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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시간이 흘러도 '찐' 재미, '올드미스 다이어리'

현실적이고도 사랑스러운 노처녀 캐릭터 주목…인기 힘입어 극장판으로도 개봉

2019.10.18(Fri) 17:16:15

[비즈한국] 지금은 많이 쓰지 않거나 다른 말로 대체해 부르곤 하지만, 예전엔 결혼 적령기를 넘는 미혼 여성을 ‘올드미스’라고 부르곤 했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근 1년에 걸쳐 방영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의 주인공들도 ‘올드미스’라 부르던 여성과 그 주변부 인물들이었다.

 

방송국 성우 최미자(예지원)를 중심으로 미자의 친구인 방송국 엔지니어 김지영(김지영), 인테리어 디자이너 오윤아(오윤아) 등 노처녀 3인방의 사랑과 우정 등을 다루는데, 재미난 건 그때 그들의 나이가 31, 32세 정도였다는 것. 고작 서른두 살! 15년 전만 해도 서른 살 언저리만 되어도 노처녀라 불렸던 걸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로다.

 

친구끼리 생활은 물론 직장에서의 경험을 함께하는 설정은 최근 '멜로가 체질'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으로, 많은 미혼 남녀가 '저렇게 살고 싶은데' 하는 판타지를 꿈꾸게 한다. 방송국 성우 미자는 방송국 엔지니어인 지영과 직장에서의 고충을 함께하고, 지영과 윤아는 함께 살며 생활을 공유한다. 지영과 윤아가 사는 집이 이들뿐 아니라 동직, 정민까지 함께하는 아지트가 되는 건 덤. 사진=KBS 홈페이지

 

방송국에서 성우로 활동하지만 어디 하나 특출난 곳은 없는 평범한 최미자. 특이사항이 있다면 집안 식구 모두가 짝 없는 솔로라는 점이다. ‘쌍문동 쓰레빠’라는 별명을 지닌 미자의 할머니 김영옥(김영옥)과 외동딸을 미국에 시집보낸 이모 할머니 김영숙(한영숙), 환갑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아 푼수데기 소녀 같은 이모 할머니 김혜옥(김혜옥), 오래 전 상처한 뒤 홀로 지내는 아버지 최부록(임현식), 그리고 집안의 가사를 도맡아 하는 미자의 외삼촌 우현(우현) 등, 모두가 솔로다. 집안 식구 모두가 ‘미자 시집보내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그런 미자에게 두 명의 남자가 다가온다. 친구 지영과 사귀는 장동직(장동직)의 죽마고우이자 변호사인 김정민(김정민), 그리고 미자와 함께 일을 하는 방송국 PD인 지현우(지현우). 적당한 나이 차에 좋은 스펙을 지닌 정민은 바람둥이 기질이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할 줄 아는 좋은 남자다.

 

30대 초중반 나이의 세 여자와 세 남자. 여섯 남녀가 사랑과 결혼을 대하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변화한다. 오프닝 장면에서 전 출연진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춤추며 등장하는데, 이때 아바(ABBA)의 'I Do, I Do, I Do, I Do, I Do'가 흘러나와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 외에도 극중 아바의 곡이 여러 번 등장한다. 사진=KBS 홈페이지

 

‘지피디’ 지현우는 비록 미자보다 세 살이나 어린 연하남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올곧이 직진하는 순정파이고. ‘올미다’는 미자에게 다가가는 두 남자와 그 사이에서 잠깐 고민하다 이내 지현우를 선택해 ‘꽁냥꽁냥’ 연애하는 모습을 큰 줄기로 보여준다. 또한 오래된 연인 관계를 보여주는 지영-동직 커플, 미자에 이어 다시 한 번 사랑에 있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윤아-정민 커플을 통해 30대 남녀의 연애와 사랑을 비쳐주는 식이다.

 

당시 ‘국민 연하남’으로 떠오른 ‘지피디’ 지현우와 미자의 ‘꽁냥질’은 15년이 흐른 지금 봐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지만 지금 ‘올미다’를 다시 보면서 더 눈길이 가고 새삼 웃고 울게 만드는 건 ‘할미넴’이란 별명까지 붙은 김영옥 할머니와 이모 할머니들의 활약이다.

 

“욕이란 건 말이다”로 시작해 “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을 년 같으니! 이 십장생아!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까라!”라는 독창적인 욕설을 속사포 랩처럼 쏘아붙이지만 실은 마음이 여려 누군가 힘들어하는 꼴을 못 보는 김영옥 할머니, 무뚝뚝한 듯 진중하지만 하나뿐인 딸내미 소식에는 눈물바람인 영숙 할머니, 뒤돌아서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나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귀여운 혜옥 할머니의 에피소드들은 당시에는 그저 웃고 넘어갔지만 지금 보면 짠하고, 그랬겠구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미자와 친구들, 미자의 남자들 이야기 못지않게 미자의 가족들 이야기도 '올미다'를 보는 큰 재미였다. 모두가 사별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솔로여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나이 들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소녀 같아지는 할머니들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사진=KBS 홈페이지

 

검버섯을 치료하고자 피부과를 찾은 영숙 할머니를 조롱하는 젊은 처자들에게 영옥 할머니가 일갈하는 말을 들어보라. “니들도 늙어, 이년들아. 예뻐 보이고 싶은 그 맘 그대로~ 몸만 늙어, 알아?” 얼마 전 엄마 친구분이 환갑 넘어 치아 교정을 시작했다는 말에 “그 나이에 교정을?” 하고 웃었던 나를 새삼 반성하게 만드는 대사였다. 그래, 나도 환갑이 넘어도 예뻐 보이고 싶긴 매한가지일 거야, 왜 그걸 몰랐을까 하는 통렬한 반성.

 

'원조 할벤져스'라 부를 만한 김영옥, 영숙, 혜옥 할머니. 불량청소년들을 '쓰레빠'로 진압하는 괄괄한 성격을 지녔지만 속내는 그렇게 자상할 수 없는 영옥 할머니부터 진중한 외모에 반전 같은 귀여움을 탑재한 영숙 할머니, 할머니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싶은 푼수미의 혜옥 할머니까지, 모두 그립다. 특히 배우 김혜옥은 이 작품 이후로 독특한 시어머니상, '경성스캔들'의 사치코 여사 등을 맡으며 꾸준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사진=KBS 홈페이지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두고도 각자의 생업으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이웃집 자식들을 보면서 “어쩌겠어, 자식들 생각이 거기까지밖에 못 미치는 것을” 하고 덤덤히 말하는 할머니의 대사도 여운이 오래 갔다. 이렇듯 시간이 흐른 뒤에 다른 시선으로 곱씹어 볼 여지가 있다는 게 지금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보는 장점 중 하나다. 그때는 그들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은 그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30대 여성으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헤쳐 나갔는지 눈여겨보는 것처럼. 

 

또 하나 재미난 건 그때는 분명 ‘지피디’만 보였는데, 이제는 김정민의 매력이 제법 크게 다가온다는 것. 20대의 내가 본 김정민은 모든 걸 장난처럼 설렁설렁 행동하는 한없이 가벼운 남자였지만 30대 후반의 내가 보니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일에 진심이지만 고지식하게 대응하는 지현우보다 넉넉하고 세심한 연륜이 빛나는 부분이 있어보인달까.

 

미자와 친구들, 미자의 할머니들의 기세에 눌리긴 했지만 미자의 아버지 최부록과 미자의 외삼촌 우현의 케미도 상당히 재미졌다. 주로 구박하는 부록과 구박받는 우현으로 설정되는데, 가끔 톰과 제리처럼 역할이 반전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진=KBS 홈페이지

 

‘김삼순 이전에 최미자가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노처녀 캐릭터를 선보인 ‘올미다’는 그 인기에 힘입어 방송 종영 이듬해 극장판 영화로도 개봉하는 기염을 토했다(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다). 또한 최미자를 연기한 예지원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십분 매력 발휘한 4차원 캐릭터(아마도 실제 성격이겠지)를 근작인 ‘또 오해영’에 이르기까지 이어가고 있고. 무엇보다 ‘올미다’는 대중문화에서 소외시켰던 노처녀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성공한 작품으로 유의미하다.

 

​처음부터 연인으로 나왔던 지영-동직 커플은 이별했던 순간도 있었으나 오랜 시간 다져온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커플이 된다. 반면 각자 인기가 많았던 윤아와 정민 커플은 또 다시 정민의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헤어지고 만다. 좋은 조건을 갖춘 좋은 사람이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은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커플이 윤아-정민 커플이었다. 사진=KBS 홈페이지

 

나처럼 예전 추억에 젖으면서 동시에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올미다’를 즐기고 싶다면 최근 하루 한 편씩 업로드 중인 유튜브 채널 ‘KBS예능: 깔깔티비’를 찾아보라.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제작진 크레딧을 보면 반가운 이름들도 보인다. ‘송곳’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눈이 부시게’를 연출한 김석윤 PD와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는 물론 작가진에서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도 발견할 수 있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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