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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예측 불가 유럽의 공항 "어디까지 겪어봤니?"

수하물 2시간째 못 받아…트럭에 싣고 방치, 여기저기 전화해도 해결 안 돼

2020.01.10(Fri) 11:43:22

[비즈한국] 지난 12월 중순, 포르투갈 리스본 여행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리스본에 머무는 내내 태풍으로 인한 강풍과 비로 순조롭지 못한 여행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나와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 과연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를 걱정할 정도의 기상 상황에 맞닥뜨렸다. 다행히 비행기는 1시간 지연 끝에 이륙했고 비행 내내 평소와 다른 흔들림으로 가슴 졸이기도 했지만 예정대로 3시간 30분 만에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럽 내 이동 시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우리는 위탁수하물 없이 기내용 사이즈의 수화물만 들고 다니는데 그날 따라 랜덤으로 짐 중 하나가 기내가 아닌 수화물 칸으로 배정받은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남동생 표현에 따르면 ‘조금 큰 지하철역 같다’고 했던 베를린 테겔 공항은 규모가 워낙 작아 항공기에서 내려 수화물을 찾고 나오기까지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터라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하는 편.

 

이지젯 등 주로 저가 항공사들이 출도착하는 베를린 테겔공항 터미널C. 사진=박진영 제공

 

그런데 그날 따라 10분 넘게 기다려도 짐 찾는 곳에선 빈 컨베이어 벨트만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네’ 정도만 생각하고 기다리기를 한참, 20분이 지나고 30분이 넘도록 짐은 나올 생각도 안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서서 태평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규모가 큰 국제공항에서라면 있을 법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평소의 테겔 공항 진행 속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왔다. 문제는 주변에 이에 대해 물어볼 만한 공항 관계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 청소하는 분에게 물어봤지만 그분이 알 리가 있나.

 

다시 시간이 흐르고 40분, 50분이 넘어가자 사람들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직원을 찾으러 가는 사람, 전화를 하는 사람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는 담당자와 통화가 될 테고 곧 해결되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손 놓고 있는 새 1시간이 넘어가고 그때까지 짐은커녕 누구 하나 와 보는 사람이 없으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창밖으로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탑승객이 “저기에 짐이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저마다 자기 짐이 저기 운반용 트럭 위에 있다며 소리쳤다. 황당했다. 비행기에서 짐을 내린 후 컨베이어 벨트에 실렸어야 할 짐들이 1시간이 넘도록 트럭 위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던 것이었다. ​ 

 

작은 공항 규모 때문에 장거리 운항하는 국제선 항공기 이용이 어려운 베를린 테겔 공항 내부 모습. 한국과 베를린 직항 노선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안 되겠다 싶어서 공항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러 명이 함께 항의라도 해야 좀 더 이 상황이 빨리 끝나겠다 싶어서였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상황에 대해 듣더니 수화물 운반 관련 부서 번호를 알려주며 그쪽으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수화물 담당 부서에서는 나의 상황 설명을 들으며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한 리액션을 보였다.

 

‘뭐지? 전화기를 들고 있던 많은 승객들은 어디로 연락을 한 거지?’ 고속도로에서 차가 한 시간 두 시간 막혀도 누구 하나 차에서 나와 보는 사람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독일 사람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승객들은 상당수 여러 인종이 섞여 있었음에도 다들 그냥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이었을까. 

 

수화물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의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담당부서에 연락이 됐으니 곧 짐이 나오겠지, 했지만 웬걸. 그로부터 20분이 더 지나는데도 창밖으로 보이는 짐더미는 그대로. 다시 수화물 담당부서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자동응답으로 넘어갈 뿐 전화를 받는 이조차 없었다. 이번엔 타고 온 항공회사 오피스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담당자는 처음 듣는다는 식이었다. 그러고선 한다는 말이 “죄송하지만 여기는 항공사 지점이라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으니, 항공사 웹사이트 컴플레인 페이지에 내용을 남겨주시겠어요? 웹사이트 주소는 www….” 몇 번을 설명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전화를 끊었다. 

 

1시간 40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컨베이어 벨트가 돌기 시작하더니 하나둘 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내 짐을 받았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 일이라니! 허탈하게 웃는 내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이게 유럽이지.”

 

유럽에서 교통편을 이용하면서, 특히나 항공편을 이용하며 겪은 오만 가지 사례를 들어보긴 했지만 내가 직접 겪기는 처음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갑자기 운행을 중지하니 내리라고 해 황당했다는 사연은 부지기수였고, 항공편 취소도 많이들 겪는 일 중 하나다. 출발이나 도착 지연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 

 

2시간 가까이 방치돼 있던 승객들의 수화물. 창밖으로 짐이 보이는데도 손 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도 승객들은 누구 하나 큰 소리 내는 법이 없었다. 사진=박진영 제공​

 

유럽 여행자들이 많아지고 저가 항공사 취항으로 항공편수가 급격히 늘면서 유럽 공항들이 겪는 체증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보도가 있기도 했다. 심지어 재작년 여름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승객이 너무 많아 혼잡한 사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승객들까지 발생하면서 항공 교통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있었다. 

 

상황이야 알겠지만, 내 상식으론 승객의 짐을 2시간 가까이 방치해뒀다는 건 이해불가. 한국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이곳에선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주는 국민성 때문인 걸까? 언젠가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한 한국인 여행자가 유럽 공항에 늦은 밤 도착했는데 짐을 내리지 않은 채 다들 퇴근해버려서 다음 날 겨우 짐을 찾았는데 그때 항공사 직원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따지니 직원 왈 “여기 유럽이야” 했다는 일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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