. 대지의 신 파파하나모우쿠(Papahānaumoku)와 하늘의 신 와케아(Wākea)가 만나 사랑을 나누며 우주를 만들어낸 지역으로 전해진다. 또 천문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거의 방문하지 않았던 마우나케아에는 그 지역만의 생태계와 천연자원들이 많이 있었다.[2]

 

1970년대 초 천문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부터 많은 하와이 원주민들이 대형 천문대가 건설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많은 미국·유럽의 천문학자들은 하와이 원주민들의 염려와 의견을 듣고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1974년 간담회에서 하와이 원주민들은 마우나케아에 대형 망원경을 총 여섯 개까지만 건설해달라고 제안했다. 이후 훨씬 더 많은 대형 망원경 건설이 논의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당시 천문학자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1970년대 초 무사히 마우나케아 천문대 건설의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현대 천문학에서 더 먼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새로운 대형 망원경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하와이 원주민과 천문학자 사이의 갈등이 더 극렬해졌다. 

 

1980년대 초 천문학자들은 캐나다-프랑스-하와이 망원경 환경영향 평가 보고서(CFHT EIS, Canada-France-Hawaii Telescope Environment Impact Statement)를 통해 2000년까지 총 13개의 천문대를 마우나케아에 건설할 것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앞서 하와이 원주민들이 제안했던 여섯 개를 훨씬 넘는 숫자였다. 게다가 이 평가 보고서가 작성되고 논의되는 과정에서 하와이 원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단순히 공사 예정 지역에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었는지 정도만 논의되었다.[3]

 

마우나케아는 고도가 아주 높기 때문에 비교적 지구 대기권과 기상 현상의 방해를 덜 받는 최적의 관측지로 꼽힌다. 별로 가득한 밤하늘 아래 마우나케아 천문대 망원경들이 서 있다. 오른쪽에 있는 둥근 돔 두 개가 켁 망원경이고 그 왼쪽에 있는 원통 모양의 돔이 스바루 망원경이다. 사진=Maunakea Summit


결국 1990년대 후반까지 기존에 있던 네 개의 천문대에 추가로 여섯 개의 천문대가 건설되면서 천문대는 총 열 개가 되었다. 지름 10미터짜리 거대한 반사 망원경이 자리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켁 망원경(Keck Telescope)도 바로 이때 지어졌다. 1985년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이후 첫 번째 켁 망원경은 1993년에, 두 번째 켁 망원경은 1996년에 완공되었다. 이런 건설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일부 하와이 원주민들의 묘가 이장되기도 했다. 자신들의 생활 터전과 역사적 성지가 침해를 당한다고 생각한 하와이 원주민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천문대의 추가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었다. 

 

더 멀고 더 넓은 우주를 관측하겠다는 천문학자들의 연구 욕망은 커져만 갔다. 당시 갓 활동을 시작한 켁 망원경 주변에 추가로 네 개에서 여섯 개의 작은 망원경을 건설해 켁 망원경을 보조하는 천문대를 건설하겠다는 새로운 아웃트리거 망원경(Outrigger Telescope) 프로젝트가 논의되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터전이 침범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하와이 원주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2002년 하와이 사무국(Office of Hawaiian Affairs)은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과 역사적 성지에 관한 제대로 된 논의와 조사 없이 이런 대형 망원경 추가 건설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아 NASA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걸었다. 안타깝게도 이 소송 이후에도 많은 법적 다툼도 함께 진행되었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추가로 천문대를 건설하는 부지의 면적을 축소했고 당초 켁 망원경의 보조를 위해 계획했던 아웃트리거 망원경 계획은 무산되었다.[4][5] 

 

하지만 2010년 미국 의회와 하와이 의회가 마우나케아에 또 다른 새로운 대형 망원경의 건설을 허가하면서 원주민과 천문학자들 사이의 갈등이 더 치열해졌다. 게다가 이번 망원경은 기존의 대형 망원경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거대한 ‘역대급’ 망원경이다. 구경이 무려 30미터나 돼서 이름도 30미터 망원경(TMT, Thirty-meter Telescope)이다. 현재 이 망원경 건설에만 약 14억 달러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6][7] 

 

천문학자들이 새롭게 건설하려는 30미터 망원경 TMT의 상상도. 현재 계획에 따르면 TMT는 이미 망원경들로 부지가 꽉 찬 마우나케아 정상 부근 고지대 평원에 새롭게 건설할 예정이다. 크기가 아주 큰 거울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경으로 제작하지 않고 작은 조각 거울을 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거울로 채우는 방식으로 건설한다. 이미지=NAOJ/ESA


TMT의 공사는 원래 지난 7월 초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들의 터전과 성지가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는, 그리고 수십 년간 자신들이 내놓은 타협안이 무시된 것에 불만을 품은 원주민들이 마우나케아 정상으로 가는 도로를 가로막고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 첫날 500명 정도 모여 있던 사람들의 숫자는 한 주 만에 2000명 가까이 늘어났다. 결국 공사 차량은 산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공권력까지 투입되어 시위를 진행하던 서른 명 정도의 시위대가 현장에서 체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 역시 천문학을 연구하고, 특히 이런 첨단 망원경들이 관측해 전해주는 관측 데이터로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하루 빨리 망원경 건설이 완공되어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차세대 대형 망원경의 건설을 반대하는 하와이 원주민들을 그저 비과학적이고 반이성적인 이해 집단이라고 선뜻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하와이 원주민들에겐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자신들의 성지 마우나케아에 30미터짜리 대형 망원경을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제주도 백록담이나 독도 한편에 수십 미터짜리 거대한 망원경 또는 과학 실험 장비를 건설하겠다고 외국의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부지를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적으로 백록담이나 독도가 새로운 대형 과학 장비(대형 망원경이나 입자 가속기 등)를 건설하기 위한 지구상 최적의 장소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과연 우리는 선뜻 그곳을 파괴하고 실험 장비가 들어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까? 좀 더 과장해서, 지금 경복궁이 있는 위치가 과학적으로 너무 특별해서 굳이 경복궁을 다 헐고 거대한 뉴트리노 검출기를 지어야 한다고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주장한다면, 과연 우리는 경복궁을 선뜻 내어줄 수 있을까? 

 

나 역시 과학적으로 중요한 세계 최대 규모의 실험 장비가 우리나라에 건설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실험 장비가 들어설 부지가 그런 중요한 곳이라면 마냥 환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하와이 원주민들이 대형 망원경 건설을 바라보는 감정은 얼마 전 제주도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비자림 삼나무 숲을 벌목할 때 많은 사람들이 느낀 당혹감과 비슷할 듯싶다. 마우나케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단순히 과학 대 비과학의 관점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현재 TMT 건설과 원주민들의 갈등에서 원주민들의 문제 제기에 귀를 더 기울여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천문학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원주민들의 구명을 위한 천문학자들의 서명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망원경의 건설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천문학자들 역시 적지 않다. 또 하와이 원주민들 중에도 대형 망원경 건설이 비록 기존의 터전을 빼앗고 역사적 성지를 파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들이 현대 과학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마련된다고 찬성하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8] 

 

이제 마우나케아의 논쟁은 단순히 하와이 원주민 대 천문학자로 나눌 수 있는 싸움을 넘어섰다. 외부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망원경 건설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갈려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마우나케아는 하와이 원주민에게도, 현대 천문학자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주를 만끽하고 탐구하는 우주적 성지인 셈이다. 다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우주를 즐기는 방식이 너무나 다를 뿐이다. 

 

우주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말겠다는 순수한 탐구 욕망과 한 문화권의 오래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성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가치, 둘 중에 우리는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할까? 물론 서로 다른 두 가치를 동일선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마우나케아에서 갈등이 더 뜨거워지면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아예 TMT 건설 부지를 하와이가 아닌 당초 논의되었던 여러 지역 중 하나인 스페인의 카나리섬(Canary Island)으로 옮기자는 제안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지를 옮기는 문제에 대해 논의가 깊게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천문학자들은 하와이 마우나케아를 새로운 차세대 망원경 건설의 최적지로 보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9] 

 

오랫동안 전 세계 많은 천문학자들이 가슴 설레며 기다려왔던 역대급 망원경 TMT의 공사는 아쉽지만 당분간 더 미뤄질 것 같다. 수십 년간 자신들의 목소리가 무시됐다고 생각하는 하와이 원주민들은 더 격렬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 하와이 산꼭대기에서 밤을 지새우며 하늘을 관측하던 천문학자들은 잠시 ‘뜻밖의 휴가’를 보내며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수천 년 동안 하와이 역사가 시작된 성지였고 최근 수십 년 동안 현대 천문학의 역사적인 발견이 이어졌던 관측 천문학의 성지가 되었던 마우나케아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사진=Maunakea Summit


마우나케아를 수천 년 동안 지켜왔던 원래 주인인 하와이 원주민들의 성지로 남겨두어야 할까? 아니면 대형 망원경을 마음껏 건설하는 천문학의 새로운 성지로 내어주어야 할까?  

 

어쩌면 마우나케아의 갈등은 이런 몇 안 되는 특별한 성지 수준의 환경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밝은 밤을 만든 우리에게 더 본질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 문제가 하와이 원주민과 천문학자들 중 누구의 탓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저 매일 밤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지금 이 순간에도 놓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1] http://kahea.org/files/b-02-general-lease-s-1491

[2] http://www.malamamaunakea.org/library/reference/index/refid/868-final-environmental-impact-statement-proposed-telescope-and-observatory-facilities-mauna-kea-summit-hawaii-

[3] https://dash.harvard.edu/bitstream/handle/1/11156816/Swanner_gsas.harvard_0084L_10781.pdf?sequence=3

[4] http://www.keckobservatory.org/record_of_decision_issued_for_outrigger_telescope_project/

[5]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2002-apr-24-mn-39640-story.html

[6] http://kahea.org/issues/sacred-summits/timeline-of-events

[7] http://www.maunakeaandtmt.org/wp-content/uploads/2019/07/TMT.Timeline.2019.pdf

[8] https://earther.gizmodo.com/hundreds-of-astronomers-denounce-arrest-of-native-hawai-1836497851

[9] https://www.hawaiinewsnow.com/2019/07/31/spain-says-theyre-ready-welcome-tmt-canary-islands/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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