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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아들과 딸'

'50년생 후남이' 통해 본 지독한 남아선호사상과 끝나지 않은 시대의 아픔

2019.11.04(Mon) 14:55:52

[비즈한국] 소설은 진작 읽었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아직 보지 않았다. 그 책이 말하는 메시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문학적으로는 아쉬움이 컸기에, 영화 제작 소식이 들릴 때도 과연 잘 만들 수 있을지 염려부터 됐다. 그리고 개봉 11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한 ‘82년생 김지영’의 흥행과 흥행 이전부터 불러온 거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득 나는 후남이가 생각났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넷째 딸이자 7대 독자 귀남이와 쌍둥이로 태어난, 드라마 ‘아들과 딸’의 이후남 말이다.

 

1992년 10월 시작한 ‘아들과 딸’은 6대 독자에게 시집와 줄줄이 딸 셋을 낳으며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 후남 엄마(정혜선)가 드디어 이란성 남녀 쌍둥이를 낳으며 7대 독자를 얻는 것으로 시작한다. 후남이와 귀남이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지만 ‘고추를 달고 나온’ 이귀남(최수종)은 불철주야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귀한 존재로, 이후남(김희애)은 ‘쓰잘데없는 딸 주제에 귀한 아들과 한 배에서 나온’ 혹 같은 존재로 성장한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후남과 귀남. 후남이 먼저 태어난 누나지만 누나 대접은커녕 후남 엄마에게는 귀한 아들 곁에서 쓰잘데없이 자리 차지하고 태어난 존재로 천덕꾸러기 취급당하며 자란다. 애지중지당하는 귀남 역시 그런 현실이 싫지만 태산 같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만 해도 숨이 가쁘다. 후남을 연기한 김희애는 이 작품으로 1993년 MBC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사진=드라마 캡처

 

후남과 귀남이 태어난 때가 대략 1949~1950년이니(귀남이 대학에 입학하는 때가 1968~1969년경), 그 시절 대를 잇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자명하다. 이름부터 귀할 귀(貴)를 쓴 귀남과 이후에도 아들 동생을 보라는 의미로 지은 후남으로 갈리니 알 만하지 않은가. 특히 귀남이를 편애하며 후남이를 지독하게 구박하던 후남 엄마의 말과 행동들은 당시 시청자들의 혈압을 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성적이 뛰어나 장학금을 받고 겨우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남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존재는 펜팔로 맺어진 서울 친구 안미현(채시라). 이들의 우정은 드라마 마지막까지 쭉 이어진다. 지금 보면 김희애, 채시라, 최수종 거기에 한석규까지 한 화면에서 만난 후덜덜한 작품. 사진=드라마 캡처

 

살뜰하게 집안일에 부려먹고 먹는 걸로 차별하는 것은 그 시절 식구 많은 가난한 시골집에서 흔히 있던 풍경이라 치자. 귀남이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자 몰래 대학 시험에 응시했다 합격한 후남 때문이라며 후남이를 때리며 원망하는 것도 얼토당토않았는데, 귀남이 학비로 모으던 돈을 막내 여동생 종말(곽진영)이 훔쳐가자 덮어놓고 후남이 짓 아니냐며 의심해 결국 후남이 가출하게 만들지 않나, 방송통신대를 다니던 후남에게 네가 대학에 다니며 승승장구하는 까닭에 귀남이가 자꾸 사법고시에 떨어지는 거라는 억지를 쓰더니, 급기야 후남이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귀남에게 옮기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정말이지, 친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치가 떨렸다고.

 

후남, 귀남의 부모인 이만복(백일섭)과 아내. 술만 마시면 부르는 "홍도야~ 우지 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를 흥얼거리며 사랑받은 만복 캐릭터는 딸들에게 관대한 편이나 아들인 귀남이 법관으로 대성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는 등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건 아내와 마찬가지다.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사업에 뛰어드는 등 일을 벌리기만 하는 한량이라 그 뒤치닥꺼리를 하는 건 죄다 아내인 후남 엄마 차지. 그렇다고 후남 엄마가 후남에게 하는 행동들이 정당화되진 않지만, 두 사람 모두 관습과 인습으로 학습된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라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다. 사진=드라마 캡처

 

물론 귀남이라고 자기만 귀애하는 현실이 달가운 건 아니다. 자라면서 내내 자신 때문에 더 구박받는 후남을 보며 죄책감도 느끼고 열등감도 느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집안을 일으킬 대들보’라고 자신에게 지워진 어마어마한 기대와 책임이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가 원하는 대로 법대로 진학했고, 원치 않는 사법고시에 계속 낙방하면서도 끈을 놓을 수 없다.

 

겨우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은행에 취직하는가 싶지만 끝끝내 아쉬움을 놓지 못한 부모의 소원, 그리고 이후 후남과 결혼해 매형이 되는 친구 한석호(한석규)가 검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처자식을 두고도 다시 사법고시에 도전할 정도니까. 결국 후남 엄마의 지독한 남아선호사상은 여자인 후남뿐 아니라 남자인 귀남에게도 크나큰 족쇄가 된 셈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혼모 엄마(고두심)와 첫사랑에 실패하고 독신으로 지내는 이모 순미(선우은숙)와 함께 사는 미현은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고 살겠다고 말하는 당찬 도시 여성. 펜팔 친구인 후남의 남동생 귀남과는 첫사랑으로 얽히지만 후남 엄마의 반대와 그로 인해 강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귀남에게 실망하며 이어지지 못한다. 미현이 집에서 자주 하는 운동이 훌라후프였기에 당시 훌라후프가 인기였다고. 사진=드라마 캡처

 

후남이는 기어코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낸다. ‘여자라서’ 도전을 주춤하게 만드는 현실은 물론 가족인 엄마가 자신을 ‘귀남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치부하는 아픔을 극복하고 하나하나 원하는 것을 이뤄 나간다.

 

가출해서 공장과 함바집에서 일하면서도 언젠가 이 경험들이 자신의 자산이 될 것이라 다짐하는데, 정말로 방송통신대에 다니고 편입해 국문학과를 졸업하더니, 일하던 출판사에서 자신의 자전적 소설 ‘아들과 딸’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고, 꿈꾸던 국어교사도 된다. 귀남의 친구인 ‘엄친아’ 석호와 결혼까지 하니, 딸 다섯 아들 하나인 후남네 육남매 중 후남만큼 잘 풀린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귀남은 어릴 적부터 치마폭에 싸고 돌았던 엄마부터 자신보다 똑똑하고 당찬 쌍둥이 누나 후남이, 세련된 멋쟁이지만 엄마의 반대로 쉬이 붙잡지 못했던 미현, 오매불망 자신을 쫓아다니다 결국 결혼까지 한 성자 등 많은 여자들에게 휘둘리며 산다. 미현을 사랑했으나 성자와 결혼했고, 성자와 결혼하고 나서도 귀하게 자란 남자의 모습을 벗지 못해 결혼생활 내내 투닥거리기 일쑤였던 귀남은 방영 당시 ‘마마보이’​ ‘​시스터보이’​라 불렸다. 물론 귀남도 후남처럼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사진=드라마 캡처

 

하지만 그럼에도 후남은 끝끝내 엄마와 진정한 화해를 하지 못했다. 마지막 화인 64화에서 후남 엄마는 ‘후남이도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왜 아끼지 않겠냐, 다만 집안을 일으킬 장남의 기를 죽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눈물바람으로 말하며 화해 무드를 조성하긴 하지만 그건 드라마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일 뿐, 나는 그걸로 30년 남짓 쌓인 후남의 응어리가 풀릴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남 엄마가 후남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 보지 않는다. 여전히 후남 엄마는 귀남에게만 귀한 날계란을 줄 것이다. 나아질 앞날을 기대한다면 그건 후남이와 석호, 딸 둘을 내리 낳고 시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만 기죽지 않으려 애쓰는 귀남의 아내 성자(오연수) 같은 인물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엄마인 50년생 오미숙 또래인 그들.

 

귀남의 친구이자 후남과 결혼하게 되는 석호는 사실 ‘후남의 썸남’​ 정도로 잠깐 지나가는 역할로 그칠 뻔했단다. 까마득한 신인이었던 한석규는 아내의 노고를 알아주고 사회활동을 북돋아주는, 당시만 해도 보기 드문 다정한 석호를 맡아 비중도 커지고 인기도 얻는다. 사진=드라마 캡처

 

‘아들과 딸’이 방영하던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60~70년대 배경인 ‘아들과 딸’을 보면서 ‘저땐 참 무지막지했지’라며 혀를 끌끌 차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 둘 딸 셋인 우리 남매만 봐도 먹을 것 차별 없이, 배움의 차별 없이 자랐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90년생인 내 막냇동생은 ‘백말띠로 태어난 여자아이는 팔자가 사납다’는 이유로 염려의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미신을 잘 믿는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에게 병원에서 아들이랬다고 거짓말한 덕에 편안히(?) 동생을 낳을 수 있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장녀인 나는 ‘큰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을 종종 들었고, 남동생들 중 특히 장남은 커서 번듯하게 성공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를 감내하며 자랐다. 그나마도 우리 부모 세대가 후남과 성자, 그리고 김지영 엄마 오미숙 세대였기에 ‘아들과 딸’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시늉을 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드라마 후반 제법 크게 활약했던 후남과 귀남의 동생인 종말(곽진영)과 종말의 연인 한봉팔(윤철영) 커플. 종말은 ‘DJ 준’​이란 이름으로 다방 DJ로 활동하던 느끼한 봉팔과 이어지며 드라마의 웃음을 담당했지만, 종말이란 이름 역시 후남과 마찬가지로 가슴 아픈 구석이 있긴 마찬가지다.  종말도 딸이라 구박받긴 했지만 푼수데기 같은 성격과 막내라는 이점이 더해져 후남과 달리 ‘​개그캐’​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드라마 캡처

 

나는 지금 시대라고 후남이와 귀남이가 영영 추억 속에 박제된 캐릭터라고 보지 않는다. 단지 작가의 웹툰 ‘단지’와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와 ‘곤(GONE)’이 지금 시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82년생 김지영’의 호평만큼 ‘50년대, 60년대생 숙자, 미숙이도 아니고 82년생 김지영이 뭘 그리 차별을 받았느냐’는 소리도 많다는 걸 안다.

 

50년생 오미숙이 남자 형제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던 시대는 아니라지만,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를 기준 삼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과거가 아닌 오늘과 미래를 기준으로 삼아야 후남이와 귀남이도, 지영이와 대현도, 그리고 2019년생 하윤이와 서준이도 함께 더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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